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나는 꽤 오랜동안 내가 식물보다는 동물을 훨씬 더 좋아한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렇다고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서야 '내가 식물을 상당히 좋아하고 있구나'를 비로소 알게 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잔디밭 사이에서 잔디가 아닌 식물들에 퍽 관심이 많아서 쪼그려 앉아 뜯어보고 향도 맡다가 '잔디가 아니면 잡초니까 뽑아도 뭐라 안 하겠지' 하고는 쑥 뿌리째 뽑아 뿌리사이 흙을 툴툴 털어내어 주머니에 넣곤 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고 싶은 마음이 현실로 이어지기는 어려웠지만 대신 식물은 얼마든지 우리집에서 같이 지낼 수가 있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비슷하다.
애완동물을 소유하고픈 어린 나의 마음은 버려진 동물, 강아지 공장, 대형 마트 한편에서 물건처럼 팔릴 운명에 처한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변해버렸기에 나와 동거할 동물(?)을 맞이하기는 보다 먼 일이 되어버렸다.
동물은 여전히 가까이 하기에 장벽이 존재했지만, 식물은 지금까지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
부모님과 살던 우리집에서, 내 첫 자취방에서, 첫 직장에서도, 공간을 이동할 때마다 줄 곳 식물을 가까이하고 있었더랬다.
여전히,
매년,
기회가 될 때마다
현미를 씻다 말고 몇 알 골라 싹을 틔우기도 하고
사과나 배를 먹고 나서 용케 칼날을 피해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남은 씨앗들을 화분에 심어 보기도 한다.
물러져 분홍빛 물컹이가 된 딸기에서 씨앗들만 추려내어 싹을 틔우기도 하고
여기저기로 쭉쭉 뻗어나가는 제라늄의 가지를 잘라내어 옮겨 심어 보기도 한다.
다육이의 잎을 뚝뚝 떼어내어 씨앗처럼 흙에 콕콕 박아주기도 한다.
현미가 틔운 싹은 화분에 물을 넉넉히 담아 벼 수확을 노려볼까 싶게 쑥쑥 자랐다.
배보다 사과씨는 쉽게 움텄는데, 한여름 잠시 신경 못 쓴 사이 말라죽기 전까지는 한 뼘이 넘게 키가 커져 나무처럼 자라기도 하였다.
딸기싹은 쑥쑥 자라서 옆으로 줄기를 뻗어가며 무서운 속도로 번식을 하였고, 제법 딸기를 맺어 수확하는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제라늄은 가지를 잘라 심는 족족 꽃을 피워내어 한동안 매일 꽃밭을 보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였다.
하나였던 다육이는 여러 개체가 되어 화분 하나를 가득 메워 마치 꽃송이같이 자라났다.
도시의 삶이 다 그러하듯 아스팔트가 아닌 보드라운 흙을 가까이하는 방법은 화분에 담는 수밖에 없다.
가끔 화분의 한 뼘가량 밑바닥이 진짜 땅, 지구 표면까지 이어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면 땅으로 연결된 지구의 숨이 베란다까지 올라올 테고, 그렇게만 된다면 층층이 쌓인 공중에 지어진 집에서도 나무가 자라고, 숲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하나의 화분에서 세 개의 화분으로 늘어난 나의 사랑하는 고무나무가 생전에 땅을 경험해 보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