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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함께 치운(?) 첫눈

첫눈 그리고 어른

by 진소은

밤에 첫눈이 내렸다.
남편이랑 창문 너머로 첫눈을 봤다.
드디어 첫눈을 같이 보는 날이 오다니...!!! 결혼해서 참 좋아ㅎㅎㅎ

그리고 다음날 아침, 원래는 남편 쉬는 날이었는데 간밤에 내린 눈 때문에 남편이 갑자기 잠깐 출근하게 되어서 내가 남편을 태워다 주기로 했다.
그런데 눈이 많이 와서 길도, 차도 눈으로 덮여 있었다.

차 문을 열기 위해 손으로 눈을 털어내는데 손이 너어무~~ 시렸다.
와... 몇 년 전만 해도 길가에 세워진 다른 사람 차에 쌓인 눈으로 눈사람 만들고 손도장 찍어보고 그랬는데 ㅋㅋㅋㅋㅋ 이젠 눈 내리면 예쁜 쓰레기처럼..^^ 얼른 깔끔히 털어내고 차 타는 거 생각할 어른이 됐구나 싶었다.

사실 어제도 남편이랑 베란다 창문 너머로 눈을 보는데 몇 년 전 같았으면 당장 첫눈 맞으러 뛰어나갔겠지만 이젠 집 앞에서 보는 게 더 좋았다 ㅋㅋㅋㅋㅋㅋ

몇 년 전에는... 둘이서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그랬는데... 문득 어른이 되어버린 기분.. ㅋㅋㅋㅋㅋ


눈을 털고 차문을 열었는데도 눈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휴지를 꺼내 눈을 털어냈다 ㅋㅋㅋㅋ 날씨가 너무 추웠고 피곤했다.... 흐흐


강아지도 추웠는지 나한테 안겨있던 소망이가 덜덜덜덜 떨었다. 내 패딩 안으로 쏙 넣어줬다.

운전석에 탔는데 앞유리랑 뒷유리가 다 눈에 덮여있었다. 와이퍼를 작동하면 유리창에 흠집이 날 거 같았다.


차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유리에 눈 쌓인 거 어떻게 해? 다 털어야 해?"
"히터 켜면 돼"


차 앞 유리창이 뿌옇게 되면 남편이 뭐 눌러서 그 뿌연 거 사라지게 하던데... 느낌상 유리창 따뜻하게 하는 히터는 내부 따뜻하게 하는 히터랑 다른 버튼일 것 같았다.

"히터 버튼 뭐 눌러야 돼?"

남편이 누르라는 대로 눌렀다. 올봄부터 단거리 운전을 시작한 나는 거의 눌러본 적이 없는 버튼이었다.

그리고 차에 히터 켜는 것도 남편이 가장 높은 온도로 해서 큰 바람개비 모양을 두두두 눌러서 바람이 가장 강하게 나오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겨울에 운전해 본 적이 없어서 다 처음 눌러보는 거였는데, 남편이 늘 차에 타면 눌렀던 소리였다. 뭔가를 틱 틱 누르고 두두두두 누르면 히터 바람이 버튼 누르는 것에 맞춰 점진적으로 후와아아아앙~ 하고 점점 세지는 이 소리 ㅎㅎ

지금 글 쓰며 생각해 보니.. 나는 에어컨 버튼도 잘 모르고 히터 버튼도 잘 모른다.. 대충 '남편이 이런 걸 눌렀던 거 같다...' 정도만 안다.

"진국. 나 추워요", 또는 "나 더워요" 하면 남편이 "추워?" "더워?" 하면서 알아서 온도를 다 조절해 줬다.
ㅠㅠㅠㅠ 고마운 우리 남편....

나는 내 차가 없어서 늘 대중교통을 탔기 때문에 그리고 연애하면서 남편 만날 땐 남편이 늘 운전해 온 차를 탔기 때문에 이렇게 눈 덮인 차를 치울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같이 눈을 치운 건 처음이었다.

남편은 눈이 내릴 때마다 이렇게 힘들게 차를 탔었겠구나... 게다가 평소에는 새벽같이 이른 아침에 출근하니 더 어둡고 더 춥고 더 얼어있었을 텐데...
마음이 쓰였다... 속상하기도 하고...ㅠㅠㅠ

앞으로는 일찍 일어나서 남편 출근 준비할 동안 차 눈도 치우고 차도 데워놓을까 싶었다. 아니면 차 덮개를 사서 차를 덮어두고 남편이랑 같이 걷을까??
어쨌든 눈 덮이고 깜깜하고 추운 출근길 혼자 시작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ㅜㅜ

차에 타서 차 안에 들어온 눈을 닦고 있었는데 종량제쓰레기봉투 버리고 온 남편이 문을 열면서 말했다.

"회사 입구에 오르막길인데 눈이 많이 쌓여 있다 보니 얼어서 미끄러질 것 같아 작년에 오르막길에서 오르막길 내리막길 엄청 미끄러웠거든. 너 운전 초보니까 위험할 것 같아. 올라가는 건 그렇다 해도 혼자 집갈 때 내리막길 위험할 거 같아. 오늘 그냥 내가 운전해서 갈게 추운데 집에 올라가~"

나는 남편 데려다주고 싶었는데...ㅜㅜㅜ '그래도 운전하면서 느는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남편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질까 봐 걱정할 남편 생각하니, 남편 일하는데 괜히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알겠다고 했다.

아쉽게도 남편을 데려다주지 못했지만, 눈길 운전을 시도해보진 못했지만
아침에 사과 깎고 천혜향 까서 락앤락 통에 넣어주고, 호두 율무차도 보온 텀블러에 타 줘서 마음이 뿌듯하다.

남편이 감기 기운이 있는데 얼른 나왔으면 좋겠고 오늘 눈 때문에 갑자기 생긴 일이 금방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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