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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an 17. 2022

제15화 - 건설이야기

건설은 '노가다'산업이다

  제15화부터 제18화까지는 건설 관련 이야기를 다룬다. 이번 이야기는 건설 전반에 관한 것이다. 건설산업은 흙, 돌, 나무, 철재 및 그 밖의 재료를 사용하여 주택, 학교, 창고 등 건축물이나 도로, 제방, 교량, 철도, 항만, 상・ 하수도 등을 건설하고, 이를 유지하는 산업을 통틀어 말한다고 정의돼 있다. 즉, 제반 생산요소를 투입하여 건설시설물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산업이다. 衣・食・住란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3대 요소 중에서 주를 담당하는 전통 부문인 동시에 인류와 함께 영원히 존속할 산업이라 하겠다.

     

건설제품은 토목플랜트건축으로 대별된다     

  대부분의 하드웨어 생산에 건설 활동이 수반되는 까닭에 건설상품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크게 토목과 건축, 플랜트 분야로 나뉜다.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등 교통시설과 상・하수도, 전기, 가스 등 유틸리티를 제공하는 하드웨어는 토목 분야에 속하는 건설제품이다. 이들의 1차적인 수요자는 대개 정부나 지자체 등 공공 부문이다. 공장이나 발전소, 정유 및 석유화학설비 등 플랜트 분야의 경우 정밀하고 높은 수준의 엔지니어링 기술이 요구된다.

  건축 부문의 건설상품 역시 여러 가지다. 아파트를 비롯한 주거용 건물과 백화점 등의 상업용 시설 및 오피스 빌딩, 전시관, 공연장, 공공청사, 병원, 종교시설, 경기장 등 시설물 모두가 건축에 해당한다. 시장 규모 면에서는 건축이 전체 건설의 70% 이상 차지한다. 건설상품의 수요자는 정부 등 공공 부문과 민간으로 대별된다. 민간도 기업과 가계 등으로 구분된다.


건설은 종합 네트워크 산업이다     

  건설산업은 일반 산업과는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종합 네트워크 산업이란 점이다. 건설 생산에는 다양한 분야의 참여자가 요구된다. 공정도 복잡하기 짝이 없다. 건물을 지으려면 부지 확보와 건축허가, 설계도 작성이 선행돼야 한다. 설계는 건축설계사무소가 담당한다. 토목 공사라면 엔지니어링 업체가 설계 업무를 맡게 된다. 시공 과정에서는 터파기를 포함한 기초 공사, 골조 공사, 가설 공사, 내・외장 공사 등으로 구분돼 추진된다. 전기・통신 공사와 설비 공사는 별도로 발주되어 진행되기도 한다.

  과정마다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제각기 특장을 가진 주체들, 즉 전문건설업체들의 참여가 불가피하다. 시멘트, 철근, 타일, 창호 등 자재를 공급하는 업체와 중장비, 타워크레인, 굴삭기 등 장비 보유자도 공정에 관여한다. 물론 공종별로 숙달된 기능 인력들이 시공 단계마다 참여해야 함은 필수적이다. 종합건설업체는 모든 공정을 아우르면서 공사를 수행한다. 과정마다 공사가 설계와 시방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감리도 있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일련의 생산 과정에서 한 단계에서라도 차질을 빚게 되면 공기가 지연되고 사업자와 시공자는 추가 부담을 안아야 한다. 따라서 다른 어느 산업에서 보다도 효율적인 사업관리가 성공의 관건이 된다. 참여자들 간의 하모니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이 역할은 통상 현장소장의 몫이다. 그런데 근년에 와서는 CM(construction management) 또는 CMer라고 하는 사업관리업체나 사업관리자에게 이 업무를 위탁하기도 한다.


건설현장에서 비오는 날은 ()치는 날이다     

  건설시설물은 토지에 부착돼 있다. 주택이나 도로도 땅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교량이나 터널 등은 하천이나 해상 또는 지하에 건설되나 이 또한 광의의 토지에 속한다. 이처럼 건설시설물은 움직일 수 없는 비이동성(unmovable) 재화이기에 부동산(不動産; real estate)이라 한다. 그래서 생산은 소재지 현장에서만 가능하다. 생산 공장이 건설현장인 셈이다. 따라서 제품의 수출입이 불가능하며, 해외건설 수출은 인력, 자재 등을 생산요소를 이동하여 생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옥외 생산이어서 자연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시공기술이 발전됐다고는 하나 혹한기에는 콘크리트 양생이 차질을 빚고, 비오는 날은 일하기가 어려워 ‘공치는 날’이 되기 십상이다. 작업 여건도 만만치 않아 건설은 어렵고(difficult), 위험하고(dangerous), 더러운(dirty) 이른바 3D 업종으로 치부된다. 더욱이 자연환경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추가됨으로써 리스크가 큰 산업이기도 하다.

