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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Dec 01. 2022

[서평] 데미안


이 소설을 과감하게 두 부분으로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는 밝음과 어둠의 선명한 대비 가운데 악당과 탕아의 세계에 발을 들인 싱클레어가 자기를 찾는 과정이다. 처음 마주하는 삶의 균열 속에서 불쌍한 이 어린 영혼은 막스 데미안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는다. 이 균열, 넓게 해석하면 사춘기적 고민, 좁게 본다면 자아 찾기로 볼 수 있는 이 '틀어짐'에, 데미안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존의 규율과 질서를 뒤엎는 이야기, 카인의 표적과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이야기에 싱클레어는 혼란스럽다.



데미안의 충고를 이드id를 직시하라는 말로 해석한다면, 싱클레어는 슈퍼에고superego의 감시에서 자유롭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헤세가 칼 융의 제자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 박사와의 대화 치료(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사실로 미루어 보면 이 작품을 정신분석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독자인 우리가 싱클레어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면 데미안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데미안을 구체적 타인이 아니라 원초적 자아 즉 id로 보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감히 해본다. 좀 더 나아가면 싱클레어와 데미안 그리고 에바부인은 한 사람의 여러 모습일 수 있다. 정반합 구조로 본다면 정(싱클레어)에 반(데미안)이 합(압락사스=에바부인)에 통합되어 가는 구조, 즉 싱클레어가 내면의 데미안과의 투쟁을 통해 진정한 자아인 에바부인에 이르는 구조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소설은 id와 superego의 충돌로 인한 고통과 성장을 그린 소설이며, 싱클레어가 자기 자신을 찾는 노력의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 소설로 볼 수 있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나는 누구인가'를 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청소년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 <데미안>이 인생 소설이라고 말할 때, 적어도 이 부분에서 나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을 때 마주하게 되는 존재는 데미안뿐만이 아니다. '압락사스'와 '에바 부인'은 중요한 존재다. '압락사스'는 신이면서 사탄이고,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인데, 그것의 현존은 내가 보기에 ‘에바 부인’이다. "에바Eva란 말은 '이브Eve'와 같은 뜻이며, 궁극적인 근원이자 완전함의 모태를 상징"(이현우,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한다. 남성성과 여성성, 젊음과 성숙함, 아름다움과 근엄함을 동시에 체현하고 있는 존재 '에바 부인'. 그녀는 어떤 상징적인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 지점을 통과할 때 이미지가 머리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명료하지 않은 묘사와 신비주의적 모티프는 모호함을 남길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에바 부인의 집에는 카인의 표적을 가진 다양한 종류의 구도자들이 모이는데 그들은 "천문학자와 카발라 연구가들도 있었고 톨스토이 추종자도 한 사람 있었으며 온갖 종류의 다정하고, 수줍어하며 상처 입을 수 있는 사람들, 새로운 소수 종파의 추종자, 요가 장려자, 채식주의자 등등"이다. 소수를 끌어안음으로써 세계를 하나로 아우르려는 시도를 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 소설을 두 부분으로 나눌 때 여기까지가 한 부분이다. 이제 나머지를 살펴본다.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새의 형상'이 전쟁을 통해서 발견된다는 점을 문제 삼은 서평가 이현우의 말에 동의한다면, 헤세가 반전주의자라는 것을 차치하고서도 전쟁이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헤세 주장은 터무니없어 보인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싱클레어는 "한 마리의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것이었다. 그 알은 이 세계였고, 따라서 이 세계는 산산조각 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전쟁을 새로운 인간성이 탄생하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아주 유명한 구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는 전쟁 안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명구는 그 자체로 퇴색되고 변질되었다.



그 근거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 병사들의 배낭 속에 <데미안>이 한 권씩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나치는 헤세의 작품 출간은 금지시켰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병사들이 <데미안>을 탐독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전쟁에 긍정적인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고 판단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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