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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룩스 Nov 25. 2021

사랑의 기쁨


 윤중로의 벚꽃은 너무 일렀다. 살비듬처럼 내려앉은 벚꽃은 봄의 정취를 드러내기엔 충분했지만 내 마음의 풍경과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내 마음처럼, 좀 더 짙은 봄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기다려야 했다.

 내가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분홍빛 철쭉이 가득하게 핀 철쭉동산이었다. 철쭉이 세상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광경은 내 마음과 꼭 닮아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짝사랑도, 철쭉동산도 짙어지는 과정은 같다. 처음엔 어린아이 얼굴에 수두가 올라오듯 점점이 피어오르다 도처에 매복해 있는 병사들처럼 순식간에 덮칠 기회를 엿본다. 그 진분홍의 움직임은 차츰 면적을 넓혀가다 결국 전체를 차치해버린다.

 나는 그저 멍하니 ‘오늘은 철쭉이 이만큼 피었구나.’하며 속수무책일 뿐인데, 그것은 마치 ‘너에 대한 마음이 오늘은 더 짙어졌구나.’하고 가늠해 보는 일과 같다.


 언제부턴가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거나 예쁜 물건을 발견할 때마다 너를 떠올리게 되었다. 맛있는 것을 너에게 먹이고 싶고, 예쁘고 좋은 것을 너에게 주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이런 마음이 빈번해질수록 내 안의 너는 점점 더 짙어졌다.

 언제가 네가 나를 가만히 위로해주던 밤, 술을 못 마시는 나를 위해 대신 술을 마셔주던 밤엔 나는 한밤중에도 분홍빛 사람이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네가 ‘으응 그랬어?’하며 나를 어린아이 다루듯 할 때도 너는 내 안에서 점점 더 짙어졌다.


 철쭉의 꽃말이 ‘사랑의 기쁨’이란 것을 알려준 사람은 너였다. 어릴 적 꿈이 플로리스트였다고 했던 너는 꽃에 대해선 모르는 것이 없었다. 너는 길을 가다가 발견한 작고 이름 모를 꽃들에 대해서도 나에게 알려주곤 했었다.

 네가 철쭉의 꽃말에 대해 알려주던 날, 우리는 사랑의 기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너는 서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남녀가 맺어지는 것이 사랑의 기쁨일 것이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사랑하는 상대방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사랑의 기쁨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술을 마신 다음 날엔 햄버거로 해장을 하고, 모네의 그림을 좋아하며, 화가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으니까. 그런 것들은 네가 내 옆에 없는 순간에도 너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게 해주었다. 너의 장난기 어린 눈빛과 부드러운 콧날, 왼쪽 허벅지의 작은 사마귀 못지않게 말이다.


 짝사랑과 철쭉동산이 분홍빛으로 충만해지는 과정은 같지만 그로인한 결과는 다를 수 있다. 나는 계속해서 네 곁에 있는 사람이 되거나, 롤랑바르트의 말처럼 ‘그 사람이 아픈’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짙어지는 내 마음이 기쁘면서도 두렵다.


 철쭉동산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다. 철쭉축제 기간이면 언제나 많은 사람이 철쭉동산을 찾아오는데 온통 진분홍빛으로 뒤덮인 동산 위의 사람들은 멀리서보면 마치 핑크빛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언젠가 나는 그 장면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선 ‘#철쭉동산’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던 적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있는 게시물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던 것이다.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는 철쭉동산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마치 가상의 공간까지 분홍빛 꽃의 파도가 넘실거리며 들이닥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 같은 풍경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던 사람들도 철쭉동산이 만든 핑크빛 바다에 흠뻑 적셔지고 있던 것이리라.

 그날, 철쭉의 바다를 유영하던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철쭉동산을 찾아올까? 아마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봄이 깊어질수록 핑크빛으로 물들었던 그 시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매일 출근길 지하철의 차창 너머로 보던 철쭉동산이 이제 제법 분홍빛으로 만개하고 있다. 너에게 보여주고 싶던 ‘꽃의 바다’가 만조가 되어 분홍빛 물결로 가득 차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나는 너를 데려와 그 안에서 수영도 하고 배도 띄우며 내 마음에 대해 털어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진심이 너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무작정 진심이란 말을 들이대며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라는 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네가 내 마음을 받아주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너에게 저 꽃의 바다를, 분홍빛 포말 하나하나를, 파도처럼 밀려드는 사랑의 기쁨을 보여줄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너에게 전화를 건다. 네가 전화를 받지 않아 끈질기게 들려오던 통화 연결음은 어쩐지 낮고 엄중한 분위기로 울린다.

 너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후로 내게 걸려오는 모든 전화와 카카오톡 메시지는 너일 것만 같아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힘들다.

 너일 것만 같던 다른 사람들의 연락들이 사라지고, 밤 아홉시가 넘어서야 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너의 목소리 한 번에 서운한 마음은 사라져버렸지만, 나는 한동안 횡설수설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다 이대로 네가 전화를 끊을 것만 같던 그때에서야 나는 용기를 내어 이 말을 한다.


 “정현아, 이번 주말에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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