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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진 Dec 02. 2021

오늘 밤, 상처가 나를 흔든다 해도

가슴 속 깊숙이 담겨진 기억은 우리를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데리고 간다

 유년기의 경험은 오래되어 잊혀진다 할지라도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일 것이다. 그렇게 중대한 시기라고 해서 그때의 기억이 모두 좋았다고만은 할 수는 없다. 어느 엄마든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어느 아이든 미숙할 수밖에 없다. 나의 엄마도 예외 없이 불완전한 사람이었고, 나 역시 미숙한 어린이였다. 이러한 사실에서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행복했던 추억은 모두 잊혀지고 지워져 상처받았던 기억만이 성인이 된 나를 휘젓는다. 분명히 잊혀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일 텐데 그 시절의 상처는 흉터로 남아 살아가는 내내 나를 지배한다. 

 무의식에 대해 처음 언급한 프로이트의 이론이 그래서 그토록 권위가 있는지도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반면 수면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빙산의 뿌리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에 비유된다. 빙산의 모습만 보더라도 무의식은 의식을 압도하기에 충분히 거대하다.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순간적으로 욱할 때는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 순간이다. 나 역시 그러한 순간은 자주 찾아왔다. 특히,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부터. 

 아이의 칭얼거림이 너무나 듣기 싫었다. 아이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짜증이 솟구쳤다. 분명 머리로는 아이가 칭얼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을 알지만 내 감정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가 5살 무렵이었다. 원래도 식욕이 없던 아이인지라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마다 전쟁이 찾아왔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찾아오는 식사시간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밥상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한 숟가락만 더 먹어봐.” 

 “싫어, 배불러요.” 

 “아무 것도 안 먹었잖아. 딱 한 숟가락만 더 먹자.” 

 “싫어, 배불러.”      

 똑같이 반복되는 장면에 둘 다 지칠 법도 한데 어느 누구도 백기를 들지 않은 채 자기 입장만 고수했다. 그런데 그날은 아이가 선을 넘고야 말았다. 아이가 선을 넘자 간당하게 붙잡고 있던 내 이성의 끈도 끊어졌다. 

 밥이 너무나 먹기 싫었던 아이는 연신 숟가락을 들이미는 상황 자체가 자신을 옥죄는 무엇이었으리라. 아이가 온몸으로 거부를 표현하다가 발로 밥상을 툭 밀쳤다. 밀린 밥상은 내 가슴팍으로 다가왔고, 순간적인 찰나 본능적으로 그 밥상을 온 힘을 다해 뒤집어엎었다. 애써 준비한 밥과 베이컨은 바닥에 흩어져 여기저기 흰 뭉탱이를 지었고, 하얀색 접시는 동강이 났다. 접시가 깨지던 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밥상을 엎어버렸다...     


 밥상은 엎어졌고, 밥은 바닥에 떨어졌다. 날카롭게 깨져버린 접시의 파편들은 상처받은 아이의 표정과 상처받은 내 어린 시절의 한 순간처럼 아팠다. 

 인내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아이 앞에서 감정을 쏟아버렸다는 창피함은 나를 겉잡을 수 없게 했다. 터져버리는 시한폭탄처럼 자포자기와 같은 심장으로 그나마 손에 쥐어져 있던 하얀색 주걱마저 있는 힘을 다해 바닥에 집어 던졌다. 아이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악마일지도 모른다. 모든 분노는 내가 터뜨려놓고 그 조차도 주체할 수가 없어서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미 감정을 쏟아낼 만큼 쏟아내 놓고서도 그칠 줄을 몰랐다. 

 현관문 밖에 서서 버텼다. 아마도 그 순간에는 나 역시 유치한 존재가 되어 너에게 나는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어른이니까 가질 수 있는 권위를, 아이 에게 내가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유치한 본능만이 남아 나를 휘둘렀다.     


 ‘난 어른이야. 넌 내가 없으면 살 수 없어. 내가 키워주니까 살 수 있는 거야. 내가 밥 주니까 네가 굶지 않고 살아가는 거야. 너에게 나는 절대적인 존재야. 그러니까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해.’     


 밥과의 전쟁은 단순히 한 숟가락을 더 먹이기 위한 엄마의 욕심에서 시작하여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잘 먹어야 잘 크는 거야.”라는 말 뒤에는 ‘어쭈, 이것봐라. 내 말을 안 듣네.’ 라는 폭군의 무의식이 자리 잡는다. 그건 아마도 부모님의 권위에 굴복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 나의 복수심인지 모른다. ‘그때 당한 걸 이젠 내가 되갚아 줄 테야.’라며 무의식이 폭주를 하면 한 숟가락만 더 먹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모성애는 복수심이 활활 타오르는 유치한 꼬마 아이의 분노로 변한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절대강자처럼 군림하는 것은 유치하다. 존중을 받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행동과 인격이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성인이 된 우리는 안다. 존중은 나이만 많다고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아님을. 하지만 난 따지고 보면 유치한 기 싸움을 그것도 고작 다섯 살 된 아이와 나이가 많다는 것으로 하고 있었다.      

