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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케이 Jan 21. 2022

어머니의 눈이 커튼처럼 닫힌다.

part1.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

2018년 여름. 벌써 3년이 훌쩍 지난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어머니의  생신날이었다. 오랜만의 손주들 재롱에 부모님은 행복해 보였다. 동생이나 나나 다른 또래들보다 일찍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둘씩 낳으며 일찌감치 우리 가족은 열식구의 나름 대가족이었다.


 저녁을 일찍 먹고 근처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팥빙수를 먹으러 가자며 온 가족이 나섰다. 차는 두대로 나누어 타고 가기로 하였다. 아이들이 서로 할아버지의 고급 세단에 타겠다고 앞다퉈 주차장에서 할아버지의 차를 찾았다.

 

'얘들아 핼이비 차 여기 있다.'


아버지의 차량이 지하주차장 현관 앞 가장 좋은 자리에 세워져 있었다. 비좁은 다른 주차공간에 비해 훨씬 넓고 쾌적해 보이는 자리였다.


' 왜 차를 장애인 주차장에 세워놨어? 누가 신고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여기는 장애인 전용 이잖아.'


동생이 아버지를 타박했다. 나도 시민의식을 거들먹거리며 아버지를 나무랐다. 그리고는 자동차 앞유리창을 보니 떡하니 장애인 주차 가능 스티커가 보였다.


'장애인 등록증이 있네? 어떻게 받은 거예요?


' 너희 엄마가 눈이 안 좋아서 이번에 4급 시각장애 판정을 받았다. 별거 아니니 얼른 타라.'

(그당시의 장애인 등급은 1~6급의 급수로 나누어져 있었고, 2019년 7월부터 심한 장애(중증)와 심하지 않은 장애(경증)으로 나뉜다.)


 

 어머니의 눈. 그러니깐 어머니의 시력이 안 좋은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두꺼운 안경알의 안경을 쓰시고 매일 밤낮으로 수제구두를 꿰매거나 뜨개질을 하시거나 버스회사에서 차표의 권종을 나누시는 부업을 하셨다. 그러면서 더욱 눈이 안 좋아졌고, 이제는 노안까지 와서 더욱 눈이 어둡다고 늘 말씀을 하셨다.

 그냥 그렇게 눈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시각장애 판정을 받으셨나 보다. 4급 정도면 많이 나쁜 건 아닌가 보네. 라며, 차 안에서 이 정도 등급으로는 어떤 장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가라며 잿밥에 먼저 관심이 가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그 철없고 무지했던 생각 때문에 내 가슴이 다 찢어진다.

 

몇 달 후 어머니의 병명을 알게 되었다.

망막색소 변성증. 일명 RP라 부르는 희귀 질환이다. 우리의 눈에는 눈으로 들어온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하는 망막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병은 이 망막에 색소가 쌓이면서 망막의 기능이 소실되는 유전성 질환을 말한다. 망막 색소 변성증 환자는 시각세포가 점점 손상되면서 점차 시야가 좁아지고, 끝내는 시력을 잃는 병이다.

 

출처: 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이 병은 꽤 알려진 질환으로 개그맨 이동우, 송승환 님이 같은 질병으로 투병 중이시고, 드라마 '그 겨울'에서 송혜교가 앓았던 병이 바로 이 망막색소 변성증이라는 병이다. 약 인구 4000명 중에 한 명이 발생되는 희귀 질환이다. 시한부의 아주 끔찍한 병인것이다.

출처: 씨네21 백종헌

 처음 RP(지금부터는 그냥 RP 라 하겠다.)를 구글에 검색하면서 이병에 대해 알게 된 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 나는 두 시간을 울고, 10분에 한 번씩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온갖 것을 다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본 날이다.


