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에서 10월 초에 다녀온 발리

어릴 적 첫 그리고 마지막 가족 여행이었던 곳

by nenun

최근에 발리를 갔었다. 발리는 내게는 특별한 곳일 수 있다. 인도네시아 이민 시절, 가족과 함께 떠난 첫 가족 여행이자, 또 마지막 가족 여행이 발리였다. 그때는 자카르타에서 버스를 타고 페리 선착장에서 그 버스를 또 발리까지 실어 날랐다 대충 하루 꼬박 걸렸던 여행길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고 고된 길이었을까? 그리고 여행 중간중간 엄마 아빠의 심한 말타툼이 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 우리 삼 남매는 밝아 보였고 모두 웃고 있었다. 물이 무서워서 물에 못 들어가고 배 위에 붙어 있던 내 모습도 사진에 남아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2주간의 짧은 휴가를 발리로 정한 이유는 인도네시아가 많이 그리워서도 그렇지만 내 아이들에게 내가 자랐던 곳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사람들 자연환경, 음식 등을 보여 주고 싶어서였다. 내가 자랐던 자카르타도 같이 가고 싶었으나 시간 상 이도 저도 아닐 것 같아 발리로 정했다. 발리 해변에서 놀거나 힌두교가 교묘하게 섞인 독특한 섬을 돌아다니면 아이들에게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나오는데 그 특유의 습함과 높은 온도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내려 갔고 모든 땀샘들을 자극했다. 아주 옅하게 DJI SAM SOE 담배 냄새가 나기 시작했는데 공항 게이트로 나가면 공기 중 반 이상은 담배 냄새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저음의 "딱시, 딱시, 딱시" "땍시, 땍시, 유 니드 땍시?"가 온 사방에서 들렸고 젊고 나이 든 기사들이 모두 앞에 진을 쳐 있었다.


그때 DJI SAM SOE의 머리를 띵하게 하는 단맛의 담배 냄새가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 습한 공기와 함께... 그 순간 나는 환영을 받는 듯했고 기뻤고 긴장이 풀렸고 행복했고 마음이 놓였다. 잘 찾아왔다. 인도네시아에. 그토록 싫고 그토록 좋던 인도네시아다. 내가 인도네시아를 생각하면 드는 생각이다. 인도네시아라는 것은 내게 어느 한 나라 이전에 나를 키운 곳이라고 말한다. 나는 부모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것도 아니고 부끄럼 타고 소심한 아이였는데 어쨌든 마음속에는 사랑이 많고 올바르게 컸다고 자부한다.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니 인도네시아에 살 때 그 주변에 항상 웃어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Murah senyum... 직역하면 미소가 싸다는 의미다. 그들은 쉽게 웃어준다. Murah hati... 직역하면 마음이 싸다 는 소리다. 마음씨가 좋은 사람들이 나를 대해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일상 속에 편안함을 찾았고 그 토대로 자랐다. 인도네시아를 떠나온 지 수년이 흘렀다. 그리고 내 아이들과 다시 찾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나를 관찰하던 큰 아이가 그랬다. 뉴질랜드에서는 엄마가 사람들을 대할 때 왜 그런 말을 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곳에서는 엄마가 편안해 보이고 사람들과 연결이 잘 되고 이제야 엄마의 마음과 생각이 더 이해가 간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사람들과 말을 하는 것이 쉬웠고 언어뿐만 아니라 생각의 흐름이 자연스러웠고 방향이 같았다. 이런 것이 치유인가? 발리에 싼 빌라에 갇혀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아이들과 오랜만에 온 휴가기에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꾸따는 여전히 바빴고 오토바이 들어 더 많아졌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오토바이가 많아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그나마 차든 뭐든 느리게 다녀서 마음은 덜 심란했다. 그들의 운전 스킬을 사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호등도 많이 없고 그들 만의 규칙이 있는 듯했다. 자카르타 살 때 이 정도였나 할 정도의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어려서 그것이 정상인 줄만 알고 살았지만 다른 나라에 가니 이런 상황은 카오스 그 이상이었다.


특히 현재 살고 있는 뉴질랜드의 정갈하고 깨끗하고 넓은 차로를 생각하니 이것은 굉장히 혼란 속이었다. 하지만 밖의 상황과 반대로 내 마음은 점점 평안해지고 따뜻하고 편안해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여행 오기 전에 발리에 도착하면 덥다는 소리 하지 않기, 현지사람들과 연결고리를 만들어 보기, 문화를 관찰하고 체험해 보기, 그들의 장소와 생각을 존중하기, 인사를 잘하기 , 여러 음식을 시도해 보기 등 신신당부를 했는데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덥다는 말은 못 하지만 처음 느껴보는 더위에 걸음이 너덜 해졌고 조금 있다가 "춥다."라고 했다. 짓궂은 아이들이다.


꾸따 - 우붓 - 짐바란 - 레기안 - 길리 뜨라왕안 - 길리 메노 - 사누르 일정으로 움직여야 했다. 내가 4개월 동안 공들여 만든 일정인데 약간 빡빡한 듯했지만 내게 휴가는 마냥 누워 쉬는 것이 아닌 것이다. 휴가라기보다는 여행에 가까운 일정이었다. 식당일을 하느라 여행이나 휴가를 제대로 못 다니다 보니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 몰아서 하나라도 더 구경하고 체험하려는 것이 이번 휴가의 목적이었다. 아이들을 다행히 생각보다 말없이 따라와 줬는데 표정은 어리둥절했다. 여태 경험해 보지 못한 습함에 오토바이 천지고 길은 엉망이고 매연이 심했고 사람들도 많았다. 그냥 나만 믿고 따라오는 것 같았다.


꾸따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아이들에게 일단 모기약을 많이 바르라고 했다. 아이들은 말없이 모기 약을 잘 뿌려댔다. 그렇게 뿌렸는데도 어쩌다 안 뿌린 작은 부분을 골라 물렸다. 인도네시아 모기에 대한 나의 트라우마가 있다. 모기를 군데군데 특히 연한 살, 엉덩이 같은 곳을 많이 물렸었는데 물리는 족족히 고름이 잡히고 딱딱하고 뜨겁게 부풀러 올라 고통스러웠던 어릴 적 기억이 있다. 그때 우리 삼 남매는 엉덩이를 까고 나란히 엎드려 있었고 엄마가 한국에서 받은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의 캐러멜 같은 끈적거리는 것을 뭉쳐 고름 위에 얹고서 반창고 같은 것으로 붙이고 며칠 이후에 열어 보고 고름이 잘 영글어 나오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고름을 짜내고 고약을 바르는 고통스러운 "치료"를 반복적으로 했적이 있다.


내 아이들은 모기가 물린 곳들을 보여주고 긁고 얼마나 부풀었는지 서로 봐주고 했다. 나도 두 개 정도 허벅지에 물렸는데 은근 신경 쓰이게 가렵긴 했지만 지독한 모기들은 아니었다. 어딜 가나 오토바이 소음이 끊이질 않고 아이들은 더운 것과 모기에 조금은 적응되는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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