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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Feb 09. 2024

명품 쇼핑하듯이 주식을 사면 생기는 일

주식 투자

  20~30대에 나는 수시로 백화점에 드나들었다. 사무실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백화점 건물이 나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힘든 하루를 보냈으니까 퇴근길에 내게 들려서 잠시 힐링하고 가렴.” 하고 말이다. 심지어 회사 건물과 백화점이 지하도로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이나 언제든 편하게 들릴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면 참새 방앗간 들리듯이 백화점에 들러 쇼윈도 안에서 반짝이는 가방과 액세서리를 보며 눈호강을 했다.


  매일 명품을 구경할 수는 있었지만, 그때마다 살 수는 없었다. 애써 일하고 받은 근로소득으로 명품 구매를 할 만큼 내 연봉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가끔 찾아오곤 했다. 남편이 주식 투자로 돈 좀 벌었다고 자랑할 때였다.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의 위시 리스트를 읊어댔다.


  그렇게 하나씩 장만한 명품 가방은 해가 바뀔 때마다 가격이 훅훅 올랐다. ‘오늘이 가장 저렴할 때’라는 말이 나올 만큼 명품 업체들은 너도 나도 가격을 인상했다. 그때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방의 가치도 따라 올라가는 기분이라 뿌듯했다. 남들은 오픈런해서 한참 줄 서서 기다려도 살 수 없는 가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가끔은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마흔이 다가오면서 나의 물욕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너무 많이 올라버린 명품 가격이 이제는 내가 살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구하기 힘들기까지 하다니 더 이상 명품 쇼핑에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이제는 명품 가방 대신 명품 주식을 모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재테크는 잘 모르지만 소싯적에 백테크에 성공해 봤다는 경험은 나에게 몹쓸 자신감을 심어줬다. ‘주식 투자란 좋은 회사의 주식을 사서 그 회사 주인이 된 기분으로 응원하는 거랬지. 자! 나는 오늘부터 아이폰을 사는 기분으로 애플 주식을 사고, 비스포크 가전제품을 사는 대신 삼성전자 주식을 사는 거야. 카페에 못 가면 어때? 집에서 커피 마시면서 스타벅스 주식을 사면 우리 집 커피도 향기롭게 느껴질 거야.‘ 이런 마음으로 우량 기업 주식을 하나씩 사기 시작했다. 명품 쇼핑에 미련이 남았는지 유럽 명품회사에 간접 투자할 수 있는 펀드 매수도 놓치지 않았다.


  내 손에 물건은 없지만 주식 보유량이 늘어날수록 마음이 든든해졌다. 단순히 회사 이름만 보고 덥석덥석 장바구니에 쇼핑템을 담듯 담아버린 주식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게 될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올라가는 주가를 보며 행복했던 순간은 아주 잠시, 그 후로 2년간 주식 앱에 뜬 파란 나라를 보며 내 마음도 시퍼렇게 멍들어버렸다.


  나의 투자 실패의 원인은 뭐였을까? ’명품처럼 일찍 사두면 오르는 거 아니야?’라는 착각이 문제였다. 주식 가격은 명품처럼 늘 인상되기만 하는 게 아니다. 명품 업체들은 물가 상승과 함께 늘 가격을 올리기만 하지 좀처럼 내리는 법이 없다. 하지만 주식은 투자자들의 기대감과 금융 시장의 분위기에 따라서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러니 주식을 살 때는 이 회사의 가치 대비 현재 주가가 적당한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있는 건 아닌지 체크해봐야 한다. 정말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투자 상식을 비싼 수업료를 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관심 가는 기업이 있으면 투자하기 전에 꼭 미리 체크하는 것들이 있다. 주식책을 보면 매번 나오는 기업의 가치와 주가 적정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들이다.



  주가수익률(PER)은 현재 주가가 주당 순이익의 몇 배인지를 알려주는 값이다. 예를 들어 이 회사의 연간 순이익이 1억인데 시가총액은 10억이라고 해보자. 이 기업의 PER는 10이 된다. 만약 지금처럼 계속 이익을 낸다면 앞으로 10년 치 이익금을 합쳐야 현재의 시가총액이 된다. 투자자들은 이 회사가 빠른 속도로 성장해서 10년이 아니라 더 짧은 기간에 이익을 늘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때 이 주식을 사게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기업이 이익을 내는 능력치보다 현재 주가가 과대평가되어 있어서 PER가 10이나 된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기업 재무 관련 숫자만 보고 어떤 경우인지 단번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몇 가지 지표라도 살펴봤다면 이전과 같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안 했을 텐데… 네이버 주식에서 관심 있는 기업명을 검색해 보면 매출액, 영업이익 등 기업 실적을 볼 수 있는 지표들 그리고 기업 실적 대비 주가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들을 알 수 있다. 이제는 투자하기 전에 꼼꼼하게 살펴보고 고민하는 시간부터 충분히 갖는다.


  품절될까 봐 성급하게 쇼핑하듯이 주식을 사는 일은 이제 그만! 투자할 자금이 부족해서 문제이지, 투자할 기회는 얼마든지 또 찾아온다. 다음번 기회를 기다리며 수시로 기업 가치를 판단하는 연습을 반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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