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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과언니 Sep 22. 2022

너도 그래? 나도 그래!

밤나무가 되고 싶었을 수도

“너도 그래? 나도 그래!” 

또래들이 모여 나누는 일상 대화에서 흔히 들어볼 수 있는 표현이다. 누군가 특별한 경험이나 물건을 자랑할 때, 또는 심심한 위로를 할 때, ‘너도, 나도’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게 된다. ‘너도, 나도’라는 표현은 뭔가 정다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거리 또한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느껴져, 이 단어가 가끔 나에게 적용될 때, 내 머리 속은 좀 복잡해진다. “너도 그렇다”며 누군가 나를 지명해주는지, 아니면 “나도 그래”라고 내가 나서서 말하는 상황인지에 따라서. 


가을이 되어 밤 수확 철이 되면, 근교 나들이 길에서 잘 여문 밤송이가 달린 밤나무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운 좋게 알밤 몇 개 발견하길 기대하며 밤나무에 다가서면, 머리 속 어디선가, 이 ‘너도, 나도’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밤나무,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처음에 이름만 알았을 때는 다 밤나무 종류인가보다 했다. 밤이 열리면 다 먹을 수 있을까? 문득 서로 얼마나 닮았는지가 궁금해서 이 세 종류를 구분하기 위해 식물 화보집을 뒤적거려본 적이 있다.      

여기서 퀴즈하나! 밤나무와 가장 닮은 것은 너도밤나무일까 나도밤나무일까?     


힌트가 될 만한 이름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다. 

율곡이이 선생이 어릴 적 지나가던 노승이 어린 율곡을 보고 장차 큰 사람이 될 터인데, 다만 호환을 당할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어 뒷산에 밤나무 1,000그루를 심어두었다가 어느 날 한 스님이 율곡을 찾아오면 밤나무 1,000그루를 시주하라고 이른 뒤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정말 한 스님이 찾아왔고 율곡의 부모는 1,000그루를 시주했다. 그 스님은 밤나무 수를 세더니 998그루밖에 되지 않자 두 그루가 부족하다며 으르렁 대며 호랑이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때 밤나무 하나가 얼른 옆에 있는 무명나무에 “야, 너도 밤나무다!”라고 하였고,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무명나무가 “나도 밤나무다”라고 하여 1,000그루를 채워 화를 면했다는 내용이다.      


밤나무와 너도밤나무는 둘 다 참나무목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잎과 열매맺는 방법이 서로 많이 닮았다. 밤나무 열매도 먹을 수 있고, 너도밤나무 열매도 먹을 수 있다.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름처럼 너도밤나무 열매는 조금 떫기는 하지만 모양과 맛이 밤과 비슷하여 ‘너 정도면 밤나무겠다’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너도밤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에서만 자생하고 있어서 천연기념물로 관리되고 있다. 

반면 나도밤나무는 무환자나무목 나도밤나무과로 분류된다. 밤나무와 비슷한 잎사귀 모양이지만, 훨씬 큼직하고 꽃은 포도꽃을 연상시키는 것과 같이 여러 송이가 함께 피고, 열매는 밤나무와는 아주 다른 형태인데다가 먹으면 배탈이 나기 십상이다. 열매를 먹을 수 없다니 애석하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식물 몇가지를 보자면 너도개미자리, 나도개미자리,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등 ‘너도’나 ‘나도’로 시작하는 이름붙여졌다. 어떤 식물에 비교적 가까울 때는 ‘너도’가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관계가 멀면 ‘나도’가 붙게 된다.      


각자의 분야에서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인간이기에 지닌 좋은 점은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늘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아직은 ‘나도밤나무’라고 스스로를 수줍게 어딘가에 밀어넣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너도밤나무’라고 어느 정도는 인정받고, 더 나아가 마침내 밤나무, 그 자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느 새 엉뚱한 생각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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