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
어쩌다 나는 현재 독일 함부르크에 위치한 전력 트레이딩 회사에서 퀀트(Quantitative Analyst)로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여쭤볼 때마다 매번 곤란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선 전력 트레이딩이라는 개념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그냥 퀀트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여기서도 막히면 프로그래머라고 소개한다) 그러면 가끔 그들은 주식의 퀀트 투자 얘기를 꺼낸다. 돈 잘 버시겠네요,라는 말과 함께. 그때마다 나는 그냥 멋쩍은 웃음으로 상황을 넘기려 한다.
사실 그들의 추측이 아예 틀리진 않았다 (돈 잘 번다는 추측은 틀렸다). 전력 트레이딩도 주식 거래와 비슷한 면이 있다. 나 또한 독일에 오기 전에 잠깐 증권회사에서 종사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다니고 있는 전력 트레이딩 회사 또한 증권업계에서 넘어온 사람이 많다. 그리고 결국 전력 트레이딩도 주식 거래의 제1원칙과 다르지 않다. 낮은 가격에 사서 높은 가격에 팔아라.
먼저 여기서 말하는 전력(Power)은 전기(electricity)를 뜻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두자 (그래서 저자명을 Power + Quant로 정했다). 언제 한 번 나는 함부르크에서 갓 친해진 지인과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위기도 살짝 어색하길래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소개했다. 저는 퀀트라고, 전력을 사고파는 프로그램을 짠다고, 거의 20분가량 전력을 다해 설명했다.
"그래서 요즘 새로운 트레이딩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는데 수익률이 괜찮으면 좋겠어요"
그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탄력을 받아 파이썬과 SQL로 넘어가려던 찰나였다 (그렇다, 나는 너무 앞서 나갔다).
"아, 그런데 민호 씨, 죄송한데요"
"네"
"전력이 뭐예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아 죄송해요, 전기요. 가정에서 쓰는 전기"
"아 저는 신기하네요, 전기를 사고팔다니. 재밌는 일 하시네요."
우리의 대화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대한민국에서 전기를 사고 판다는 개념은 생소하다. 우리는 그저 전기를 사용한다. 그 전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는지 크게 관심이 없고, 가질 이유도 없다. 솔직히 전기가 어떻게 생산되고 거래되든 나와 무슨 상관이랴. 나에겐 이번 달 전기세가 얼마 나오는지, 그게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전력 시장 구조는 내 주머니 사정과도 크게 연관이 있다. 유럽의 시장 거래 방식이 더 저렴한지, 한국의 수요 독점 체제가 전기세의 왜곡을 가져오는 건 아닌 지, 우리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문제가 보이면, 우리는 여론을 형성해 당당히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나아가 전력 시장의 전환은 지구의 미래와도 관련이 있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한국의 전력 시장 구조는 재생 에너지에 취약하다. 유럽은 1990년대부터 이 재생 에너지에 맞게 전력 시장을 조금씩 변화했지만, 한국은 많이 뒤처졌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 글은 도대체 어떤 글인지 혼란스러운 독자를 위해 이제 이 글의 주소를 명확히 하려 한다. 먼저 이 글은 나의 작은 독일 여행기에서 시작한다. 필자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하다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 소개
이 생존기는 시간이 흘러 내가 전력 트레이딩 회사를 만난 우연으로 이어진다. 나는 어쩌다 퀀트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파워 퀀트는 어떤 일을 하는가. 퀀트의 일상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당연 기술적인 면도 빠질 수 없다. 머신 러닝 (Machine Learning)과 인과 추론 (Causal Inference)등 최신 기술이 전력 트레이딩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뿐만 아니라 현재 독일에서 뜨거운 이슈인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상당히 밀고 있는) 배터리 모델 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까지 다양한 주제를 소개한다. 물론 깊게 들어가진 않는다,
이 이야기에 종종 지구의 에너지 전환을 덧붙이려 한다. 현재 지구는 위기에 처해있다. 한국의 전력 시장 구조는 아직 화석 연료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에너지 전환은 시급하며 우리는 재생 에너지에 맞게 전력 시장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많은 기업과 사람들도 이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지구의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대양에서 한국과 독일을 오고 가는 한 마리의 물고기에 불과하지만, 계속 오고 가다 보면 동참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