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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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완벽하게 똑같은 속도로 가기 때문에 몸을 싣기만 하면 편안하게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정해진 삶이라는 행行을 등지고 리스본행行을 탔다. 이를테면 역행逆行이고, 탈선脫線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삶을 등지고 낯섦행行 열차를 탄 일은 주인공 자신에 대한 반란이다. 그 역행은 공간적이기도 하지만 과거로 가는 시간적 역행이기도 하다. 역행과 탈선은 모국어 그리고 40년 이상 함께 살아온 고전어를 뒤로하고 스스로 언어적 낯섦을 짊어졌다는 데에서도 구체성을 띤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주인공은 왜 그런 선택(역행과 탈선)을 했는가'가 첫 번째, 두 번째는 '행行, 목적지는 누가 정하는가'이다. 이 두 가지를 쫓아가는 일이 이 소설을 읽는 키포인트다. 플롯은 간단하다. 1.'남자는 리스본행 기차를 탄다'가 뼈대. 2.'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피와 살이다.
“모습을 전혀 알 수 없는 미래”를 상징하는 리스본에 간 주인공. 리스본은 오로지 한 남자를 조사하기 위한 장소였다. 그 남자 아마데우 프라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내려는 계획으로 이야기 형태가 만들어진다. 신체 고통을 겪는 엄한 판사 아버지와 공명심이 강한 어머니 아래서 자기 삶을 살지 못한 남자 프라두의 과거를 파헤쳐 간다.
그의 삶을 파헤치는 부분이 살이라면, 이제까지 인식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깨닫는 부분이 피라고 할 수 있다. 그 피가 온몸을 돌 때 알 수 없는 현기증이 생겼고, 그 피가 새로운 생명이 될 가능성을 줄 때 주인공은 귀로歸路한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1.타인의 존경과 관심에 의지하고, 그것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기차로 비유된 것 말이다. 그것이 혹시 나의 삶은 아닐까 하는 생각. 2.잔잔한 주인공의 삶에 파도를 일으켜 탈선을 경험하게 해 준 여자(그리고 단어 '포르투게스')처럼 이 책은 지금 내 안에 어떤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 3.책을 읽은 그 자체로 나는 일탈을 했다는 생각. 4.편안하다고 생각한 이 삶이 사실은 속박된 삶은 아닐까 하는 생각. 5.나는 누구 기대에 맞추어 인생을 살았나 하고 뒤를 보게 하는 생각. 6.내 기억은 온전한가 하는 생각 들.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책을 덮고 나니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생겼다. '저절로'에 내 손을 맡겼다. 또 다른 감상이 나올 수 있겠다. 오히려 그것을 나는 기대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절판되었다가 최근 재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