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형사박미옥>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착하게 살고 싶었다. 다만 착하게 사는 데도 기술과 맷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돌아보면 경찰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인터넷이란 건 아예 없었고, TV에도 경찰과 형사에 대한 정보는 거의 나오지 않던 시절이었다.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처음 듣고 감동하거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린 파출소 그림을 교과서에서 본 것이 기억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경찰이 된 이유는 단순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경찰은 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지키려는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선비 같은 마음으로 경찰이 되었다. 그래도 꿈은 실상을 잘 모른 채 계산 없이 덤벼야 한다고 나는 믿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책 <형사 박미옥> 10-11p 중에서
그렇게 단속을 마무리하고 25 인승 버스에서 체포된 인원수를 확인했다. 운전하는 경찰에게 ‘출발’ 신호를 외치고는 그제야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웃었던 모양이다. 방금 내 손으로 잡은 한 여자가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조금 전 그 형사 맞아요? 이렇게 어린 형사님이셨어요? 나,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처음 마주하는 상황 앞에서 나 또한 놀람과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는지 나도 모르게 화난 표정, 성난 표정이 배어 나왔나 보다. 나도 무서웠는데, 당신도 무서웠구나. - 책 <형사 박미옥> 14p 중에서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슬픔을 호소하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이 그 여자를 죽이지 않았고 죽일 이유도 없었음을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도 싫었다고 했다. 남자를 검찰청으로 보내던 날, 담배 한 갑을 샀다. 이전에 살인용의자로 몰렸던 남자에게 경찰이 단 1초의 슬퍼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면, 이번엔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쯤은 주고 싶었다. 그 당시는 서울지방경찰청 담당형사가 범인을 직접 검찰청까지 데려다주던 시절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늘 투덜거렸던 부수적인 업무가 그날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 책 <형사 박미옥> 89-90p 중에서
나는 여태껏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이제는 현장이 되기 전에 만나며 살고자 한다. 마음 아픈 사람, 관계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책과 사람이 머무는 작은 공간도 만들었다. 그 공간을 채우고, 새로운 나를 채워가며 나는 지금 사회초년생의 자세로 살고 있다. - 책 <형사 박미옥> 288p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