  ‘가슴팍으로 밀려오던 그 밥상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아이와의 전쟁은 엄마가 반성한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의식이 ‘화내는 건 옳지 않아’라며 연신 나를 말려도 무의식이 폭주하면 허수아비마냥 그 명령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그때마다 무의식의 위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론가는 그만큼 그의 이론이 합당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프로이트가 심리학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건 그만큼 그의 이론이 가지는 힘이 컸으리라. 그래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상처를 풀기 위해 다양한 상담 기법을 거치다 결국에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정신분석”에 이르게 된다.


 2019년 3월부터 정신분석을 시작했다. 정통적인 방식은 긴 쇼파에 누워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는 자유연상법인데, 내가 한 정신분석은 상담자와 대면하여 생각나는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 하는 방식이었다. 

 상담을 시작하면 막상 어색해서 아무 말도 못할 줄 알았지만 묵혀두었던 원망과 분노가 멈출줄 모르고 쏟아져 나왔다. 유년기 때부터 담아왔던 엄마에 대한 상처였다. 희안하게도 평소에 기억나는 상처는 몇 장면되지도 않는 것 같았는데 들추어내면 들추어낼수록 머릿속에 무슨 상처가 이리도 많았나 싶을 만큼 분노로 물든 상처들이 쏟아져 나왔다. 쓰레기들을 꽉꽉 눌러 담아 매립지를 만들고 그 위에 멋진 건물을 세운다고 해도, 비가 오면 악취가 진동하는 것처럼 밝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건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처 위에 세운 위태하고 나약한 행복이었다. 

 아이와의 관계가 극에 치닫는 순간마다 유년기에 내게 화를 내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엄마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억눌린 상처 위에 아이와의 관계를 짓고 있었다. 아이가 나를 화나게 할 때뿐만 아니라 매 순간순간이 그토록 싫어하던 엄마의 모습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절대로 닮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을 똑같이 흉내 내면서 그것에 더해 어린 시절의 상처와 어른이 되고 나서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죄책감은 나를 더욱더 괴롭혔다. 화내던 엄마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는 성인인 나의 모습까지 합쳐져서 엄마로서 나라는 존재는 나날이 시궁창이 되어갔다.

 내 아이와의 관계는 내 아이, 어른이 된 나, 어린 시절의 나, 그 시절의 엄마가 합쳐진 복잡하게 엉켜버린 실타래가 되어 있었다. 정신분석을 통해 그렇게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이유들을 찾아갔다. 했던 이야기를 이제 그만해도 될법한데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서 쏟아냈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을 건져 올리듯 무의식 깊은 곳에 있던 아픔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정신분석을 진행한지 3년이 되어가던 해 비로소 엄마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어느 순간 해방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3년이라는 시간이 내면 속에 있던 감정의 쓰레기를 하나씩 가져가면서 얻게 된 자유였다. 

 비로소 아이와의 관계에 드리워진 어린 시절의 나도, 분노하던 엄마도 지워졌다. 오롯이 아이와 나, 둘만이 남아 순수하게 웃고, 상황 자체로 화내고, 다시 화해하는 평범한 모자지간이 되었다. 

 정말 엄마는 내게 상처 주는 존재기만 했을까? 상처의 쓰레기가 비워져갈 즈음이 되니 엄마에게 사랑받았던 순간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나를 꽉 끌어안으며 “이렇게 예쁜 게 누구 뱃속에서 나왔을꼬?”라며 행복해 하던 엄마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분노의 기억이 나를 울렸다면 이번에는 사랑받았던 기억이 나를 울린다. 왜 이다지도 지난날의 기억은 아프고 슬플까. 상처는 상처라서 아팠고, 행복한 기억은 잊혀졌기에 슬펐다. 


 슬픔이 떠난 후에는 평온함이 남는다. 이제는 날 행복하게 해준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행복을 내 아이에게 전해준다.      

“이렇게 예쁜 아들은 어디서 왔어? 별나라에서 왔어, 하늘나라에서 왔어, 달나라에서 왔어?”

“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셨어”     

“우리 아들은 어떤 아들이야?”

“소중한 아들”     


 가슴 속 깊숙이 담겨진 기억은 우리를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데리고 간다. 그 기억의 필터를 자유자제로 선택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켜켜이 쌓이는 기억들을 묵묵히 가슴에 담아둘 뿐이다. 그 속에서도 좀 더 성숙한 내가 되어 아픈 기억은 걷어내고, 행복한 추억을 꺼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잠든 아이 곁에 누워 슬며시 기도해 본다.      

 ‘네게 엄마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네가 더 행복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길. 우리가 비록 완벽하진 않더라도 싸웠다가도 화해할 수 있는 관계가 되길.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내 아들. 엄마가 정말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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