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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an 13. 2022

제14화 - 수산업이야기

수산업은 잡는 데서 기르는 어업으로 전환했다

  수산업은 바다, 호수, 하천 등 물속에 사는 생물을 인류생활에 유용하도록 이용・개발하는 산업으로 정의된다. 수산업의 생산물이 수산물이다. 

    

수산업은 어업양식업수산가공업으로 나뉜다     

  수산물은 수산동물과 수산식물로 대별된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수산생물을 다음 표와 같이 분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류와 패류(貝類), 해조류(海藻類), 기타 수산물로 구분하기도 한다. 서식지에 따라 해산물과 민물수산물로 나눌 수 있다.     

수산물 분류                    

 자료 : 국립수산과학원 홈페이지

  어류는 아가미가 있는 척추동물이다. 굴, 조개 등 패류는 오징어나 문어 등과 함께 연체동물에 속한다. 해조류와 해초류 모두 해양저서식물(海洋底棲植物)이나 해초류는 잎, 줄기, 뿌리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임에 반해 해조류는 전체가 잎 모양이 평평한 엽상체(葉狀體)인 해양식물이다.  

  수산물을 생산하는 업태는 어업, 양식업, 수산가공업 등으로 구분된다. 어업은 천연의 수산생물을 채취하거나 포획하는 사업으로 연근해어업, 원양어업, 내수면어업으로 세분된다. 연근해어업은 다시 당일 조업이 가능한 연안(nearshore)어업과 그보다 먼 지역의 근해(offshore)어업으로 나뉜다. 원양어업은 해외 수역을 조업구역으로 하는 어업이며, 내수면어업은 강이나 호수, 저수지 등 내수(內水) 구역에서 하는 어로활동이다.

  양식업은 수산생물을 인위적으로 번식・조장하는 사업이고, 수산가공업은 어업 또는 양식업의 생산물을 원료나 재료로 하여 보존식품 등을 생산하는 사업을 지칭한다. 이밖에 어획물 유통을 포함한 수산물유통업을 수산업의 한 분야로 취급하기도 한다.

     

일찍이 우리나라는 어로전관수역으로 평화선을 선포했다     

  어로는 선사시대 이래 수렵과 함께 인류에게 먹거리를 제공해 온 활동이다. 신석기 후기로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에도 고래를 비롯한 해양생물들이 묘사돼 있다. 수산물은 산업화 이전인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주종 수출품이었을 만큼 중요한 경제재였다. 1949년의 경우 수산물 수출량은 10,900톤으로 총수출의 93%를 점했다.

  그러나 생산기반은 취약하기 짝이 없었다. 1956년 통계를 보면 당해 연도의 수산물 생산량은 34만7천톤이었고, 어업가구 19만5천에 어가인구는 68만명이었지만 어선 대부분은 무동력선이었다. 총 어선 3만9,634척 중 무동력선이 3만5,011척으로 88%를 점했다. 그래서 일본 어선들이 수시로 우리나라 연안에 들어와 어로작업을 했다.

  1945년 9월 미군정이 맥아더 라인이란 어로제한 구역을 설정했음에도 6.25 전쟁 중인 1952년에 이승만 대통령은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을 통해 평화선을 선포했다. 평화선을 둘러싸고 한일 간 어업회담을 일곱 차례나 개최한 끝에 1965년 양국 간 어업협정이 체결됨으로써 평화선의 효력은 종식됐다.     

맥아더 라인과 평화선(이승만 라인) 


수산 분야 투자 확대로 수산물 생산 및 수출이 급증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대일청구권자금 중 무상자금 3억달러의 9%에 해당하는 2,700만달러를 수산업 부문에 투자했다. 이와는 별도로 1966∼75년의 10년 동안 한일어업협력가금 9,000만달러를 조성하여 원양어업과 연근해어업 분야에 각각 6,000만달러 및 3,000만달러를 투입했다.

  그 결과 수산물 생산량은 1961년의 44만8천톤에서 1970년 93만5천톤으로 2배 이상 증가했고, 1980년에는 241만톤을 기록했다. 수산물 수출 또한 1961년 732만달러에서 1970년 9,005만달러, 1980년에는 8억7,140만달러로 급증했다. 어업인구는 1967년 147만7천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여 1980년에는 84만4천명으로 줄어들었다. 2019년 말 현재 어업인구는 총 인구의 0.2%인 11만 4천명이다.

