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 부모님 단톡방 운영한 썰
훈련병 곰신 단톡방에 초대받다
더캠프가 활성화된 지금은 더캠프에서 모든 소식을 알려주겠지만, 더캠프가 없었던 당시에는 남자친구가 입대하면 곰신카페에 가입하는 게 거의 국룰이었다. 카페에는 편지 답장, 단체사진 등 다양한 정보들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훈련소 생활동안 포상전화를 따야만 최대 3분 정도 통화가 가능했고, 포상전화도 못 따면 훈련소 기간 내내 목소리 한 번 못 들을 수도 있어서 그만큼 카페의 존재가 소중했다.
남자친구가 입대하기 전부터 나는 여기저기 알아보고 만발의 준비를 했던 터라, 남자친구의 소속이 정해지자마자 곰신카페에 등업 조건에 맞춰 글을 올렸다.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아마 이런 식)
"안녕하세요 저는 0월 0일에 00 신교대에 입대한 0중대 0소대 0번 000 훈련병 여자친구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을 보며 혹시 같은 훈련소에 간 사람이 있으면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러던 중 너무 감사하게도 한 분이 같은 신교대에 같은 날 입대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단톡방 주소를 알려주셨고, 거기에 들어가게 됐다. 훈련소 동기 곰신 단톡방이었다 ㅋㅋㅋㅋ 나는 13번째쯤 들어갔고 이후로도 사람들이 쭉쭉 들어와서 총 28명 정도 모이게 됐다. 같은 날 들어갔고, 같은 날 수료하고 같은 날 전역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동질감이 들었다.
남자친구 입대하고 외롭고 슬프던 그 시기에 그 단톡방이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 현실에 있는 친구들도 같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온전히 공감하고 이해해 주기 어려운 이야기를 여기서는 그 어떤 설명 없이 나눠도 같은 마음으로 아니까 현실 친구들보다 얼굴도 모르는 그 카톡방 곰신분들이랑 연락을 더 많이 했다.
안타깝게도 훈련소 시기동안 헤어진 분이 두 분 있다. 한 분은 남자친구가 수료날까지 아무 연락도, 아무 편지도 하지 않아서 잠수이별 당하셨고, 또 다른 한 분은 인편에 여자친구가 두 명이나 더 있어서 바람피운 사실이 들통나서 헤어지셨다. 너무 화가 나서 연락을 취할 방법을 여기저기 찾아봤으나 결국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단톡방에서는 그 두 여자친구 분의 편이 되어 함께 화내고 함께 슬퍼해줬다.
게다가 그 단톡방에 내 남자친구랑 같은 생활관을 쓰는 동기의 여자친구분이 두 분이나 있어서 나한테 그분들이 더 특별했다. 그분들의 남자친구들이 손 편지에 내 남자친구와 서로의 이름을 언급하며 서로 친하다는 둥 같이 잘 지낸다는 둥 그렇게 편지 써주셔서 여자친구들이 그 부분을 사진 찍어서 보내주실 때면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내 남자친구의 이름 그 글자가, 내 남자친구랑 잘 지낸다는 그 말이 나를 너무 행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남자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남자친구는 그 두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더 친했고, 그 두 사람이 생활관 내에서 제일 말 안 듣는 사람들이었어서 남자친구가 그 두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제일 친밀하게 여기고 좋아했던 그 두 여자친구분의 남자친구가 내 남자친구 고생시키고 목쉬게 만든 주범이었다니.
남자친구의 연락이 오지 않는 내 핸드폰에는 대신 훈련소 동기 곰신 카톡방 연락이 하루 종일 울려댔다. 남자친구 보고 싶다고 우울해하다가도 재미있는 이야기 나누며 웃고 서로 훈련소에서 필요한 물건이나 정보도 공유하고 이런저런 소식도 나누고 남자친구 이야기도 하느라 바빴다ㅎㅎ
훈련소 부모님 단톡방 운영자가 되다
그리고 나는 두 배로 바빴고 두 배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부모님들 단톡방의 운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친구 입대 당일인가 다음날인가에 곰신 단톡에 들어갔으니, 완전 입대 초기였다. 그때 곰신 단톡방에 어머님이 한 분 들어오셨다. 들어오자마자 이런 방이 있는 줄 몰랐다고, 너무 반갑다면서 기뻐하셨는데
... 여자친구와 어머니는 아무래도... 함께 하기 어려운... 사이다 보니.....
단톡방이 한순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방장이었던 언니가 총대 메고 어머니께 잘 말씀드려서 여기는 여자친구들이 모여있는 방이라고 말씀드렸고 그 어머니는 미안해하고 당황하면서 퇴장하셨다. 그리고 곰신 단톡방은 댐으로 막혀있던 물이 쏟아지듯 와글와글 다시 시끄러워졌다.
우리 집에도 입대한 훈련병 아들의 어머니였던 분이 있다. 바로 우리 엄마.
컴맹, 기계맹 그냥 컴퓨터 쪽으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친하지도 않은 우리 엄마가 일생에 딱 한번 매일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내가 종이에 적어준 컴퓨터 사용법을 보며 스스로 컴퓨터를 켜고 그 앞에서 몇 시간을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던 적이 있다. 바로 친오빠가 입대했을 때.
