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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an 23. 2022

제17화 - 지가이야기

땅값이 '마이너스'일 수 있을까?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1가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 부지가 2021년에도 전국 최고의 금싸라기 땅으로 고시됐다. 공시지가가 m2당 2억650만원, 한 평에 6억8,352만원이다(코로나19 여파로 2022년 공시지가는 전년비 8.5% 하락한 m2당 1억8,900만원으로 예정고시됨). 가장 싼 땅인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소재 임야의 평당 993원보다 68만8,300배나 비싸다. 이처럼 가격차가 큰 재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공시지가 최고액은 최저치의 70만배 정도다     

  이동이 불가능한 독특한 재화이기에 땅은 소재지가 가격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따라서 물리적인 속성인 토질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같은 물건이 아니므로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은 당연하다. 즉, ‘일물일가(一物一價)의 법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재화가 곧 땅이다.

  공시지가는 해마다 정부가 조사하여 발표하는 부동산 가격이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 등 사회보험료는 물론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 국세와 재산세, 취득세 등 지방세 부과의 기준으로 삼는다. 실제 거래된 가격, 즉 시가 대비 공시지가의 비율을 공시지가 현실화율이라 하는데 2021년의 경우 68.4%다. 이 비율을 그대로 적용하면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 부지의 땅값은 평당 10억원에 육박한다.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                   공시지가 최고-최저지역


  땅은 노동, 자본과 더불어 3대 생산요소 중 하나다. 임금과 이율이 각각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듯이 지가 역시 그 땅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무엇이 생산되느냐가 중요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논(畓)값이 비쌌다. 더욱이 소출이 많은 문전옥답(門前沃畓)이라면 재산목록 1호에 올랐었다. 지금은 임야만도 못한 값어치의 논이 수두룩하다. 쌀의 상대가격 하락으로 논의 부가가치 창출액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절대농지로 분류돼 있어 토지생산성이 높은 지목으로의 변경이 어렵다는 점도 논의 상대가격을 낮추는데 한몫을 한다.

     

한때 뉴욕 맨해튼 땅값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지하철역이 들어서면 주변 땅값이 치솟는다. 유동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유통・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역세권이 형성되고, 그만큼 토지의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충무로 1가의 지가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의 중심지 뉴욕, 그 중에서도 맨해튼 월스트리트와 파크애비뉴 주변 땅값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야 이치에 맞는다. 그런데도 1980년 말 한때 이 지역 땅값이 ‘마이너스(-)’란 이상한 현상을 보였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이 수수께끼를 서양의 전문가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토지가격 산출 방식이 우리의 전통적 개념과 상이한데 기인한다. 땅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고, 활용될 때만 가치가 부여된다. 또한 나대지 등 사용되지 않고 있는 토지의 가격은 땅의 무한한 내구성에 따른 미래의 활용 가치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맨해튼 지역의 상업용 건물 건축비가 평방피트당 250달러였음에 반해 빌딩의 매매 가격은 200달러에 불과했다. 부지대를 제외하고도 매도자는 평방피트당 50달러씩 손해 본 셈이다.

  건축비는 실제로 투입된 실비용이다. 그러므로 빌딩 가격과 건축비의 차액은 토지의 기회비용으로 간주돼야 한다. 이 빌딩의 용적률이 1,000%라면 토지가격은 평방피트당 마이너스(-) 500달러로 산출된다. 그러면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을까. 당시 미국 경제는 극심한 불황에 처해 있었다. 이로 인해 토지의 활용으로부터 얻어지는 부가가치가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상업지역의 지가가 워낙 높은 까닭이다. 중소형 빌딩을 거래할 때 건물 가격은 거의가 무시된다. 예컨대 200평 부지에 건평 500평인 빌딩을 매매할 경우 가격이 100억원이라면 토지 면적만을 기준으로 평당 5,000만원에 거래됐다고 말한다.

     

주택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는 다양하다     

  주택의 경우도 마찬가지기는 하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attribute)는 보다 다양하다. 전통적으로 교통의 편리성, 즉 접근성이 집값에 큰 영향을 미쳐 왔으며 오늘날에도 절대적이다. 지하철역이 들어서거나 신설 도로가 개설되면 주변 주택의 가격이 오른다고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역세권이란 통상 역에서 도보로 10분 이내 거리의 지역을 말하는데 접근성과 함께 생활의 편의성도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요즘에는 슬리퍼를 신고 다닐만한 지역의 범위에서 여러 가지 서비스가 제공되어 일상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슬세권도 등장했다. 관련하여 맥도날드 가게가 인근에 있다는 맥세권, 스타벅스 커피점과 가까운 벅세권, 주변에 영화관이 있는 영세권도 선호되는 주택 입지 중 하나다. 모두가 편의시설에의 접근성이 양호한 곳으로 꼽힌다.

  경관 또한 결코 무시 못 할 정도로 주택 수요에 대한 영향력이 커졌다. 서울 한강변 아파트 단지의 경우 같은 동(棟)이라 하더라도 한강이 잘 보이는 가구는 수억원 이상 비싸게 팔린다. 택지도 평지보다는 구릉지가 선호되고, 아파트의 로열층이 종전의 중간층에서 고층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연유로 풀이된다.

  소득이 증대되면서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 또한 커지고 있다. 때문에 경관의 수려함과 더불어 환경이 양호한 지역은 1급 주택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의 심각성이 제기되자 전원주택이 각광을 받으며, 공원이나 수풀과 가까운 이른바 숲세권이 선호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렵게 출제된 수능으로 특정지역 아파트값이 오른 적 있었다     

  사회적 환경과 주변 여건도 주택 수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고급 주택지로 손꼽혔던 뉴욕의 브루클린과 맨해튼의 할렘 지역이 흑인의 유입과 범죄율 급증으로 폐허로 변해 버렸다. 달리 표현하면 집값이 바닥이 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서울 강남지역의 경우는 8학군이라는 경제외적 요소가 반영되어 집값이 더 비싸졌다고 볼 수 있다.

  전혀 뜻밖의 이유로 특정지역의 아파트값이 상승한 적도 있었다. 2001년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서울 강남에서도 유독 대치동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해 서울 아파트값의 상승률이 7.7%였던데 반해 대치동 집값은 47.1%나 올랐다. 전문가들은 하필이면 대치동 아파트값만 특별히 요동쳤는지 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2001년 11월에 실시된 수학능력시험이 어렵게 출제되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분석이 정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능이 어려워지면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고, 유명 입시학원들이 모여 있는 대치동의 주거 수요도 따라서 커졌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과 명문 사설학원의 유명세를 모르고서는 시험 문제의 난이도와 집값의 상관관계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퍼즐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의 아파트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정부의 계속되는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의 경우 평당 1억원이 넘는 가격으로 거래됐다. 이 아파트의 용적률이 250%이고, 건축비가 평당 1,000만원이란 가정 하에 맨해튼 상업용 빌딩의 사례와 같은 방식으로 지가를 계산해 보면 평당 2억2,500만원 이상으로 나온다. 교통이 편리하고 학군이 우수하다는 등 주거 여건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주거지 땅값으로는 너무 비싸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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