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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Oct 05. 2023

내 꿈은 박미옥

책 <형사박미옥>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책 <형사 박미옥>, 박미옥, 이야기장수




 어디서나 최약체인 지금 내 모습을 본다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초등 시절 꿈이 형사였다. 진심이었다. 단지 ‘경찰과 도둑’ 놀이에 진심이었을 뿐 아니라 그땐 착하게, 남을 도우며 사는 어른이 되고 싶었고 정의를 실현하는 경찰의 모습이 영웅처럼 보였다.     


 이 책 <형사 박미옥>은 이렇게 시작한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착하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한다. "경찰은 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지키려는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착하게 살고 싶었다. 다만 착하게 사는 데도 기술과 맷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돌아보면 경찰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인터넷이란 건 아예 없었고, TV에도 경찰과 형사에 대한 정보는 거의 나오지 않던 시절이었다.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처음 듣고 감동하거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린 파출소 그림을 교과서에서 본 것이 기억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경찰이 된 이유는 단순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경찰은 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지키려는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선비 같은 마음으로 경찰이 되었다. 그래도 꿈은 실상을 잘 모른 채 계산 없이 덤벼야 한다고 나는 믿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책 <형사 박미옥> 10-11p 중에서




 '이 책 뭐지? 어린 나에게 보내는 선물...!?'     


 정의로운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은 자라면서 잊어버린 마음이라 ‘그 시절 내’‘지금 내’ 모습을 본다면 분명 실망할 것이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를 살고 있는 초딩(나)에게 이 책을 보내주고 싶다. 여기 네 꿈이 있다. (미안)





책 <형사박미옥>, 박미옥, 이야기장수




 책 <형사 박미옥>에는 생생한 범인 검거 과정이 그려져 있다. 아니 왜 글까지 잘 쓰시는 건지. 과정의 숨 막히는 묘사와 결과의 통쾌함이 있고 형사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고민이 들어있다. 감탄하게 되는 글솜씨였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밌었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경찰이 조직으로 느껴지며 사건의 결과만 뉴스를 통해 전달받게 된다. 그래서 경찰 개개인의 경험이나 심정은 생각해 보기 어렵다. <형사 박미옥> 책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의 경찰, 직업으로서의 경찰에 대하여 느껴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단속을 마무리하고 25 인승 버스에서 체포된 인원수를 확인했다. 운전하는 경찰에게 ‘출발’ 신호를 외치고는 그제야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웃었던 모양이다. 방금 내 손으로 잡은 한 여자가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조금 전 그 형사 맞아요? 이렇게 어린 형사님이셨어요? 나,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처음 마주하는 상황 앞에서 나 또한 놀람과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는지 나도 모르게 화난 표정, 성난 표정이 배어 나왔나 보다. 나도 무서웠는데, 당신도 무서웠구나. - 책 <형사 박미옥> 14p 중에서




책 <형사 박미옥>, 박미옥, 이야기장수 : 1992년 서울청 여자형사기동대 사무실에서 밤샘 근무하고 쪽잠 자던 시절(누운 사람이 박미옥)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 모든 에피소드에 녹아있다. 선하게 살기 위해 형사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장면들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반성했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런 일이 피곤하다.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슬픔을 호소하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이 그 여자를 죽이지 않았고 죽일 이유도 없었음을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도 싫었다고 했다. 남자를 검찰청으로 보내던 날, 담배 한 갑을 샀다. 이전에 살인용의자로 몰렸던 남자에게 경찰이 단 1초의 슬퍼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면, 이번엔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쯤은 주고 싶었다. 그 당시는 서울지방경찰청 담당형사가 범인을 직접 검찰청까지 데려다주던 시절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늘 투덜거렸던 부수적인 업무가 그날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 책 <형사 박미옥> 89-90p 중에서




책 <형사 박미옥>, 박미옥, 이야기장수 : 1992년 서울청 여자형사기동대 초기 야간 유흥업소 단속 출동 전의 모습.




 작가님은 현재 이른 은퇴 후 제주에서 운 좋게 싼 값에 땅을 구입해 후배 형사님과 살고 있고 그곳에 책방을 만들어 여러 사람을 만난다고 한다.




 나는 여태껏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이제는 현장이 되기 전에 만나며 살고자 한다. 마음 아픈 사람, 관계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책과 사람이 머무는 작은 공간도 만들었다. 그 공간을 채우고, 새로운 나를 채워가며 나는 지금 사회초년생의 자세로 살고 있다. - 책 <형사 박미옥> 288p 중에서




 은퇴 + 자가 + 책방이라니! 허허 그것은 2020년대 초반을 살아가고 있는 직딩인 나의 꿈인데!


 오늘부터 내 꿈은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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