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야 Aug 24. 2024

수면 공상

어릴 적부터 이상한 수면 공상을 자주 겪었다. 수면 중에 일어나는 다채롭고 뒤틀린 일련의 시각적 심상은  그 잔상이 며칠을 가기도 한다. 새가 눈을 감는 시간, 여름내 울어대던 뒷산의 부엉이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시간, 그렇게 유독 조용한 밤이면 눈앞에 커다란 장면이 펼쳐진다.

때로는 보면 안 되는 것들을 보게 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금지된 사항들이 수면 중에 나타날 땐 내면의 무의식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그 속에서는 법률도, 도덕도 없다. 무의식에서 본 장면 때문에 섬뜩할 때도 있는데, 모든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그곳에서의 내가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간간이 반복되는 장면도 있다. 특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가 몇 군데 주기적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실제 하지(혹은 실재하지) 않는 장소일 텐데, 적어도 직접 발을 옮긴 공간은 아닐 텐데 자꾸 떠오르곤 한다. 이 우주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내가 사는 세상일까? 대게 이런 장면들은 알록달록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바람 내음이 좋은 넓은 언덕에서 잔디 썰매를 타기도 하고, 산 꼭대기까지 연결된 철로를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도 하는데, 꼭 예쁜 집도 그려져 있다.

무의식을 녹화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한다면 미지 덩어리인 내면에 대해서 조금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술이 없으니, 오늘도 일어나기가 싫다.

매거진의 이전글 5,000원의 미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