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게 된 일이 있다. 첫째 장에 담긴 17살의 풋풋하면서도 촌스러운 증명사진을 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유년기의 추억과 그 시절의 낭만이 덩달아 떠오른다.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내 시선이 머무른 곳은 다름 아닌 “진로희망”이었다.
“진로희망”
1학년부터 순차적으로 정리된 그 칸에는 ‘천문학자, 아나운서, 한의사’가 적혀있었다.
‘내게 그런 꿈이 있었구나…. 맞아, 내게 그런 꿈이 있었지.’
분명 내가 적은 게 맞는데도 마치 답․정․너처럼 다른 이가 정해준 마냥 낯설다. 마흔을 앞둔 어른인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는데, 세상 물정 모르던 그때의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진짜 알고 있었을까. 분명 꿈이 많은 소녀였건만 어른이 되면 될수록 원하는 것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으로 인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것조차 잊혀져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안다는 것. 그건 어쩌면 축복일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왔다가 간다는 지름신이 있다지만, 단편적인 충동구매로 생긴 물건들이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채워주는 것은 아닐 테니까.
불교에는 ‘욕계중생’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욕망과 욕구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동물이라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욕망과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지만 욕망과 욕구가 없다면 인간은 동력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욕구는 삶의 지도를 그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가 된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삶의 목표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삶의 방향을 찾기는 더 수월해진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삶의 지도를 들고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낯선 곳을 갈 때 지도를 들고서 목적지를 찾는 것과도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욕구가 많다고 해서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아는 건 아니다. 오늘도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좋아하는 순두부찌개를 먹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다고 해서 내가 어떤 삶을 살기를,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오늘은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 자리에 앉아 한참을 고민해도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없기에 과연 이 질문이 그렇게 쉬운 질문인지 의문이 든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과연 많기나 할까. 만약 이게 쉬운 질문이었다면,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고전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묻는다.
‘네가 좋아하는 일이 뭐니, 너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니, 네가 꿈꾸는 모습은 어떤 모습이니, 10년 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그래서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고 채근한다.
하지만 변덕이 죽 끓듯 돌아서면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인데 오늘 내가 원하는 것이 10년 뒤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을 수만도 없다. 고등학생 때 진로희망이 마흔을 목전에 둔 지금과 일치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이던 그때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꼭 그럴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차라리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하면 훨씬 수월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오늘 하는 이 방황을 방황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테니까.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몰라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직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것을 알기 위해 시도해 왔고, 앞으로도 무엇을 좋아하는지 계속 알아보려고 해요.’라고 대답해도 썩 괜찮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난 아직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요. 하지만 뭐, 어때요? 오늘은 이게 좋았다가 내일은 아니라면 내일은 내일대로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좋아하는 걸 이루기 위해 시도하다 보면 알게 되겠죠.”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다.
이 음식도 먹어보고, 저 음식도 먹어보고.
다양하게 책도 읽어보고. 글도 적어보고.
그러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겠지.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 인생이 저물 즈음이 되면 내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그 길을 보며 내가 무엇을 향해 걸어왔는지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가 나를 아는 게 그렇게 쉬웠다면,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가슴 깊이 새길 말은 안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What can I do for myself?”
오늘 당장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자책하지 말고, 일단 편히 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