  양식기술도 개발되고 미국시장으로의 수산물 수출도 이루어졌다. 미역 양식이 1968년부터 본격화된데 이어, 1973년에는 양질의 다시마를 양식하는 방법과 개량된 김 양식법 개발에 성공했다. 1972년에는 한미패류(貝類)위생협정 체결로 굴 등 조개류의 대미 수출이 시작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수산물 생산량은 크게 감소했다     

  1986년 366만톤에 달했던 수산물 생산량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연근해와 원양어업의 동반 부진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여 2000년대 초반에는 250만톤 내외로 줄어들었다. 연근해어업은 남획에 따른 어족자원 고갈과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도 상승, 중국의 불법어선 조업 등으로 생산량의 정체 및 감소 현상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원양어업의 경우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유엔해양법 발효와 연안국들의 조업규제 강화에 기인하였다.

  이에 따라 수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1994년부터 어선 감척을 추진하여 2007년까지 근해어선 2,028척, 연안어선 6,537척 등 8,385척을 폐선 조치했고, 불법 소형기선저인망어선도 정리했다. 한중어업협정의 체결과 함께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도 강력하게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후 양식어업 생산량이 크게 증가함으로써 전체 수산물 생산량은 늘어났다. 2019년의 생산량은 사상 최대치인 386만1천톤을 기록했다. 2020년에는 371만3천톤으로 전년보다 3.8% 감소했다. 천해(淺海)양식으로 생산된 수산물이 2006년부터 연근해 일반 해면에서의 생산량을 상회하기 시작했고, 2020년의 경우 전체 수산물 생산량의 62.2%인 230만1천톤에 달했다. 

  자료 : 통계청, 「어업생산동향조사」

     

한국인은 수산물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수산물이 주요한 외화획득 원천이었으나 2001년부터는 수산물 수입이 수출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소득 증대와 더불어 수산물 수요가 증가한 데 반해 어획량은 정체 내지는 감소함에 따라 수산물 수입은 급증 추세를 보였다. 2018년의 수입액은 사상 최고치인 61억2,500만달러에 달했다. 2019년과 2020년의 수입액은 각각 전년 대비 5.4% 및 3.0% 감소했다. 반면 수출은 2010년대 들어 20억∼25억달러 수준에서 횡보함으로써 수산물 부문의 연간 무역수지의 적자 규모는 30억달러를 상회한다. 주종 수출 품목은 김과 참치이며, 수입 품목은 오징어, 명태, 새우, 연어 등이다.

수산물 수출입 추이              

  자료 : 해양수산부, 수산정보포탈(www.fips.go.kr)

2020년 10대 수산물 수출입 품목(단위: 백만달러,%)

  자료 :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물수출정보포털(kfishinfo.co.kr)

  우리 국민들은 수산물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13∼15년 기간 중 연평균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58.4kg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53.3kg를 소비한 노르웨이고, 3위 일본 50.2kg, 4위 중국 39.5kg, 5위 베트남 35.4kg 순이다. OECD가 작성한 「수산업보고서」에도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이 68.1kg으로서 세계 1위임은 물론 전 세계 평균치 20.5kg의 3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해마다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식량수급표」를 보면 2019년의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69.8kg으로 쌀(가공용 포함) 70.1kg 및 육류 68.1kg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2017년에는 쌀보다 많이 소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9년의 수산물 자급률은 68.4%였다.

  품목별 소비량을 보면 2018년의 경우 명태가 42만70톤으로 가장 많았으며, 오징어 30만9,418톤, 고등어 17만2,059톤, 갈치 6만7,840톤, 조기 5만687톤 등이었다. 멸치와 굴, 새우도 소비량 상위 품목이었다. 2015년까지만 해도 1위 품목은 오징어였으나 어획 부진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수요가 줄어들었다.

     

원양어업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수산업의 효자다     

  원양어업은 1957년 230톤급 참치연승 어선 지남호(指南號)가 인도양에서 시험 조업을 착수한 이래 1960년대 중반에는 태평양과 대서양까지 진출하여 참치연승 외에 선망어업을 시작했다. 트롤(trawl)어업으로 저서어(底棲魚)도 어획했다. 연승은 긴 오랏줄에 여러 개의 낚싯줄을 늘어뜨려 물고기를 낚는 어구다. 선망어업은 그물을 둘러쳐서 어획하는 방식이다. 트롤은 바다 밑바닥으로 끌고 다니면서 깊은 바다 속 물고기를 잡는 그물로서 저인망이라고도 한다. 원양어업의 대표 기업인 동원산업과 사조산업은 각각 1969년과 1971년에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참치를 비롯한 수산물을 국내외에 공급하고 있다.

