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사랑과 영혼/도성선언필칭요순道性善言必稱堯舜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 주연의 영화 고스트Ghost는 <사랑과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국내에서도 큰 흥행 성공을 이루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영혼을 소재로 삼는 것은 여전히 인기가 많다. 드라나 <도깨비>나 영화 <신과 함께> 같은 영화가 흥행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는 믿지 않는 것 같아도 그에 관한 이야기에는 관심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맹자에서는 ‘영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데, 정약용은 <등문공> 상편 1장에 대한 정약용의 본격적인 해설을 시작하며 영혼을 언급했다.
신神과 형形이 신묘하게 어우러져 비로소 사람이 된다. 신은 형체가 없고 이름 또한 없다. 그것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이름을 빌려 ‘신神’이라고 부른다. 심心은 피를 주관하는 장기로서, 묘합妙合의 중추이다. 이 때문에 이름을 빌려 ‘심’이라고 부른다. 죽어서 형체를 떠나면 ‘혼魂’이라 부른다. 맹자는 그것을 ‘대체大體’라고 하였고, 불가에서는 ‘법신法身’이라고 하는데, 문자에 있어서 그것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는 없다. 선유들이 성을 말한 것은 너무 두루뭉술하고, 지금 사람들은 또 더러 착오를 범하고 있다. 살아 있을 때는 ‘성’이라 하고 죽으면 ‘혼’이라고 하니, 실제로 성과 혼은 다르며, 성은 우리 인간의 대체에 대한 온전한 명칭은 아닌 것이다. 나는 성이란 기호嗜好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神形妙合, 乃成爲人. 神則無形, 亦尙無名. 以其無形, 故借名曰神. 心爲血府, 爲妙合之樞紐. 故借名曰心. 死而離形, 乃名曰魂. 孟子謂之大體, 佛家謂之法身, 其在文字, 無專名也. 先儒言性, 亦太渾融, 今人又或差誤. 生則曰性, 死則曰魂, 其實性與魂異, 性非吾人大體之全名也. 余謂性者, 主於嗜好而言.
이 설명에는 영혼에 관한 정약용의 관점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정약용의 영혼 이론에 관한 정리가 먼저 필요하다. ‘영혼靈魂’이라는 한자어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천주실의天主實義》에서 가장 먼저 번역되어 사용되었는데, 이 용어는 아니마anima의 번역어로 확정될 때까지도 여러 도전을 받았다. ‘영혼’이라는 번역어에 내재한 성리학적 또는 전통적 사유에 관한 개념적 오류 때문이었다.
예수회jesuit 선교사들은 서학서西學書들을 통해 중국의 전통적인 ‘혼백魂魄’ 개념을 서양의 ‘영혼’ 개념으로 대체하려고 하였다. 그 과정에서 여러 복잡한 논의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까지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 ‘영혼’은 동아시아 문화에서 ‘혼백’보다 매우 친숙한 단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이라는 용어는 처음 번역될 때, 서양의 혼삼품설(魂三品說)과 동양의 이기론(理氣論)이 부적절하게 혼합되어 사용된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그래야 ‘영혼의 세 등급’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와 같이 예수회 선교사들이 ‘영혼’을 세 등급으로 나누면서, 이미 육체의 상대어로 사용한 ‘영혼’이라는 용어를 ‘생혼生魂’, ‘각혼覺魂’, ‘영혼’으로 나누면서 다시 사용함으로써 개념에 혼란을 주었다는 것이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예수회 선교사들의 활발한 활동은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저술된 책이 루제리Michele Ruggieri, 1543-1610가 쓴 《천주실록天主實錄》이다. 예수회 교리를 한문으로 번역해 소개한 책으로, 1584년에 발간되었으나 불교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발간이 중지되다가, 반세기가 지나서 용어를 수정해 재발간되었다. 초판과 재판의 중요한 용어의 변화 중 하나가 바로, ‘혼령魂靈’에서 ‘영혼靈魂’으로 바뀐 것이다.
《천주실록》에는 ‘아니마’의 번역어로 ‘혼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식물의 혼’, ‘동물의 혼’과 구별하여 인간 고유의 혼에 대해서는 ‘정령지혼精靈之魂’이라는 용어로 소개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명리지혼明理之魂’이라고도 하였다.
이와 같이, 루제리가 번역한 ‘영혼’에 관한 용어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낯설게 느껴지는데, 최초의 한역서학서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그 당시에도 불가피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영혼’에 대해 하나의 통일된 용어를 정립하지 못하고, 최대한 다양한 용어로 설명하려 했던 시도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20의 《천주실의天主實義》에서 보완이 되었다. 우리가 지금도 거부감없이 사용하는 ‘영혼’이라는 용어는 마테오 리치가 확정을 지은 것이지만, ‘영혼의 세 등급’에 관한 개념과 용어는 리치도 루제리의 것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루제리는 “세계의 혼은 세 등급이 있다.彼世界之魂 有三品”라고 하면서 ‘혼삼품설魂三品說’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