어머니는 이미 다 알고 계셨는지 담담하셨다. 어머니도 자신의 병에 대해 이번에 시력검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어렸을 적부터 야맹증이 있었다고 하셨다. 야맹증도 여러 원인이 있지만, RP가 처음 발현되는 증상 중의 하나가 바로 야맹증이다. 갑자기 어두운 곳에 들어갔을 때 적응을 잘 못하거나, 해 질 무렵 외출이 어려워진다. 그러다 점점 증상이 심해지면 어두운 밤에 등불 하나 켜 놓은 것 같은 어두움이 계속되고, 터널처럼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증상을 겪게 된다.


아버지께서도 어머니의 이런 증상을 오래전부터 느꼈다고 하셨다. 횡단보도의 안전기둥을 보지 못하시고 매번 무르팍에 피멍이 가시질 않았고, 바로 앞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한참 동안 찾기 일쑤였다 하셨다.


어머니는 너희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 병이 유전성 질환인데, 너희 둘은 아직 야맹증이나 RP의 증상들이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하셨다. 본인 하나라서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하셨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망막색소 변성증에 대해 파기 시작했다. RP협회(http://www.krps.or.kr/)에 가입하여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갔고, 진단법이나 치료제 등에 대해서도 하나씩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결국은 시력을 잃습니다.. 치료법은 현재는 없습니다. 진행이 더디게 되기만을 바래야 합니다.'


어머니의 최근 안저검사 결과지

청천벽력 같은 참담함에 더 이상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내 눈 한쪽을 어머니께 드려도 되는데, 안구 이식도 불가하다 한다. 수억이 들어도 고칠 수만 있다면 사채빚이라도 쓰겠지만, 돈도 다 소용이 없다고 한다.


더 이상 이렇게 손만 놓고 기다릴 수 없다 판단했다. 고칠 수 없다면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또 나빠진다면 진행을 더디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했다. 또 실명 이후의 준비도 하나씩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일 처음 해야 할 일은 어머니의 마음가짐을 다 잡는 것부터 였다. 자식들에게 다행히 유전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말만 되풀이하시고, 병을 고쳐 보겠다는 그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으셨다. RP에 대해 많은 임상을 보유하고 있는 다른 병원에 가서 진료를 다시 받자 하셔도 지역 대학병원을 다니시겠다고 반대를 하셨다.


다음날부터 나는 우리 아이들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계속 퍼 날렀다. 아침에 찍은 사진, 점심을 먹는 사진, 놀이터에서 노는 사진, 책을 보는 사진 등 계속해서 어머니께 사진을 보냈다.


 ' 수아가 고등학교 수능 보고 할머니랑 유럽 여행 가고 싶데. 그러니깐 그때까지 치료받고 건강해요'


'아이고, 우리 수아가 그렇게 한데? 할미랑 여행 간다고? 그러면 열심히 살아야겠네. 우리 수아랑 여행 가려면'


한참을 유전자 치료법, 인공망막, 줄기세포 치료 등 아직은 임상 단계인 여러 치료법을 다 된 것처럼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우선은 희망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삶의 의지를 심어야 어머니도 노력을 하실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장애인 가족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집안의 모든 관심과 배려가 쏠렸다. 가장 먼저 안전을 위한 조치를 하나씩 실행해 나갔다. 가장 시급했던건 주방일이었다. 아버지와 두분이서 사시는 집에서 아무래도 가스불이 가장 걱정이 되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매번 가스레인지의 불꽃이 잘 보이지 않아, 손이나 얼굴을 가까이 대고 불이 켜졌는지 세지는 않은지 확인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손에도 화상이 잦고, 머리카락도 가끔 그을리는 위험이 있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나마 안전한 인덕션으로 화구를 변경하였다. 터치를 통해 세기를 조정할 수 있고, 터치할때 마다 소리가 나니 안전해 보였다.

 

출처: 제조사 홈페이지

그리고 나서 와이프와 진지하게 부모님의 거처를 우리가 사는 곳과 가까운 서울쪽으로 옮기는 것을 상의 하였다. 서울 집값이 갈 수록 뛰어 세종시의 집값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다는 걸 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고민이다. 결국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럼 다시 차분히 생각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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