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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용철 Feb 05. 2022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021)

카메라는 재개발 중인 빈민가를 탐사하듯 공중을 날아 움직이며 보여준다. 훗날 뉴욕 필하모닉이 상주하는 뉴욕의 종합예술센터가 될 링컨 센터가 이 부지에 들어올 것을 보여주는 팻말을 지나면서 들려오는 손가락 스냅 소리. 그렇게 제트파 일당이 하나 둘 등장하며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시작한다. 1957년 뮤지컬로 브로드웨이에 초연된 이후 1961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손을 통해 한 차례 영화화된 바 있는 이 뮤지컬은 어쩌면 닳고도 닳은 이야기다. 애당초 1957년 뮤지컬의 이야기부터가 셰익스피어의 그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원안으로 두고 있으니 이 이야기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이야기할 것도 없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오래된 이야기를 2021년, 지금으로 소환했다. 낡았다면 낡았을 이야기는 그렇게 거장의 손길이 닿아 오늘날로 돌아왔다.

스필버그의 손 끝에서 태어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드디어 이제야 영화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1961년 판에서는 공연 뮤지컬을 영상화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반면, 지난 몇 년간 스필버그와 호흡을 맞춰온 야누스 카민스키의 롱테이크는 거리를 종횡무진하며 '웨스트 사이드' 지역에 공간감을 더하고 이야기의 차원을 무대 아래로 내려 땅 위에 발을 붙이게 만든다. 원작의 요소를 거의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몇 가지 요소에 손을 대며 완벽히 이 오래된 뮤지컬을 '영화'로 만들어내는 모습에서는 영화에 통달한 달인의 솜씨가 돋보인다. 이를테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을 위시했을 토니와 마리아의 소방 계단 장면에서 부드럽게 두 사람 사이를 가르고 합쳐내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아니타가 아메리칸드림의 찬가를 노래하는 넘버 'America'를 부르는 장면에서 웨스트 사이드를 이리저리 활보하는 카메라가 그렇다.

뮤지컬을 영화로 탈바꿈시키는 한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몇 요소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제트파와 샤크파의 갈등이 이민자 문제에 관한 우화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1961년 판과는 달리 스필버그는 이들이 무너진 영토 위에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음을 강조하듯 오프닝을 시작한다. 누가 이기더라도 결국 웨스트 사이드는 무너진다는 사실은 토니의 죽음으로 깨닫게 되는 집단 갈등의 무의미함을 한층 더 강조한다. 원작의 아니타 역을 맡았던 배우 리타 모레노가 극 중 등장하는 어른인 발렌티나의 역할을 맡아 다시 등장한 것은 아주 오래전에 이미 이민자 갈등 상황에 관해 원작이 지적한 문제가 현재까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트럼프를 필두로 촉발된 이민자 갈등의 문제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이야기가 다시금 필요해진 이유다.

토니와 마리아의 러브 스토리보다 주변 인물들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은 분명 이런 이유에서  것이다. 너무나도 클리셰적이고 외삽적인  주인공의 러브 스토리가 너무나도 뻔하고 개연성 없다는 것은 스필버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스필버그는 우리로 하여금 눈을 돌려 제트파와 샤크파 사이의 갈등을 지켜보게 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랑 이야기의 실상은 이민자 집단 갈등을 비극적으로 만드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보다 많은 스페인어 대사를 추가하고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이 스페인어로 말하게  것은 이들의 이민자적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에 가깝다. 의도적으로 스페인어 자막을 달지 않은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겉보기에 스필버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골라 만든 것처럼 보인다. 나라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이렇게 만들었겠어, 같은. 그러나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단순한 거장의 장난감이 아니라, 영화로서 완벽한 재해석과 시의적절한 메시지의 포착을 통해 오래된 이야기를 왜 다시 불러왔는지를 증명하는 영화다. 그렇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고전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고전이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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