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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과언니 Feb 22. 2022

그는 나를 몰라요 나는 그를 알아요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떠오르는 그 사람

도시에서 지내다 보면 내가 선호하든 안 하든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와 같이 '자동 신체 운반 장치'에 몸을 싣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는 혼자든 여럿이든 계단이 등장하는 박자에 맞춰 한 명씩 차례차례 한 줄로 노란 안전선 안쪽에 두 발을 모아 놓고 서서 다음 층까지 이동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도 다음 층까지 가는 것은 에스컬레이터와 다를 게 없지만 좁은 공간에서 여럿이 같이 이동해야 하므로, 같이 이동하는 일행이 없을 때는 시선을 둘 곳을 찾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바닥 패턴으로 시선을 두다가 내 신발을 바라보기도 하고, 벽에 있는 거울을 통해 얼굴을 살피기도 한다. 때로는 천장 조명 등 안쪽에 있는 곤충의 사체로 추정되는 점들을 세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문 위쪽 엘리베이터 브랜드가 보이는 순간, ‘그’의 이름을 마주할 때가 있다.     


새로 시작하는 일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작은 용기를 주는 사람

내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부딪쳐 보라고 하는 사람

길을 만들어 가는 일이라면 이렇게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만 알고 있는 그 사람은 바로 엘리샤 오티스.

세계 최초로 엘리베이터를 개발하고, 안전성을 증명해냄으로서 엘리베이터 시대를 연 사람.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번호를 누르고 나면 버튼 위쪽의 비상벨 버튼과 그 위로 시승 최대 하중 라벨, 그다음 엘리베이터 브랜드 표시까지 훑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중, 익숙한 국내 브랜드가 아닌 ‘오티스’라는 듣보잡(당시 나에겐) 브랜드가 유독 자주 눈에 띈다 싶었다. 심지어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브랜드와 하이픈으로 연결되어 나란히 표기될 때도 있으니, 슬슬 궁금해지던 찰나. 스마트 폰에 글자를 넣어보았다.     

아, 미국 엘리베이터 회사구나. 회사 이름이 개발자 이름이구나. 1800년대 사람이라고?

이쯤 되면 ‘최초’라는 타이틀 냄새가 나고, 내 아는 척 리스트에 넣고 싶은 마음에  좀 더 찾아보고 싶어 진다.


현대적 엘리베이터를 최초로 만들고, 상용화시킨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한 줄 소개로 적기에는 당시에 그가 보여준 행동들은 요즘 말마따나 ‘실화임?’을 연발케 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침대공장 기계공이었던 오티스는 평소에 로프가 끊어져도 안전한 승강기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 우연한 기회에 화물용 승강기 개발을 의뢰받아 제작하던 중 비상정지 장치를 개발하게 되었고, 이윽고 1854년 뉴욕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에서 자신이 개발한 현대적 엘리베이터를 소개하게 되었다. 

‘안전장치가 작동하면 엘리베이터가 비상으로 정지합니다.’, ‘안전장치 때문에 추락하여 엘리베이터 사고가 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여러 번 소개해도 여전히 엘리베이터 이용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사람들. 

오티스는 자신이 직접 안전함을 증명하기로 결심하였다. 자신이 개발한 엘리베이터에 무거운 짐을 가득 실은 후, 탑승한 상태에서 조수에게 로프를 자를 것을 지시한 것인데,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뉴욕 박람회장의 수 만 의 사람들의 웅성임이 BGM으로 들리는 것 같다. 조수는 명령에 따라 로프를 잘랐고, 안전장치는 잘 작동하였고, 엘리베이터는 비상 정지했고, 오티스와 짐도 안전했다.

온몸으로 안전장치를 증명해 낸 오티스는 이후 뉴욕 브로드웨이 한 건물에 세계 최초 승객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였다. 오티스는 오래 살지 못했다. 오티스가 죽은 뒤, 아들들이 사업을 이어나갔고, 오티스 엘리베이터사의 이름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승강기 사업을 펼쳐나가게 된다. 고속 승강기, 에펠탑에 경사식 승강기, 더블데크 승강기, 에스컬레이터 등 최초의 기록들을 만들어 나갔다. 

     

새로운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실현하고,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어떤 하나도 쉬운 것이 없다. 

새로운 생각을 하지만 구체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정리된 생각을 현실에서 실제로 해내는 것은 더 쉽지 않다.

내가 실제로 해내더라도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만큼의 어려운 일이다.      


19세기에 살았던 어떤 사람 때문에 21세기를 사는 내가 힘을 얻는다? 시공을 초월한 듯한 이 관계가 좀 근사한 것 같다. 그 사람이 인덕이 있었는지, 정직하였는지, 주변 사람들에 상처주지는 않았는지... 까지는 알지 못한다. 기대하는 만큼의 인성을 지녔었다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포기하지 않았던 기록들, 자신의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두려움이 없지 않았을 텐데, 타인에 미루지 않고 자신이 직접 증명했던 순간들은 전설 같은 감동을 전해준다.      


지인들과 엘리베이터를 탈 때, 그리고 내가 아는 이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백발백중. 내가 이야기할 때면 지인들은 그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고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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