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로리나 Mar 13. 2023

바늘땀에 담는 기도문

엄마 마음

  아이의 발레 토슈즈가 무너져 내렸다. 단단한 나무 신발을 발에 끼운 채 까치발을 서고 올라설 수 있을까 걱정하며 첫 토슈즈를 사 온 게 백일 전이다. 그 사이 아이는 토슈즈를 신고 턴 동작을 가뿐히 할 만큼 연습에 연습을 반복했나 보다. 아이는 훈장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세 등등 하게 두 손에 분홍 신을 들고 다가왔다. 내 귓가에 대고 신발 앞코를 살살 누르니 나무 틈 사이사이를 타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진짜 열심히 노력했어.“라고 아이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만져보니 딱딱하던 토슈즈 앞코가 말랑말랑해졌다.


  주말이 되자마자 바로 발레샵으로 향했다. 새 토슈즈를 사 오면 나에게는 한 켤레당 숙제가 하나씩 생긴다. 신발 뒤축에 고무 밴드를 달아주고, 옆 면에는 리본 끈을 두 개씩 달아주어야 한다. 행여라도 움직이다가 떨어질까 봐 튼튼하게 박음질을 해준다. 필요에 따라서는 앞코에 둥글게 돌아가며 버튼홀 스티치를 해주기도 한다. 실크처럼 매끈한 신발은 발레리나의 온몸을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보기에는 약해 보일 것 같은 원단이지만 사실은 아주 촘촘하고 튼튼하다. 고로 바늘을 통과시킬 때마다 손가락에 보통 힘을 많이 줘야 하는 게 아니다. 골무를 끼우면 손의 움직임이 둔해져서 바느질이 예쁘게 되지 않는다. 하다 보면 골무를 빼버리고 손끝이 아파도 참아가면서 바늘땀을 뜨게 된다.


  처음 토슈즈에 리본을 꿰매던 날은 의아하다는 생각을 줄곧 했다. 지금은 핸드폰 화면만 터치하면 원하는 물건을 맞춤처럼 개인화해서 주문하고, 편하게 집에서 받아볼 수 시대가 아니던가? 마치 우리는 옛날 옛적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발레 용품 쇼핑을 가는 기분이다. 상점에 가서 직접 발에 잘 맞는 신발을 여러 가지 신어본 뒤 구매한다. 신중하게 골라온 신발을 들고 손수 바느질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정말 발레는 아날로그의 정수구나!’


  아이의 발에 한 켤레의 발레 슈즈를 신겨주기까지 참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간다. 오늘도 오후 수업하러 가기 전에 부랴부랴 토슈즈 한 켤레에 바느질을 한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두고 한 땀 한 땀  꿰매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온갖 잡념이 다 사라지고 단 하나의 생각으로만 머릿속이 꽉 들어찬다.


  ‘오늘도 즐거운 발걸음이 되기를..

   높이 뛰어오를 때마다 무대 너머에 있는 더 멋진 세상을 내다볼 수 있기를..

   무엇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하루가 되기를..‘

   

  손끝이 조금씩 저려오기 시작하지만 그럴수록 바늘 한 땀에 간절한 엄마의 마음을 하나씩 엮어 단단히 매달아 본다. 고된 작업이지만 오늘도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바느질을 한다. 나에게는 100일 기도보다 더 간절하고, 108배 절할 때보다 더 공들이는 시간이 바로 발레 슈즈에 바느질하는 지금 이 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덕통사고 그날 이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