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적 순간, 여섯.
<기다림>
파란 철문이 삐걱거리던 밤이었다. 거실 가운데의 미닫이문은 닫혀 있었다. 집 안의 불은 꺼져 있었지만, 집 밖에서 스며드는 가로등 불빛 때문에 거실은 아주 어둡지 않았다. 나는 미닫이문을 열고 턱 하나를 내려가 신발을 신었다. 130은 되었을까. 작은 발을 운동화에 대충 구겨 넣었다.
그 집에는 문이 두 개 있었다. 거실에서 나오면 오른편으로는 위로 올라가는 열 칸 남짓의 계단이 있었고, 왼편으로는 문밖으로 내려가는 두 칸짜리 계단이 있었다.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다른 집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서 이웃 동갑내기와 줄넘기하곤 했다.
그날 밤 나는 왼쪽 문으로 나갔다. 대문이라 하기엔 낮아서, 지나가는 어른들의 어깨 위가 훤히 보이는 파란 철문이었다. 문과 두 칸짜리 계단 사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양손으로 다리를 끌어안았다. 고개를 들면 가로등이 보였다. 건너편에는 철망 담이 있었고, 그 너머로는 경사진 길과 나무들이 있었던 것도 같다. 주차된 차가 가리고 있었던 것도 같고,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몇 시였을까. 몇 살이었을까. 아마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 집에서 이사한 건 1학년 1학기를 막 마친 뒤였으니까. 그날이 쌀쌀했는지, 반팔을 입고 있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나는 오른쪽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고개를 무릎에 묻었다가 다시 들었다. 가로등이 문 앞에 하나, 오십 미터쯤 뒤에 하나, 그 뒤로 또 하나 서 있었다. 그 너머는 어둠이 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 속에서 실루엣 하나가 나타났다. 천천히 가까워졌다.
엄마였다.
엄마는 놀라지도 않았다. 무슨 얼굴이었는지 뿌옇지만 놀라지 않은 건 확실하다.
“안 자고 뭐 하러 나와 있어. 들어가자.”
엄마는 내 머리를 스치듯 쓰다듬고, 내 등에 기대 반쯤 열려 있던 문을 밀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엄마를 따라 들어갔다. 거실에는 언니가 다리로 7자를 만든 채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자고 있었다.
꿈이었을까. 그 기억은 가끔 가슴을 아리게 한다. 단 한 번의 기억인데도.
<입원>
내 기억 속 파편적인 장면들을 떠올리려 하면, 영화의 플래시백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중 하나가 수술하던 때다. 6~7살로 기억한다. 미취학 아동 시절의 이야기다. 아파트에서 고모들과 살 때의 이야기. 이야기지만 기승전결은 없는 꼭지들이다.
자동문이 열린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듯하다. 고개만 깔딱 들어 자동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본다. 문밖에 작은고모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허둥지둥한다. 뭐라 말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다시 고개를 내려놓는다. 어떤 환한 빛이 눈으로 쏟아진다.
눈을 뜬다. 나는 나를 보고 있다. 그 시절에는 항상 커트 머리, 바가지 머리였다. 병실의 난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다. 울지도 않고 침대의 식사용 책상을 놓고 밥을 먹고 있다. 왜 난 혼자였지.
퇴원하는 날, 간호사들이 볼을 꼬집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떤 기분 좋은 칭찬을 늘어놓는 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나는 차 안에 있다. 새 차에서 나는 냄새가 기억난다. 그날 아빠는 첫 차를 뽑았다고, 기념이라고 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차가 초록색이었던 것 같은데 아닐지도 모른다. 창과 문 그 경계에 머리를 기대고 시선은 빠르게 스치는 밖을 향해 두고 있다. 어린 것이 뭐가 그리 무덤덤했을까.
다음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거실로 나오는 장면이다. 작은고모가 있다. 어떤 형체로 서 있다. 혹은 앉아 있다. 그냥 형체다. 뒤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문지방 위에 서서 웃옷을 살짝 들친다. 좌측 하복부에 빨갛게 된 드레싱이 붙어 있다. 너무 많이 울어 장이 아래로 내려앉았다고 했다. 듣고서 웃었다. 조각난 기억들에 감정이 없어서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토해냈다. 왜 그토록 울었는지 알려고도 않고.
<일출 여행>
어느 해의 12월 31일이었다. 일출을 보자고 대동단결하던 우리는 남동생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났다. 그날의 일은 남동생에게 상처로 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넷이서 떠난 동해 어느 바다로 향하는 길, 잠시 샛길로 들어간 우리는 어느 위독한 환자들이 지내는 산골 기도원, 아니 요양원이었나. 그런 곳에 차를 세웠다. 시동을 끄고 차 문을 조용히 여닫은 뒤 고개를 들었다.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전에도 본 적 없는 별들이 칠흑 같은 하늘에 촘촘히 박혀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이아몬드 같기도 했고,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 같기도 했다. 숨이 멎을 듯한 경이로운 기분이었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한낱 입김이 그 아름다움 속에서 묘한 그리움 같은 잔상을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