  오대양을 누비던 원양어업은 1994년 UN해양법 발효와 이에 의거한 연안국들의 외국어선 조업규제 강화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정부는 1977년 이란을 시작으로 투발루, 솔로몬, 키리바시, 모리타니아, 에콰도르, 파푸아뉴기니 등 원양어업 관련 해양국들은 물론 러시아, 일본, 중국과도 어업협정을 체결하여 우리 어선들의 조업을 지원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양어업 어획량은 1992년 102만5천톤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여 2000년 전후에는 60만∼80만톤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감소 추세는 이후에도 지속되어 2016년에는 50만톤 미만으로 떨어졌고 이후 5년 동안 연평균 어획량은 48만 3천톤을 기록했다. 특히 2020년에는 전년비 14.3% 감소한 41만 6천톤에 그쳤다.

  어종별로는 다랑어(참치)가 2/3 이상을 차지하는데 2019년의 경우 전체 원양어업 어획량 46만2,125톤(「원양산업종합정보시스템」의 집계 기준으로 통계청 「어업생산동향조사」의 수치와는 다소 차이가 있음)의 68.3%인 31만5,534톤이 다랑어였고, 다음으로 새우 3만6,126톤(7,8%), 오징어 3만4,084톤(7.4%), 명태 2만3,655톤(5.1%), 꽁치 23,187톤(5.0%) 순이었다.

  원양어업은 수출 역군이었다. 원양어업 시작 이듬해인 1958년부터 1979년까지 22년간 원양어업의 수출 누계는 20억달러로서 우리 경제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오늘날에도 원양어업 생산량의 절반 정도는 수출된다. 2019년에는 수출물량 22만5천톤에 원화로 환산한 수출금액이 약 5천억원이었다.


천해양식은 조선시대 때부터 시작됐다     

  오늘날 우리나라 수산물 생산량의 2/3 가까이를 차지하는 양식어업은 조선시대부터 시작됐다고 기록은 전한다. 1640년(인조 18년)에 병자호란 때 의병장이었던 김여익(金汝翼)이 전남 광양 태인도에서 김을 양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의 본래 명칭은 해의(海衣)였으나 김여익이 왕실에 김을 진상한 이후 인조가 그의 성을 좇아서 김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선 1431년에는 섬진강 하구 및 순천 앞바다 여자만에서 각각 굴과 꼬막을 양식했다고 태종실록에 기술돼 있다.

  해방 후 우리나라의 양식어업은 1960년대 피조개와 가리비 등 패류양식으로부터 본격화됐다. 1970년대 초에는 굴의 대량 양식이 추진됐다. 어류양식은 1964년 방어를 단기간 내에 길러내는 축양(畜養)기술을 개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경제발전과 소득 향상으로 고급 어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국민횟감으로 자리 잡은 넙치(광어)의 양식도 보편화됐다. 양식하기 이전 넙치는 대단히 비싼 생선이었다.

  우리나라 양식어업은 생산량이 세계 7위 수준이다. 그러나 김과 미역, 전복의 경우는 세계 1,2위를 다툰다. 품목별로는 해조류가 주종을 점한다. 2019년 양식생산량 1위는 66만2,577톤의 다시마였고, 2위는 김으로 60만6,873톤이 생산됐다. 미역은 49만4,967톤으로 3위였다. 이들 3개 품목을 포함한 해조류가 181만2천여톤으로 전체 양식생산량 237만2천여톤의 76.4%를 차지했다. 해조류 다음으로는 패류가 18.3%를 점했다. 굴 32만6,190톤, 홍합 5만1,560톤, 바지락 2만2,254톤, 전복 1만8,436톤 등이었다. 어류로는 넙치 4만3,320톤, 조피볼락(우럭) 2만348톤 등이며, 멍게의 양식생산량은 2만6,040톤이었다.

  해조류의 양식생산량이 많은 이유는 우리 국민들이 김이나 미역 등을 즐겨먹는 데도 있지만 전복먹이용으로 대량 소비되기 때문이다. 양식 다시마의 70∼80% 정도는 전복먹이용으로 공급된다. 미역의 경우는 아예 양식시설부터 식용과 전복먹이용으로 구분해서 설치한다. 2020년산 미역시설량 중 전복먹이용이 64%를 차지했다. 

  우리 국민들은 1인당 연간 5kg 정도 해조류를 섭취한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영어로는 해조류와 해초류를 통칭하여 seaweed라 한다. 번역하자면 바다잡초쯤 된다. 김은 검은 종이와 같다고 해서 black paper라고도 부른다. 한류와 더불어 세계인의 해조류 소비는 늘어나는 추세다. 김의 수출대상국도 급격히 증가하여 100개국이 넘는다. 이제는 우리부터 해조류를 바다잡초가 아니라 바다채소인 sea vegetable이라고 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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