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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Nov 28. 2022

문학의 힘

호밀밭의 파수꾼


외롭게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해 헤매는 학생이 의외로 여럿 있다. 그들을 보면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떠오른다. 내가 이 책을 읽고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해) 콜필드처럼 생각하고 행동한 적이 있듯, 이 학생도 콜필드를 연기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에 미치면 우선은 인간적으로 다가가기가 훨씬 쉬워진다. 콜필드를 단순히 사회 부적응자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외롭고 우울한 작은 소년으로 봐준다면 우스웠던 생각은 진지해진다.



콜필드는 앞으로 뭐가 되고 싶냐는 동생 피비의 말에 유명한 말을 남긴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말하자면 호빌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위태로운 사람, 그래서 보호받아야 할 사람은 콜필드 자신이다. 파수꾼은커녕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외롭고 우울한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호밀밭의 파수꾼'의 모델이라고 할 사람은 앤톨리니 선생이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홀필드를 잡아주려는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선생이 말해주는 조언, 학교로 돌아가서 '사고의 크기를 재보라는 말' 역시 홀필드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콜필드가 1년 전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간 회고록이다. 쓰기 행위를 통해 그가 바라던 꿈을 이루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갔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미국에서는 샐린저 신드롬이 있었다고 한다. “‘샐린저 현상’, ‘샐린저 산업’ 이란 말까지 만들어냈을 정도인데, ‘샐린저 현상’이란 독자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끼고 다니면서 자신을 소설의 주인공 홀든과 동일시하는 것을 말하고, '샐린저 산업'은 이 작품이 불러일으킨 상업적 성공”을 가리킨다.



이 책으로 자유학기 수업한 지가 4년째다. 각자 책을 사 와서 함께 읽고 영화 <파수꾼>을 보는 수업. 불행인지 다행인지 단 한 번도 신드롬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혹여나 어떤 학생이 문제 행동을 보이면, 저 아이가 콜필드적 성장통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나름 무언가를 지켜내고 싶은 파수꾼을 자처하는 건 아닐까? 혹은 단순히 콜필드를 흉내 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오히려 흐뭇한 미소가 새어 나오고, 그래서 그 콜필드적 학생을 적어도 문학적으로는 사랑하고 응원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 닿으면 나는 기꺼이 그 학생을 품어주게 된다.



이것이 문학이 가진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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