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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Apr 25. 2024

거침없이 장미 가시를 떼어버리는 사람들

냉혈 상사

며칠 전 오랜만에 옛 동료를 만났다. 벌써 첫 직장을 떠난 지 만 6년이 지났다.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여전히 이름만 들어도 얼굴과 성격이 떠오르는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 이날도 마치 옆팀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옛 회사 사람들 근황을 들었다. 그중 안타까운 사연이 하나 있었다. 밝고 싹싹하고 일 잘하던 후배가 최근 들어 아주 까칠해졌다는 이야기다. 봄날의 햇살처럼 밝아서 팀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일 잘하는 똑순이로 유명하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건드리면 펑하고 터질 것만 같아서 주변 사람들이 조심스러워한다는 말에 한숨이 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가 그 후배 연차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해도 해도 일이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할수록 쌓여가는 일을 보면 가슴팍에 돌덩이를 얹어놓은 기분이었다. 왜 파트장은 나만 부를까? 매일 앓는 소리 하는 옆자리 직원은 부르지도 않았다. 내 남편보다 더 자주 내 이름을 불러대는 파트장 때문에 환청이 들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내가 편하니까 그런 거겠지, 나랑 더 오래 같이 일해서 호흡이 더 잘 맞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을 받아오곤 했다.


아무리 긍정 마인드로 한다 하더라도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양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더 이상은 무리라고 여러 차례 말을 꺼냈지만 번번이 벽에 대고 혼자 말하는 기분이었다. 스탑 사인을 보내도 멈추지 않는 상사, 눈치가 없는 걸까? 양심이 없는 걸까? 나는 테트리스 게임이라도 하듯이 부지런히 업무 벽돌을 한 줄씩 깨부수었다. 그러나 위에서 떨어지는 일거리는 더 빠른 속도로 쉬임 없이 내려왔다. ‘Fail’이라고 외치고 게임판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월급쟁이가 마음 내키는 대로 당장 사표를 내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일더미 속에 파묻혀 숨 막힌 채 계속 지낼 수도 없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상냥하게 거절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까칠하게 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쌓여있던 모든 불만 응어리가 뾰족한 가시가 되어 온몸에 돋아날 준비가 되었다.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오즈의 마법사 속 서쪽 마녀처럼 나도 무서운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 당시 회사는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A동에서 근무하던 중이었다. ‘오늘부터 나는 A동 마녀가 되겠어!’ 하고 결심했다. 사내 메신저 업무 소개란에 ‘A동 마녀’라고 써두면 날 좀 덜 괴롭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실행 가능성은 제로였지만, 이런 상상이라도 해야 버틸 것 같았다.


소심하고 미약한 반항극이긴 했지만, 아주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주변에 나를 의식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회식 자리에서 옆 파트장이 나한테 한마디 툭 던졌다.


“너 요즘 왜 그렇게 목소리가 커졌냐?”


나의 고충을 드디어 털어놓을 기회가 왔구나 싶었다. 그런데 내가 대답할 틈을 주지도 않고 그는 바로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안 그러던 너까지 그러면 너네 파트장이 얼마나 힘들겠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묵묵히 일하던 후배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이유부터 들어봐야 하는 게 우선일 텐데…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건  윗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이건 내 마음을 알고 싶어서 한 질문이 아니었다. 팀원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나한테 퍼붓는 잔소리이자 경고였다. ‘평소 목소리 크고 말 많던 사람은 계속 그래도 되고, 조용히 시키는 대로 일하던 직원이 찍 소리를 내면 그건 잘못인가요?’ 하고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업무 배분을 현명하게 하지 못하는 그들의 무능력이 더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나는 바보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분노가 되어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애써 꾹꾹 참았다. 회사에서는 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게 사무실이든 회식자리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회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남편은 서럽게 우는 아내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내가 받을 수 있는 위로는 그게 전부였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서 마주친 파트장들의 얼굴은 여느 때와 똑같았고, 상황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사표를 내고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장미꽃을 다듬어 본 사람이면 알 수 있다. 장미의 가시에 손이 찔리면 피가 날 만큼 날카롭지만, 그 가시를 생각보다 쉽게 똑 떼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가시를 잡고 살짝만 힘을 주면 무시무시해 보이던 가시가 깔끔하게 떨어진다. 마음먹고 목장갑까지 끼고 가시를 제거하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매끈한 장미 줄기를 가질 수 있다.



가시 돋친 말로 나를 무장해 보지만, 그 말에 상처받는 건 주위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뿐이다.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무심하게 내 앞으로 걸어와서 가시를 뚝뚝 떼어버릴 뿐이다. 더 얄미운 건 그렇게 쉽게 가시를 없애버린 뒤 향긋하고 예쁜 꽃송이를 마음껏 즐긴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거침없이 장미 가시를 떼어버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최근 들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온몸에 가시를 장착했다는 후배가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은 그녀의 하루가 조금 덜 힘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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