  건설시설물이 완공되면, 즉 생산이 종료되면 제품만 남고 공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건설과 건설인을 ‘노가다’로 부르지 않을까 한다. ‘노가다’의 어원을 굳이 따지자면 흙을 다루는 사람이란 뜻의 일본어 ‘도가다(土方)’에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도가다’라는 말이 현해탄을 건너는 사이 한 획을 떨어뜨려, 영어의 노(no)와 일본어 가다(形)가 합성된 의미로 해석되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노가다’는 형체가 없는, 즉 공장이 없는 건설업의 특성을 적절하게 반영한 용어일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언어생활 차원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의미만 되새겨봄이 어떨까.


건설시설물은 아주 비싼 재화다     

  건설제품인 시설물은 대단히 비싼 재화다. 2021년 4월 기준 전국 평균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 1,355만원이고, 서울의 경우는 이보다 2배 이상인 2,815만원으로 나타났다. 2021년 들어 서울 아파트의 가구당 평균가격은 10억원을 넘어 10월 현재 12억원에 달한다. 토목 시설물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조만간 발주예정인 서울지하철 9호선 4단계 공사의 기본계획을 보면 보훈병원↔고덕강일1지구 간 총연장 4.12km에 4개역을 설치하는데 공사비가 6,477억원으로 계상돼 있다. km당 건설비가 1,572억원인 셈이다.

  서울의 31번째 한강 교량인 월드컵대교는 길이 1,980m의 왕복 6차선으로 2021년 9월에 개통됐다. 연결도로를 제외한 교량 부분 공사에만 3,550억원이 투입됐다. 1km 건설에 1,792억원씩 소요된 것이다. 고속도로의 경우를 보면 경남 함양과 울산을 연결하는 144.6km의 4차로 고속도로가 2024년 완공예정으로 건설 중인데 총공사비는 6조3,048억원이다. 1km에 436억원 꼴이다. 건설비용을 가격이라고 보면 km당 지하철과 한강교량이 1,500억원 이상이고, 고속도로는 400억원을 훌쩍 넘는 수준이다.

     

건설은 수주산업이고 생산기간이 길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제외한 건설시설물들은 단품(單品)으로 생산된다. 또한 동일한 제품은 거의 없고, 시설물별로 생산 공정이 상이하다. 수요자와 공급자인 건설업체 간에 직접 거래되며, 계약한 후에 건설을 시작하는 ‘선(先)계약 후(後)생산’의 주문생산 방식이다. 건설계약은 1인의 수요자를 두고 다수의 공급자(건설업체)가 경쟁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경쟁구도의 시장을 수요독점(monopsony)이라 한다.

  수요독점 시장에서는 독점이윤이 수요자에게 귀속된다. 수요자가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즉 경쟁력 있는 공급자와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가로 계약할 경우에는 부실공사가 우려된다. 따라서 공급자에게 적절한 이윤을 보장해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건설시설물의 생산기간은 길다. 원자력발전소나 공항, 고속철도, 고속도로 등은 5년 이상 또는 20년이나 소요되기도 한다. 아파트를 건설하는데도 착공 이후 완공까지는 빨라야 2∼3년이 걸린다. 전체 건설시설물의 평균 건설기간은 30개월 정도다. 생산기간이 장기여서 수요와 공급 간에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 당장 필요한 시설물이지만 공급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된다는 얘기다.

  2020년 11월 공급 부족으로 아파트 가격이 치솟자 주무장관인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들의 현안 질의에 대해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 그러나 아파트는 공사기간이 많이 걸려 당장 마련하는 것은 어렵다”고 한 답변은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선계약 후생산 방식에다 공기가 길고 타 산업에 비해 생산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계약 당사자, 특히 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 또한 필요하다. 건설업 등록 시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금이나 기술 인력 보유를 요건으로 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공사이행 보증이나 하자보수 보증 등 건설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보증제도도 운용되고 있다.

      

공공성과 공익성이 큰 재화여서 정부 수요가 많다     

  건설시설물 중에는 공익성과 공공성이 큰 것들이 많다. 특히 사회간접자본(SOC; social overhead capital)은 공공재(public goods)로서 어느 정도 공급되었느냐가 국가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SOC는 외부효과(externality)를 가진 재화다. 외부효과란 소비의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에서 비롯된다.

  도로의 경우 혼잡을 빚지 않는 수준까지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이 비경합성이다. 비배제성이란 방송권역 내에서는 어느 누구나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청 또는 청취할 수 있는 방송처럼 소비를 제한할 수 없는 특성을 의미한다. 물론 비용을 지불한 특정인들만 시청할 수 있는 유선방송 등도 있지만.

  시장 메커니즘 하에서 외부효과를 가진 재화는 전혀 공급되지 않거나 공급되더라도 최소한에 그친다. 내가 소비하려고 투자하게 되면 타인은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는 무임승차(free ride)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서 투자하고 있다. 2019년의 경우 전체 건설공사 발주액 166조원 중 29%인 48조원이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 부문에서 발주됐다. 대부분이 SOC 분야에 대한 투자다.

