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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Jan 30. 2024

틈에서 피어나는 생명

<틈만 나면>(글 그림 이순옥, 길벗어린이)

길을 가다 보면  보도블록과 보도 블록 사이,

바위와 바위틈 사이,

시멘트의 갈라진 틈 사이에서

자라는 풀들이 보인다. 


생명이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

작고 여린 생명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일어난다.


'이런 곳에서도 살아있구나, 너는….

이런 곳에서도 자라는구나….'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림책 <틈만 나면>의 작가 이순옥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녀는 콘크리트 틈을 비집고

태어나는 풀들을 보면

사랑스럽고 애잔하고

때론 위로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그 감동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그림책을 만들어

세상에 건넨다.


틈에서 피어난 생명들에 대한

작가의 글은 따듯한 시처럼 읽히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던 시시한 작은 풀들은

흑백의 풍경 속에서

초록빛 주인공으로 탈바꿈한다.



이름 없는 풀들은 그곳이 어디라도

가리지 않고 돋아난다.

지저분한 시궁창에도

어둡고 퀴퀴한 하수구에서도

풀들은 자란다.


화분 속 주인공이 아닌

이름 없는 풀로 성장한다.

한 줌의 흙과 하늘을 내다볼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라도 피어난다.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는 무관심과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외로움과

기다림 속에서 돋아난다.


살아갈 수만 있다면

커다란 바위 밑 그늘에서도

자라고 피어난다.


혼자서 멀리 가는 꿈도 꾸고

높이 올라 보는 꿈도 꾸고

담벼락을 넘어갈 꿈도 꾼다.

작고 여리지만

살아있기 때문에

밟히고 밟혀도

또 살아난다.




그림책을 여러 번 들여다보면서

틈을 비집고 태어나는 풀들이

작가의 말처럼 우리 삶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지만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

온실 속의 좋은 환경과 비옥한 옥토를 부러워하지 않고 남들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꿈을 꾸고 키워가는 사람들.

누군가의 발에 밟히거나 치여도 그 상처를 내적인 힘으로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주인공의 자리가 아닌 곳에서 혹은 주목받는 곳이 아닌 자리에서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충만한 사람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꿈을 꾸고 가꿀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혔다.


그림책 <틈만 나면>은

그런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들 대부분이 겪어 왔거나

겪으면서 살아가는 현실,

그리고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 최소한의 환경,

남들이 관심 갖지 않는 고독한 공간에서

스스로 생명을 꽃피우는

존재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살아있음,

살아감,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우리 존재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흑백 풍경 속 이름 없는 생명력으로 가득한 초록빛 풀들에게 공감하고 감사하고 감동받는다.


그 풀들 속에서

우리가 사는 모습이 보여

애틋하고 기특하고 애잔해진다.

그래서 자꾸만 그림책을 펼쳐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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