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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Jun 05. 2024

과거로부터 온 편지

메일을 받았다. 8년 전의 나로부터 온 편지였다. 고등학생 시절, 원어민 선생님께서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주셨다. 다소 어색하게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그보다 더 어색한 영어로 편지를 썼더랬다. 선생님은 훗날 편지를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마음속으로 '이 많은 사람의 편지를 어떻게 보내준다는 거람.'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그분은 열정이 넘치고, 그 에너지를 제대로 전달할 줄 알아 유독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었다. 편지를 보내주겠다는 말을 잊지 못해, 20살이 넘어서는 때때로 메일함을 들여다보곤 했다.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너에게 썼던 편지를 전해줄게." 8년 후, 정말로 편지가 도착했을 때는 놀라움과 반가운 마음에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 라며 짧은 답장을 쓰고, 꽤나 긴장을 하며 지금보다도 악필인 그 시절의 나를 마주했다.

기억 속에서는 꽤나 진지한 태도로 질문을 골랐던 것 같은데, 정말 사소한 질문뿐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랑은 아직 연락을 하니?", "운전면허는 땄어?", "연애는 해 봤니?", "나는 지금 단발인데, 너는 지금 어떤 머리를 하고 있어?" 고심해서 고른 질문이 이토록 소소한 부분만 파고들 줄이야. 심지어 편지를 받을 당시 오래 길었던 머리를 단발로 자른 참이라, 소리 내어 웃기까지 했다.

"너의 삶은 행복하니? 지금과 다르게 건강하고 예쁘길 바라." 마지막 줄은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는데,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나는 달라진 게 없었다. 애초에 내가 그리던 8년 후의 모습은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어른의 모습이었으니! 어른이 된 지금도 어른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과거의 바람이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매일 우울하면서, 매일 행복을 좇고, 매일을 살아내고 있어. 변함없는 모습이라 오히려 너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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