엄마가 오빠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오빠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옆에서 다 봤던 나는, 단톡방에 들어와 기뻐하시던 그 어머니가 마음에 계속 걸렸다.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으실까. 이 방이 얼마나 반가우셨을까. 나가게 되어서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여자친구들이 이렇게 서로 대화하면서 마음 나누고 위로받고 정보도 나누듯이 부모님들도 그런 공간이 필요하실 텐데. 아.... 어떻게 하지??
고민하고 고민하던 나는 결국... 내 남자친구랑 같은 날 같은 신교대에 입대한 부모님들을 위한 부모님 단톡방을 개설했다. 분명 곰신카페에 내 남자친구 부모님도 계실 테고 내가 단톡방 만들었다는 글을 올리면 분명 보실 텐데...!!!!! 하... 어쩔 수 없다. 다른 부모님들을 위해 남자친구네 부모님이 들어오시더라도 다 감안하고 내가 좀 나서서 만들어드려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결국 단톡방을 만들고 카페에 [0월 0일 00 신교대에 아들을 보내신 부모님들을 위한 단톡방입니다.] 이런 소개말과 함께 단톡방 링크를 올렸다.
부모님과 여자친구의 차이
나중에 남자친구 부모님이 내 글 보시고 "어? 소은이가 이런 걸 만들었네?" 하고 들어오시면 그게 더 민망한 상황이 될까 봐 남자친구 부모님께 먼저 연락을 드려서 "제가 여자친구들 단톡방에 들어갔는데 정보를 나누니까 좋아서 부모님들 방도 만들게 됐는데 혹시 원하시면 편하게 들어오세요"라고 말씀드렸고, 남자친구 부모님은 두 분 다 000 훈련병 어머니, 000 훈련병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들어오셨다
곰신 단톡에 들어왔다가 나가셨던 어머니께도 따로 댓글을 남겨서 알려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면서 입장하셨고 부모님 단톡방도 금세 사람이 찼다. 나서는 거 좋아하지 많지만 인사를 해야 해서 간단히 인사를 했는데, 남자친구 부모님은 "방장님이 우리 아들 여자친구예요" 라며 자랑을 하셨고, 다른 부모님들은 너무 좋은 여자친구를 만났다면서 칭찬을 해주셨다 하하하하... 그런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좋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하면서도 민망했다.
여자친구들의 정보는 빠르다. 곰신 단톡방에서 누군가가 이번에 훈련 때 뭐 한다더라, 이런 거 필요하다더라 등 소식을 나눠주면 나는 그 정보를 정리해서 부모님 단톡에 알려드렸다. 그리고 생활관끼리 찍은 단체사진이나 인편 답장이 한주에 한 번씩 올라오는데 부모님들 중에 찾아볼 줄 모르는 분들도 계셔서 내가 일일이 캡처해서 색깔펜으로 표시해서 사진이며 인편이며 찾아보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나한테는 정말 별 거 아닌데 그럴 때마다 진심으로 너무 고맙다고 하시는 부모님들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다.
같은 기간 동안 아들을 보낸 부모님들과 남자친구를 보낸 여자친구들의 단톡방에 속해있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여자친구도 남자친구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는 게 맞지만, 20대 초반의 풋풋한 시기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 마음이 부모님의 사랑에 비할 수 없다는 걸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된 거다. 대화 자체가 달랐다.
여자친구들은 초반에 많이 슬퍼하다가 중반쯤 지나서는 적응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기분전환도 하고 단톡에서 재잘재잘 수다도 떨고 나름 제 삶을 살면서 그 시간을 보내는 반면에, 부모님 단톡은 훈련소 생활 절반이 지나도록 아들 걱정, 아들 걱정, 아들 걱정... 옷 받고 울었다,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 아들 걱정된다, 오늘 날씨가 덥네요 훈련할 때 힘들겠어요, 오늘 비가 온다네요 비 맞으면서 훈련할까 봐 걱정이네요 등 부모님들이 아들을 생각하시는 그 수준은 여자친구들이 감히 따라갈 수가 없는 영역이었다. 나도 남자친구와 1000일 가까이 만난 상태였고 그 누구보다 남자친구를 사랑한다고 자부할 수 있었지만 부모님의 사랑에는 비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훈련소 수료식을 준비할 때조차도 여자친구들은 뭐 입고 갈까, 어떻게 갈까, 남자친구 부모님도 오시는데 걱정이다 등등 슬픔 대신 설렘과 기대가 담긴 말들을 했는데 부모님들은 조금이라도 편하게 쉬게 하고 싶은데 근처에 숙소가 뭐가 있는지, 어디가 좋을지, 단 몇 시간인데도 돈은 생각하지 않고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있을 수 있을 곳이 어딜까 고민하셨고, 아들이 좋아했던 반찬, 지금 먹고 싶어 하는 음식들을 잔뜩 해가서 먹이고 싶어 하시는 마음뿐이었다.
