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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 May 17. 2024

소중한걸 처음 버려봐요.(2)

더 소중한 것을 위해 버립니다.

 멍하니 다니던 회사가 어느날 갑자기 회사가 사무실을 이전한다고 합니다. 회사의 주축이던 멤버들은 한명씩 퇴사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멤버들이 빈자리를 채워주었지만 좋지 않은 표정을 자주 보여주었고, 어느순간부터 서로 무슨일을 하는지 모르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3월, 회사가 갑작스레 폐업을 선언하며 저는 자연스럽게 정리당했습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재취업을위해 강의를 듣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포트폴리오도 만들어보고, 이력서를 위한 프로필 사진도 찍어보았어요. 열심히 채용공고를 찾아 이력서도 넣어보고 면접까지 힘겹게 달려왔지만 결국엔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한다는 메일, 문자를 받았습니다.

재취업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탓일까요? 이 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동거중인 소중한 예비 신부의 얼굴을 웃으며 바라보기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연말에 결혼을 약속하고 올해부터 우리서로를 위해 행복하게 살자,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지만 저는 한심하게도 연이은 재취업실패에 우울해지고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일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떠냐는 제안에 예민하게 반응했어요. '비싸게' 굴었습니다. 어떻게든 디자이너이고 싶었고 나라는 사람은 디자이너여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냥.. 내 전공이니까 이것만 했으니까, 다들 날 디자이너로 알고있으니까. 난 이래야만 하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최종합격을 앞둔 것 같은 회사를 만났고, 면접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이번에도 탈락했습니다.

탈락통보를 받고 집에 돌아와 무언가 버튼이 눌린 인형처럼 눈물이 흘렀고 길을 잃은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느낌과 창피함이 동시에 몰려와 잠도 자지않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평소에도 생각이 너무 많아 잠을 설치는 타입이라 그런지 하루를 꼬박 세웠어요.


예비 신부와 내 주변인들,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에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의 내 모습은 너무나도 한심하고 불쌍한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죠. 그저 제 머릿속에 있던 강박이었을 뿐이었어요. 결국엔 내가 디자이너여서가 아니라 이유없이 그냥 나니까.


어찌보면 저도모르게 '사무직', '남들 쉴 때 같이 쉬는 것이 최고'라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 스스로를 불행을 향해 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나를 반성하며 조금씩 열린 마인드로 자신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니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 중엔 이미 전공을 버리고 다른 길을 걷고 있거나 새로운 분야에 눈을 떠 길을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이때가 태어나서 가장 창피한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얼어붙은 채용시장, 그동안 갖고있던 강박, 현실적인 상황 등 여러 요소들을 모아놓고 보니 제가 꼭 디자이너여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실력에 대한 의구심도 조금..) 예비 신부와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위한 용기를 얻었고 이 용기는 나에게 있어서 정말 소중했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버리기 위한 용기이기도 합니다. 내가 어떤모습이던 주변사람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을 것이고 존중을 했으면 했지 디자이너가 아니란 이유로 날 싫어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비 신부만큼이나 사랑했던 디자인, 완전히 버리진 못하겠지만 과감히 손에서 놓을 준비를 하려합니다.

그리고 오늘까지의 나를 반성합니다.

너무 어렸고, 세상에 대해 잘 몰랐고, 용기가 없었고, 욕심만 많았습니다.


저는 더 소중한 예비 신부를 위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습니다. 드레스투어를 같이 다녀와보니 더욱 그래요.

어색한 표정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자고일어나면 조금 더 힘내야겠습니다. 얼른 돈 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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