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J Sep 08. 2022

퇴사하고 뉴욕 갑니다.

뉴욕행 편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과 동시에 해야 할 일 하나가 생각이 났다. 바로 부모님께 합격 소식을 알리는 것.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1년 동안 부모님은 내 퇴사 계획을 반가워하지 않으셨다. 막내딸이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둔다고 하니, 당연했다. 밤늦게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고 파김치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나를 한번 흘깃 쳐다보시고는 방으로 들어가시는 부모님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눈에 불을 켜면서 그림을 그려대니 대놓고 그만하라고는 못하셨을 것이다. 어떻게든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그 당시 내 나이가 스물여덟이었지만 부모님의 완전한 동의를 구해야 했다. 자식이 시집 장가를 가도 늘 걱정하고 품에 안고 사는 부모님이 바로 우리 부모님이었다.


부모님께 합격소식을 알리기 위해 일찍 퇴근하고 오랜만에 저녁 외식을 가자고 했다. 집 근처 초밥집에 갔다. 부모님이 메뉴를 보시는 동안 속으로 어떻게 이 소식을 말할지 몇 번이고 되뇌었다. 분명 음식이 다 나온 후에 말을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모든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참 참을성이 없다. 부모님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우린 아무 말 없이 초밥만 먹었다. 음식을 다 먹어갈 무렵, 아빠가 어렵게 입을 여셨다.


“지금 미술 하는 거... 그냥 취미로 하는 거 어떠니? 너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돼. 이제 스물여덟이야. 그 좋은 회사 굳이 나와야 하니? 남들은 못 가서 난리인데.. 그리고 너 뉴욕 가서 대학교 졸업하면 서른둘이야. 그리고 석사도 아니고 또다시 학사? 서른둘에 졸업해서 언제 또 취업 준비하고 언제 자리 잡을래? 결혼은 생각 안 해? 너 돈은 모아뒀어? 아트 스쿨 학비도 그렇고 뉴욕 생활비도 그렇고 계획은 있어?”


아빠는 얄미울 정도록 정곡을 콕콕 찔렀다. 1년 동안 도 닦듯이 포트폴리오 작업에 전념했던 나는 아빠가 말하는 사회적 알람에 대해서 신경을 완전히 꺼둔 상태였다. 대학 가라는 알람, 졸업해서 좋은 직장에 가라는 알람은 꼬박꼬박 잘 듣고 일어났지만, 남들 다하는 결혼과 안정된 가정을 이루라는 알람은 철저히 꺼둔 상태였다. 아주 가끔씩 희미하게 내 마음 어딘가에서 그 알람이 울리기도 했지만 최대한 무시하고 차단했었다. 내 퇴사 플랜은 현실적인 생각과 계획은 잠시 접어두고 먼저 행동으로 옮긴 케이스였다. 생각이 많으면 용기를 읿는 법이라고 줄곧 믿어왔던 나는 행동을 먼저 저지르는 막무가내 성향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아마 그 수많은 사회적 알람을 신경 썼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상상도 못 했을 터.


그렇게 막무가내였던 나도 아빠의 연속되는 쏘아붙임에 한 순간에 주눅이 들었다. 왜냐하면 아빠 말씀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합격소식에 날아갈 것 같았고, 조깅할 때마다 뉴욕 거리를 멋있게 거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하루하루가 꿈같았는데, 아빠의 현실적인 한마디에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그런데 며칠 후, 당신들을 설득하기 좋은 이야깃거리 하나 추가됐다. 바로 학교에서 주는 가장 높은 장학금 소식과 포트폴리오가 우수하니 2학년으로 배정해준다는 소식이었다. 돈과 시간을 동시에 벌 수 있었다.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지만, 최대한 담담한 척을 하며 부모님께 이 모든 상황을 말씀드렸다. 당황한 표정과 함께 아무 말하지 않으셨다. 아마 속으로 나에게 이 한마디를 하셨을 것이다, “독한 년.”


결국 마지못해 당신들은 나에게 오케이 사인을 주셨다.


서류, 인성검사, 4번의 면접 그리고 인턴기간까지 대략 반년을 들여서 입사한 회사였지만, 퇴사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사수였던 과장님께 가장 먼저 보고를 드리고, 그 후에 팀장님과 수석님, 인사팀에 내 상황을 알렸다. 절차상 필요한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3년 8개월 동안 근무하며 함께 했던 모든 팀원 분들께 마지막 이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디지털전략팀 박예진입니다.


24살, 대학교 교정을 막 떠난 사회초년생으로 입사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로써 S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한다고 생각을 하니 아쉬운 점들만 떠오릅니다.


햇수로 4년째 근무하며 경기점에서 영업현장을 배웠고, 이후 본사 브랜드전략팀, 디지털커뮤니케이션팀, 디지털전략팀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저에게 현명하고 따뜻한 가르침을 주신 선배님들,

함께 근무하며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신 동료 파트너님들,

그리고 3년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해준 동기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늘 건강하시고, 이루고자 하시는 꿈과 소망 모두 이루시기를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박예진 드림”




2018년 7월 19일, 이렇게 내 인생에서 첫 번째 퇴사가 공식화되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뉴욕행 편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뉴욕에서 날아온 메일: Congratulation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