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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저만치 혼자서』, 문학동네, 2022
단편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는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그 소설 제목은 "김소월의 시 『산유화』 중 "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라는 구절에서 빌려왔다"라고 밝혔다.
김훈은 거대한 우주의 섭리 앞에 어찌할 수 없는 인간들이 그럼에도 어찌하며 살아가는 내용을 소설에 담아낸다. 흘러갈 것이 흘러가고 멈출 것이 멈추며 어떠한 것은 어떠하게 그 자리를 지킨다. 다가와서 흘러가고, 또 흩어지는 것들이 쌓여서 시간은 층을 이룬다. 인간은 그 앞에서 속수무책이지만 살 길을 찾아 시간 속에 스며든다.
자연은 인간을 길러내고 인간은 살아야 할 것을 살아내고 있다. 저마다의 이유로 그들 삶은 다루기가 겹고 과중하다. 죽음을 맞이하거나<명태와 고래>, 때로는 이혼을<손>, <저녁 내기 장기>, 때로는 수형受刑의 벌로 영어囹圄의 몸이 되거나<손>, 제도가 사람을 가두고 조롱하거나<명태와 고래>, <영자>. 그러나 돌이켜지지 않는 것을 돌이킬 수 없듯이 그들은 묵묵히 그것들을 받아내어 살아낸다. 그들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있다. 내 이웃이며 결국은 나의 모습이다.
이 단편 소설의 특징은 역사 속에 서 있는 개인이 자연의 힘 앞에, 섭리의 흐름 앞에, 거스르지 않고 묵묵히 살아내는 삶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김훈의 이순신이 그랬고, 악공 우륵과 안중근이 그러했다. 이 단편소설집의 <명태와 고래>도 같은 꼴을 가졌다. 견디지 못할 일을 견뎌야 했던 주인공 이춘개는 흘러간 세월 속에서 흐릿해진 절망을 묻고 살아간다. 분개하지 아니했으며, 흩어진 가족을 찾지 아니했고, 그저 삶을 살아내었다. 그는 정치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폭력과 행정 권력, 경제 권력에 의한 폭력의 희생자다.
또한 주인공들은 어촌에서 자라났다는 특징도 있는데, 나는 그것이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수집하고 공부한 글감에서 아직 머물고 있으며 그것을 가장 자신 있어 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자연의 섭리가 바다의 그것에서 시작된다는 신념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물의 생명체가 뿜는 비릿한 향부터 폐유와 갯벌과 배의 디젤 냄새까지 눈 앞에서 보고 듣고 만지고 맡는 듯한 세세한 묘사도 놓칠 수 없겠다. 그래서 자연을 묘사하는 글멋은 웅장하고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