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여름 : 할머니의 기일
어느 하루. 음력으로 치르는 기일이 마침 한국의 광복절이었다. 캐나다에서의 난 양념갈비를 만들었고 한국으로 추도 예배지를 전송했다. 할아버지의 기일, 할머니의 기일, 명절 가정예배지를 주보처럼 준비하는 일은 어느 순간부터 나의 몫이었고 예외는 없었다.
10년 전,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미래를 꿈꾸던 난, 속기사 학원을 다녔다. 재미를 붙일 무렵 할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엄마는 갑상선 암 진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처음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 할머니 댁 공사가 끝나고 우린 함께 살기 시작했다.
신도시, 번화가 사이 어르신들이 사는 마을. 버스는 두 시간에 한대가 오는 마을. 그곳을 오가다 어느 날부터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학원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중간에 속기사 3급 시험을 치기도 했지만 떨어졌다. 함께 하는 동안 할머니의 식단을 도맡았고 할머니는 체중이 늘고 건강을 되찾으시는 듯했다.
어느 순간부터 식사를 거르시고 경증 치매가 심해지는 듯 6.25 이야기를 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할머니의 첫 증손주가 태어났다. 엄마는 암 완치 판정을 받으셨고 웃음치료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빠는 타 지역에 할머니가 농사짓던 포도나무를 옮겨 심고 귀농을 준비했다. 막내는 대학교 졸업을 했고 취업을 했다. 시간은 점점 흘렀다.
꼬집히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했지만 함께 잡초를 뽑기도 했다. 웃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그렇게 30대 초반을 넘어갈 무렵 할머니는 식사를 완강히 거부한 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셨다. 요양보호사님이 오전에 들러 할머니를 함께 돌봐주셨으나 밤에는 보초 서듯 할머니의 방을 오가며 확인해야 하던 여러 밤들.
아빠와 나, 할머니 세 사람이 한 집에 있던 날, 할머니는 화장실 앞에 누워계셨고 잘 주무시는지 확인하러 들른 난 할머니를 들 수 없어 아빠를 불렀다. 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이불을 간 뒤 아빠의 도움으로 침대에 다시 할머니를 눕혀드리고 며칠 뒤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3일 뒤 할머니는 병원에서 깊은 잠을 주무시기로 결심하신 듯 그렇게 눈을 감으셨다. 여름이었다. 할머니의 장례식 날 모두가 울었다. 우리만의 장마였다. 할머니가 안 계신 할머니의 집에서 첫 추석을 보냈다. 가을, 막내 동생은 캐나다로 떠났다.
그렇게 4년이 흐른 오늘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응원과 선물 같은 여행을 보냈던 초반을 제하고 4년의 절반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마침 창궐한 코로나라는 핑곗거리로 은둔 생활을 보낸 나였다. 20킬로 가까이 졌고 마음은 수렁으로 빠져 부정하고 분노하는 계절들을 보냈다. 함께 힘들었고 모두에게 배려받았던 시절을 잊은 채 보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을 지나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책으로 적어보자는 마음이 배움으로 다시 나를 이끌었다.
책을 만들자. 독립서점을 차려 독립 출판을 하고 내 작은 서점에서 방과 후 수업, 학원, 공부방을 갈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자.
세상으로 나를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해 준 가족과 친구의 응원으로 출판편집디자인 공부를 시작한 난, 창업 강연을 듣기도 하며 미래를 도모했다. 표지리커버 수업이 재밌었고 책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가 가슴을 뛰게 했다. 그렇게 북디자이너라는 꿈을 꾸었고 잠시나마 출판사에서 일을 했다. 순탄치 않았지만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난 이렇게 캐나다에 있을 수 있었다.
긴 시간이었고 여러 계절이었다. 혼자였고 함께였던 따뜻하지만 시린 날들을 지나왔다. 면접을 보거나 그동안 무얼 했느냐는 질문에 나는 답하곤 했다.
할머니를 돌봐드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기간이 길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출판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그랬다. 꿈을 키운 계절들이기도 했다. 일기 속 부정적 감정조차 꿈이 되어버린 시간들이었다. 너무 늦게 깨달은 건 아닌가 후회가 되는.
캐나다에 오기 직전의 2년은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잊을 만큼 즐거운 날들이 더 많았다. 하늘을 더 바라보게 되었고 가끔 떨군 시선에서 바닥의 아름다움을 깨닫기도 하는 소중한 시간들. 그래서인지 캐나다의 시간들이 더욱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고 있었다.
오늘은 추억하는 날이니까. 이렇게 추억하고 되새겨 본다. 한국이 궁금하다. 내가 지금 느끼는 그리움을 동생과 제부는 어떻게 보냈을까. 캐나다에 와 초반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오던 날, 두 사람은 짐을 둘이서 옮겼다고 했다. 들고 나르고 아무것도 없는 이 집 거실에 매트리스를 옮긴 뒤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했다.
진짜 둘 뿐이라며.
떠나가고 떠나온다. 내가 나와 싸우는 격정적 시간을 보낼 때 두 사람은 낯선 곳과 싸웠겠지. 우리가 그리워한 만큼 우리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오늘은 이 모든 것들이 할머니를 향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너무 먼저 가신 할아버지를 만나셨을까. 지금 두 분은 함께이실까. 할머니도 가끔 그곳에서 날 떠올리실까. 나는 정말 할머니와 함께하는 동안 잘했을까. 오늘 가족들은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까, 음식은 누가 도왔을까.
양념갈비가 맛있게 되었다. 할머니께 못 해드린 것이 퍽 후회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