  민간 부문이 투자하는 건설시설물에서도 안전성 확보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다중이용시설인 유통시설이나 체육관, 공연장 등은 더욱 그러하다. 때문에 건설에는 다양한 형태의 규제가 불가피하다. 정부 간섭이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는 산업인 것이다.

     

SOC 투자는 경기활성화 대책으로도 활용된다     

  어차피 정부가 담당해야 하는 SOC 투자라면 부수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모색돼야 한다. 그 중 하나는 경기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건설투자가 활용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New Deal) 정책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Jonn Maynard Keynes)가 주창한 유효수효 이론에 따라 테네시유역개발공사(TVA; Tennessee Valley Authority)를 설립하고, 1933년부터 댐 건설 등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벌였다. 유효수요 이론은 수요 부족으로 경기가 침체되었을 때 정부의 과감한 투자를 통해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경제 회복이 가능하다는 논리에 기초한다.

  건설투자가 경기 대책에 탁월한 수단임은 틀림이 없다. 세금감면이나 금리인하 등 조세 및 금융정책에 비해 효과가 상대적으로 빨리 나타난다. 즉,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시차(time lag)가 짧다는 것이다. 정책시차는 경기가 침체라고 감지하는 인식시차와 대응책을 마련하여 시행하는데 소요되는 실행시차, 그리고 정책 효과가 나타나기까지의 외부시차로 구성된다. 건설투자는 다른 경기대책 수단보다 외부시차가 단축되는 효과가 있다. 한편으로는 공공공사 발주 시 지역제한 입찰, 중소 건설업체와의 공동도급 의무화 등을 통해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는데도 건설투자가 활용되고 있다.

     

적격심사낙찰제를 건설업계에선 '운찰제(運札制)'라 부른다     

  정부가 발주하는 건설공사에서 낙찰자를 선정하는 방식 중 대표적인 것이 종합심사제와 적격심사제다. 종합심사제는 최저가낙찰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2016년부터 도입된 제도로서 100억원 이상 규모의 대형 공사에 적용된다. 100억원 미만 공사에는 적격심사제가 적용되는데 내용이 매우 복잡하다.

  기본적인 구조는 계약이행능력과 입찰가격 점수를 합산한 후 통과점수인 95점 이상의 입찰자 중 가장 낮은 입찰가격을 제시한 자를 낙찰자로 선정하는 형태다. 두 가지 요소의 배점 비중은 공사규모별로 다르다. 계약이행능력은 공사수행능력, 경영상태, 자재 및 인력조달 가격과 하도급 관리계획의 적정성 등으로 평가한다. 가격요소의 배점 비중이 50%인 5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의 공사의 경우 가격점수는 아래 산식에 의거 산정된다.      

  계약이행능력에서 만점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가격점수가 낙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 대부분의 입찰 참여자는 계약이행능력에서 만점을 받은 업체들이다. 이 경우 종합점수가 95점 이상 되려면 가격점수를 45점 이상 받아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자가 낙찰자가 되므로 (예정가격-A) 대비 85.5%의 (입찰가격-A)를 써넣은 업체가 선정된다. 45점을 받으면서 가장 낮은 가격이 (예정가격-A)의 85.5%이기 때문이다. A의 값은 대체로 알려진 금액이므로 예정가격이 얼마냐에 따라 낙찰자로 결정될 입찰가격이 계산된다.

  문제는 정확한 예정가격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발주처는 입찰 시 예정가격이 아니라 기초가격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는 기초가격의 ±2∼3%(발주처별로 상이한데 조달청의 경우 ±2%) 범위 내에서 동일한 비율, 예컨대 ±2%일 경우는 0.3%씩 가감하여 15개의 복수예정가격을 작성한다. 입찰자들은 15개 복수예정가격도 입찰 전에 알 수 있지만 그 중에 4개를 뽑아 산술평균한 값을 예정가격으로 삼는다.

  과거에는 경찰 입회하에 발주처 관계자가 15개 중 4개를 추첨했으나 현재는 입찰에 참여한 자들이 각각 2개씩 선택하여 가장 많이 뽑힌 순서대로 4개의 복수예정가격이 정해진다. 추첨과정에서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2001년 개봉된 영화 ‘친구’를 보면 냉장고에 보관했던 탁구공 4개를 추첨함에 섞어 넣어 이들이 선택될 수 있도록 조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추첨자로 하여금 차가운 탁구공을 뽑도록 하는 부정행위였던 것이다.

  15개 복수예정가격 중 4개를 선정하는 경우의 수는 1,365가지다. 낙찰자가 될 확률은 1/1,365인 셈이다. 그래서 ‘운찰제(運札制)’라고 부른다. 실체가 없는 이른바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가 양산되는 것도 낙찰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서울시의 조사 결과 2021년 3월 현재 서울 지역에 등록된 12,992개 건설업체 중 15%에 해당하는 1,900여 곳이 페이퍼 컴퍼니인 것으로 추정됐다. 적격심사제가 저가투찰로 인한 부실시공을 방지하면서 건설업체들의 적정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되었으나 ‘운찰제’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제도가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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