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여름 : 돌아갈 준비
처음에는 동생에게 너만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너를 위해 가는 것이니. 이십여 일이 남은 지금 돌아보면 우린 서로를 위해 서로를 생각했다. 그래서 사소한 서운함도 웃음으로 풀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슬슬 돌아갈 준비를 생각하는 난, 포트폴리오 파일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길 것만 같던 두 달이라는 시간은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고 조금씩 초조해진다. 더불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땅콩이는 손이 더 가는 듯 하지만 사실 불안해하는 어른들이 시선을 떼지 않고 손을 놓지 못하는 탓일 것이다. 기록은 점점 짧아진다. 순간에 집중해서 일지, 익숙해져서 인지, 아니면 돌아갈 날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기록을 위해 내는 시간보다 동생과 대화하는 시간, 땅콩 이를 좀 더 눈에 담는 시간이 늘어간다.
8월 22일
열심히 끓인 사골은 생각보다 연했다. 불순물이 많이 나온 것과 달리 맛은 말 그대로 연한 사골. 이연이가 밤잠을 자면 셋은 악귀를 보는 중이다. 한편 한편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설치한 모니터를 티브이 화면과 번갈아 가면서. 아직도 마지막 회는 오지 않았다.
8월 23일
에드먼턴이라는 곳에 동생과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부의 말에 고민한다 했었다. 그런데 그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드는 제안이 들어왔다. 내가 운전을 해야 한다는. 허세를 부렸지만 동생보다 운전에 겁이 많은 내가 초행길을 그것도 타국에서 SUV를 몰고?! 아마 굳은 의지로 안 가겠다 말할 듯하다.
8월 24일
오늘은 땅콩이의 성장 점검일,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5.2kg, 60cm. 쑥쑥 크는 땅콩이에 간호사분들도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이제 한 달이 지난 아이가 맞느냐며 우스갯소리도 던져왔다. 처음으로 유모차에 눕혀본 날이기도 한데, 작게 유모차 분리를 하지 못해 끙끙 거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처음 병원을 함께 왔을 때 동생의 엄마가 되었던 난, 제법 땅콩이를 잘 케어하게 되었고 간호사 분들과 웃으며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녹아들고 있는 듯하다. 병원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도 땅콩이의 공식적 성장 기록 역시 오늘이 마지막이겠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오늘이다.
8월 25일
9시 즘 땅콩이의 울음소리에 깨서 동생과 함께 먹이고 재우고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점심은 콩나물 무침과 배추된장국, 목살구이와 파절이였다. 여기서는 제법 저렴하게 고기를 구할 수 있는 덕에 사실 이곳에 있는 동안 고기가 빠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런데 가끔 제부가 따로 식사를 하며 했던 질문들 중
우리 집에 이런 고기가 있었어?
가 있다. 목살을 구웠을 때 부드럽게 구워지면 그렇게 꼭 놀란 듯 질문을 해왔다. 그럼 동생은 자신도 이 고기가 이렇게 구워질 줄 몰랐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파절이는 식당에서 잘 보기 힘든 모양새인데 우리 집에서는 꼭 이렇게 파절이를 한다.
들기름, 소금, 깨, 고춧가루 약간, 파채
소금 간을 좀 쌔게 해서 살짝 파가 절여진 느낌에 들기름 향이 묻어나면 고기와 그렇게 잘 어울린다. 보통 식당에서는 빨간 양념에 적셔져 있지만 우리 집에서 즐겨 먹는 파절이는 한 번 맛보면 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점심이 가고 동생과 소소한 것에 박장대소를 하며 평온한 낮잠의 시간을 지나 저녁을 고민하는 시간과 마주했다. 저녁은 간단히 피자와 뇨끼, 뇨끼를 처음 먹어 보았는데 음,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먹었다. 새로운 맛에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 사이 땅콩이는 목욕을 하고 잠시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는 중 엄마가 이제 뒤집기를 시도해 보라고 했던 것이 떠올라 혼자 뒤집어 보았다 땅콩이의 역류에 당황하고 죄스러워해야 했다.
제부가 퇴근할 때 큰어머니께서 주셨다고 받아온 블루베리는 잼이 되어야 했고 잠시 땅콩이에게 성급한 뒤집기를 시킨 스스로에게 인고의 시간을 선물했다.
19일 남았다. 남은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길, 블루베리가 잼이 되어가는 것처럼 더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