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다 보면, 그 관계에 수반되는 ‘당연함‘을 무기 삼아 상처를 주고받곤 한다. 자신이 규정해 놓은 관계의 틀에 상대를 끼워 넣곤 ‘당연’이라는 말로 포장해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다.
“부모니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연인이라면 이렇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상사에게는 이런 대우가 필요한 거 아니야?”
상대와의 거리에 따라 ‘당연함’의 농도는 달라지겠지만, 어느 관계에서도 이 진득거리는 이기주의는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한 사이’도 당연히 없다. 상대의 배려를 당연시하는 순간 이기적인 기대를 하게 되고, 그 기대를 상대의 책임으로 돌려 의무를 전가하게 되며, 기대가 어긋나면 멋대로 실망하고 만다. 관계에서의 존중이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의존적인 생물이기에,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면 타인이라도 붙잡으려 ‘당연함’을 수단으로 사용하곤 한다. 나 역시 나약한 인간이라, 때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당연함’이라는 달콤한 단어로 어리광을 가장한 채찍을 휘두를 때가 있는 것 같다.
나의 ‘당연’이 당연시되지 않기를. 결코 당신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