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흥라떼 Mar 23. 2024

친구 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첫째

'고작' 초2라고 생각했던 아이인데 

최근 어느 한 날 저녁, 첫째가 아주 사소한 일에 격한 감정을 표했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더라고요. 엄마인 저의 말과 행동이 속상하다고요.


저는 아이의 낯선 반응에 당황했고 일단은 지켜보기만 했어요. 아이는 계속 울었고 결국 하루 네 쪽 공부도 거부한 채로 거실에 무기력하게 벌러덩 누워있기만 했어요. 한편으로는 억울했습니다. 제가 뭘 했다고 아이가 이토록 강하게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건지... 그저 당황스러웠어요.


저는 평소와 다른 아이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00아, 혹시 무슨 일 있어?
엄마는 네 행동이 좀 과하다고 생각해. 


묻고 물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이는 최근 새롭게 배정된 반에서 친한 친구와의 관계 문제로 마음에 어려움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집에서 엄한 일에 감정이 터져버린 거죠. 아이와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해 보았습니다. 저 또한 당황하긴 했지만 최대한 제 감정은 뒤로한 채 대화에 집중했어요.


아이는 흔히들 겪는 여자친구들 사이에서의 갈등을 토로하더라고요.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마음에 걸리는 친구도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이와 한 시간 가까이 교우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저는 그저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적절한 반응을 했을 뿐인데 한 시간 이후 아이의 표정은 한층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었어요.


그렇게 아이의 걱정은 한 시간의 대화 덕에 끝이나 나 싶었어요. 하지만 이번 주에는 자려고 누웠을 때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 나도 00 언니처럼 인기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어요.
진짜 속상해요.


아이는 연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신의 인기 없음을 한탄하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 방의 불을 끈 상태라 저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피식피식 웃었습니다. 아이의 걱정이 그저 귀엽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아이는 꽤 진지했습니다.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나도 00 언니처럼 인기가 많아서 다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랑 놀고 싶어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아서 너무 슬프다고 말했어요. 잘하는 게 하나 없다는 멘트까지 덧붙여가면서요. 


그러더니 엄마인 저와도 비교를 하더라고요.


엄마는 친구가 많잖아요.
그런데 나는 친구가 얼마 없어요.
아무도 나랑 놀려고 하지 않아요.


저는 제 입장을 또 찬찬히 설명했어요. 제 친구 00 이는 30살이 넘어서야 사귄 친구고 저도 초등 저학년 때는 단짝 친구가 없었다는 것을요. 아이가 알고 있는 제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이름을 읊어가며 사귀게 된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제 이야기를 이해하고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가도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며 자기 비하를 이어가기도 했어요. 


아이에게 00 언니의 장점을 본받아서 실천해 보자고 솔루션을 제시해 보기도 하고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엄청 대단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해 주었어요. 아이는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며 자기의 속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조금은 격한 감정이 사그라든 것 같았어요. 그러고는 내일부터 조금씩 노력해 보겠노라고 다짐을 하며 잠에 들었습니다.


저희 첫째가 2학년이 되고 나서 사회성이 많이 발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어느새 자기를 객관화해서 보고 주변 관계를 세심하게 캐치하며 자신의 말과 행동을 스스로 돌아볼 줄 아는 아이가 되어있더라고요. 한 발 두발 걸음마를 하기만 해도 박수세례를 받았던 꼬꼬마였는데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새삼스럽고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친구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 인기 없음을 한탄하는 아이가 대견했습니다.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장한다는 티를 제게 팍팍 내주었으니까요. 그런 고민을 속으로 삭이지 않고 고민을 상담하듯 술술 이야기해 주니 엄마로서 어찌나 고맙던지요. 


어제는 제가 읽고 있던 책에 나온 문구를 아이에게 읽어주기도 했어요. 


00아, 엄마가 지금 읽고 있는 책
<행복의 기원>에 나오는
좋은 문장을 이야기해주고 싶어. 

이 책은 행복에 관해서
많이 연구한 교수님이 쓴 책인데
'친구가 무조건 많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몇 명의 '진짜 친구'가 있는지 중요했다.'
라고 나와있어.

00 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야! 


책 속 문장을 전하면서 비록 아이의 걱정과 문제를 앞에 나서서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뒤에서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순순히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응원하며 작은 솔루션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주는 엄마로 계속 존재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습니다.






혹시 요즘 아이가 부쩍 짜증이 늘었나요? 별것 아닌 일에 감정을 과하게 표현하고 있나요? 새 학년이 되어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닐까요? 어쩌면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받는 일이나 영역이 있을 수 있어요. 아이의 기분과 상황을 잘 살펴보시고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물어봐 주세요. 아니면 1:1 데이트를 하면서 아이의 스트레스와 긴장을 조금 풀어주셔도 좋고요. 


분명하게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아이가 저학년일 때부터 관계를 잘 맺어놓아야 사춘기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아이가 어리게 느껴져도 아이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진지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더라고요.


아이가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부드러운 대화로 마련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이의 문제를 앞서서 해결해 주신다거나 아이의 잘못된 말과 행동을 다그치기보다는 응원과 격려의 말씀을 듬뿍해주셔서 아이의 걱정이 서서히 눈 녹듯 사라지는 매직이 펼쳐지면 좋겠습니다.



씩씩한 우리 첫째, 엄마가 마음 다해 네 삶을 응원해❤️


사진 출처 © charleingracia, 출처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가 처음 만난 담임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