연애하는 동안 우리도 속상한 일이나 슬픈 상황들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던 게 부모님이다. 장거리연애를 하니까 우리가 만날 시간은 한정적인데 부모님이랑도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나랑 만나다가도 가족모임에 가야 할 때가 종종 있어서 그게 참 섭섭했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휴가를 나온다면 또 그런 섭섭한 일이나 마찰이 생길 것 같아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단톡방에서 부모님들의 대화를 보면서 생각을 바꾸게 됐다. '혹시라도 휴가 나왔을 때 나보다 가족이랑 더 오래 시간 보내도 절대 속상해하지 말아야지, 무조건 부모님 먼저 만나고, 부모님이랑 시간도 많이 보내고, 포상전화도 부모님께 먼저 드리라고 해야지.' 그때 부모님 단톡과 여자친구 단톡에 동시에 속해서 동시에 그들의 온도차를 느꼈던 게 나한테 있어서 아주 큰 경험이 됐다. 결혼하고 부부가 된 지금까지도.
곰신과 남자친구 부모님 사이
부모님 단톡에서 종종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됐다. 그중에는 나랑 같은 곰신 단톡방에 있는 여자친구분도 있었다. 남자친구가 포상전화할 때 부모님한테는 한 통도 안 하고 여자친구한테만 한다던지, 편지답장을 카페에 올릴 때도 부모님 이야기는 없고 여자친구한테만 편지를 쓴다던지 (인편답장이 공개적으로 올려지는 거라 모두가 볼 수 있었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외에도 아들과 여자친구에게 불만이 꽤 있으신 분들도 있었다. 대놓고 험담을 하신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종종 섭섭하고 속상한 마음을 나누셨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이 남자친구 부모님과 여자친구가 더 가까워지는 찬스가 될 수도 있고, 더 멀어지는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실시간으로 느꼈다. 각자의 공간에서 한정자원인 남자친구 또는 아들을 공유하게 된 상황이다 보니... 서로 간의 양보와 이해 그리고 남자친구이자 아들인 '그'의 역할이 참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았다.
첫 포상전화 이후 갈리는 반응
입대한 지 첫 주 토요일. 나도, 여자친구들도, 부모님들도 모두 휴대폰을 꼭 쥐고 연락을 기다렸던 날. 하나둘씩 "방금 남자친구한테 전화 왔어요!" "방금 아들이랑 통화했어요" 등 기쁨을 가득 담은 소식들이 들려왔다. 여자친구가 포상전화받은 후기를 곰신 단톡에 말하는데 부모님 단톡에서는 그 사실을 모르는 채 아들 전화 기다리시던 부모님도 계셨고, "지금까지 전화 안 온 걸 보니 여자친구한테 전화했나 봐요" 하고 씁쓸한 카톡을 남기는 분도 계셨다. "여자친구한테 전화했나 봅니다" 하면서 호탕하고 쿨하게 보내주시던 부모님들도 계셨다. 아마 여자친구한테 전화 안 하고 부모님께 전화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ㅎㅎ
훈련병 곰신 생활은 말이죠
주에 한번 생활관 동기들 단체 사진 올라오던 날, 인편 답장 올라오던 날, 또는 토요일에 포상전화 오던 날 그날들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훈련소 곰신 생활을 지나온 것 같다.
처음으로 이렇게 한 달을 떨어져 지내는 건데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카페에 올라오는 소식에만 의존한 채 남자친구의 생존여부와 상태를 확인했던 그 시절, "사진 올라왔어요!" "인편 답장 올라왔어요!" 곰신방에서 그 카톡을 받으면 먼저 부모님 단톡방에 공유해 드리고 바로 남자친구 소식 보러 곰신 카페에 들어갔던 그때 얼마나 떨리고 설렜는지 모른다.
남자친구가 군대 간다고 그렇게 슬퍼하고 이미 이별이 예약된 사람처럼 그렇게 울었던 나인데, 지금 돌아보면 군대에서의 그 시간이 지금까지 우리 연애한 시간들 중에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이 되어있다.
여름이 다가오던 늦봄, 창문 열고 책상 앞에 앉아 시험 공부하면서도 왁자지껄 와글바글 그 톡방 대화가 궁금해 자꾸만 폰을 봤었다. 누군가가 남자친구 보고 싶다고 하면 모두가 같이 공감해 주고 슬퍼하다가도 누가 유쾌한 농담 하시면 그게 또 너무 웃겨서 다 같이 'ㅋㅋㅋㅋㅋ'남발하며 킥킥 웃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새 곰신 단톡방도, 부모님 단톡방도 정이 들어서 수료식날, 부모님 단톡방에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퇴장하던 그날의 아쉬움도 여전히 기억난다. 부모님 단톡방이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곰신 단톡방은 전역날까지 쭉 함께하자고 약속했는데 수료 이후에 몇 분이 나가시고, 자대 가서도 종종 연락하다가 몇 분 나가시고, 카톡을 거의 주고받지 않았지만 진급하는 날이면 서로 축하한다고 인사를 남기곤 했는데 상병쯤에는 단톡방에 나 포함 세 명이 남아있었고, 전역날 그 카톡방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ㅠㅠ... 부모님들은 잘 지내시는지, 곰신들은 잘 지내는지 보고 싶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