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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Jan 16. 2024

유자차

달콤 쌉싸름하고 따뜻한

한 동안 왕복 4시간 이상의 아르바이트와 고군분투하며 꾸준히 올려본다는 것 또한 욕심이라 여겼다. 널뛰기하는 감정과 그 속에서도 잃고 싶지 않은 인연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며 이렇게 자리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라며 에둘러 변명하고 있었다.


감기에 걸렸다. 코로나가 이제는 그저 지나가는 질병인 듯 회상하며 고통스러웠던 증상을 웃으며 이야기하게 되기까지 걸리지 않았던 감기다. 임파선염, 편도염, 코감기, 목감기를 달고 살던 나인데도 말이다. 어찌 보면 마스크의 위력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굉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일하는 친구가 에이형 독감으로 오지 못 한 날, 나는 따끔한 목과 막혀버린 코에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딱 그 정도까지의 감기증상이라며 항생제 먹을 정도는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목이 잠기기 시작했고 가래가 끓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공복에 때려 붓는 아메리카노 욕구를 꾸역꾸역 참은 오늘, 결국 점심시간 이후 카페로 달려가서였을 까 목이 심연으로 잠기는 기분이 든 순간, 직원 한 분이 유자차를 권했다.


예전같았다면 괜찮다고 했겠지만 어제의 생강차도 넙죽 받았던 난,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간 과거의 따뜻했던 기억이 담긴 유자차가 새삼 너무 반가워서 우려 놓은 보리차가 담긴 텀블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실래요.


집에서 직접 담근 유자차를 조심스럽고 정성스레 옮겨주며 물을 잘 조절해서 마시라는 직원분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달콤했고 유자향이 가득 입안에 퍼져가며 몸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하루에도 수개의 에피소드가 생성된다. 웃고 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호의에 또 마음은 따뜻해지고 서투른 표현을 나이스한 타이밍에 어떻게 전해야 할 까. 부담스럽지 않게 너무 맛있다고 말해보았다. 출판디자인을 공부하던 시절 집에서 매년 유자청을 담근다며 작고 귀여운 병에 유자 일러스트를 직접 그려 편지와 함께 전해주었던 진이도 떠오르고 즐겨 듣던 노래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도 떠오르는 순간.


이 전날 병원에 다녀오니 건네주었던 직원 분의 생강차를 뛰어넘는 달콤한 유자차가 남은 오후 근무를 향긋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기분.


모든 시간이 좋을 수만은 없다. 모든 날들이 기쁨과 행복으로 점철될 수도 없다. 그렇지만 하루, 한 시간, 십분, 1분 그저 까르륵 웃고 하늘이 예쁘다 말하고 기분이 상쾌하다 말할 수 있는 그런 소소한 일상과 그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억울하고 화가 나고 어이없는 일들을 찰나로 만들며 순환한다.


유자가 부드럽게 씹히며 목 뒤로 넘어갔다. 오늘은 그런 날인 것이다.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결국 부드럽게 넘어가는 하루. 직원 분이 준 유자차는 쌉싸름함이 적고 달콤하고 향긋함이 그득한 유자차였지만 비유하자면 쌉싸름하지만 달콤하고 따뜻했던 하루였다고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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