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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룩스 Nov 29. 2021

참새


 ‘스르륵- 탁’

 열리지 않을 줄 알았던 교실의 창문이 열리자 S와 J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S는 ‘진짜 들어 갈 거야?’라는 듯 그녀를 바라봤고, J는 ‘당연하지’라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빛냈다.

 결국 S가 먼저 창틀을 넘어 교실로 들어가 J의 손을 잡아 주었다. 둘은 컴컴한 와중에도 감히 불을 켤 생각은 하지 못하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 교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초등학교 교실이어서 그런지 책상과 의자 모두 소인국 사람들의 물건처럼 작고 앙증맞았다.


 둘은 검푸른 칠판에 생채기를 내듯 의미 없는 그림을 그리고 ‘떠든 사람 J’, ‘청소당번 S’ 같은 낙서를 하며 키득거렸다. 그러다 비좁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앉았는데, S의 머릿속엔 J와 돌려가며 읽던 만화책의 한 장면이 스쳐갔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따라 J의 얼굴엔 음영이 위치를 바꿔가며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S는 평소와는 다른 시선으로 J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어 설레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옅은 어둠을 핑계 삼아 좀 더 또렷하게 J를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둘만이 있는 공간을 채우는 건 J의 목소리였는데, 그녀가 내뱉는 단어들은 열병에 걸렸을 때처럼 어딘가 모르게 느리고, 울림을 머금은 채 S에게 닿았다. S는 물 속에 잠긴 듯 귀가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그의 심장소리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지금∙··인가?’

 그가 머릿속으로 한 자문에 답하듯 복도에 할퀴는 듯한 손전등 불빛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그 불빛은 천정과 바닥을 오르내리며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아늑했던 둘만의 공간은 순식간에 위험한 곳으로 변해갔다.

 “수위 아저씨인가 봐!”

 둘은 서로 부딪힐 듯이 일어나 들어올 때 열어놨던 창문으로 향했다. 창틀을 통해 교실로 넘어 올 땐 S의 도움이 필요했던 그녀가 창틀을 한 손으로 짚은 채 먼저 휙하고 넘어갔다. S는 잠시 그 모습을 감탄하는 마음으로 바라 보다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엉거주춤 따라서 창틀을 넘었다. 

 교문 밖을 지나서도 한참을 뛰어서야 둘은 달리기를 멈출 수 있었다. 가뿐 숨을 고르고 난 뒤에도 웃어대느라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J를 버스 정류장으로 데려다 주러 가는 길에 S는 못내 아쉬웠다. 한밤중에 몰래 들어간 교실에서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첫 키스를 하게 되는 그 만화책과 달리 S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평소처럼 재잘재잘 자신의 곁에서 이야기를 하는데도 S는 집중을 할 수가 없어 그저 ‘응응’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다 슬며시 J의 얼굴만 쳐다보다 고개를 숙이고를 반복했다. 눈치가 빠른 J는 그런 그가 못마땅했는지 S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     

 “해봐.”

 “응?”

 “해보라고.”

 “뭐를∙··?”

 “모르는 척 하긴”

 S는 자신의 귀가 붉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막차 시간이 가까운 늦은 시각이라 인적이 드물긴 했지만 그래도 거리 한복판이었다. J는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해보라니까”하고 말했다.

 S는 조금 짜증이 났다. 자신을 어린아이 다루듯 하는 J가 얄미웠고, 남자답지 못한 자신이 답답했다. J와의 첫 키스를 이런 식으로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는 홧김에 훅하고 한 발짝 다가섰다. 

 J의 입술에 닿는 순간, 부드러운 감촉과 찰나의 촉촉함이 온 몸의 감각을 깨어나게 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S는 마치 태어나서 처음 누군가의 입술에 닿은 기분이 들었다. 거의 닿자마자 뒷걸음친 것 같은데 그 감촉은 오래도록 그를 떨리게 했다. 

 J는 흠칫 놀라 어깨를 들어올린 채였다가 순식간에 자신에게 닿았다 떨어진 그를 보며 ‘풋’하고 웃었다. 그리곤 한마디를 덧붙였다.

 “참새냐?”



 참새……. S는 묵묵히 J의 손에 이끌려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녀 옆에서 그는 자신이 한없이 작은 존재로 느껴졌다. 마음 속으론 계속 ‘참새라니!’를 뇌까릴 뿐이었다. 맹금류 앞에 작은 참새가 된 기분이랄까.

 버스가 도착하고 그녀가 버스에 오르는 순간에서야 S는 J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이런 부끄러운 밤에도 J와의 이별은 늘 아쉬웠으니까. 차창 쪽으로 앉아 S에게 손 인사를 하는 그녀의 미소엔 어딘가 모르게 수줍음이 있었다. S가 처음 J의 손을 잡던 날 보았던 그 표정이었다. S는 J를 따라 손을 흔들었다. 


 J를 태운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S는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수줍은 미소가 계속 떠오르면서 마음 속엔 처음 느껴보는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것은 설명하기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었다. 

 집에 도착한 S는 샤워를 하다가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J를 생각했다. 잠이 오지 않아 양을 세듯 ‘씩씩한 J’, ‘얄미운 J’, ‘수줍어하는 J’하며 방 안 가득히 J를 가득 떠올리다가 이불을 뒤집어 쓰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 그래도 참새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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