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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날이 온다-1

친구 덕분에 받은 봉사상 

- 봉사의 시작은 내 미래까지도


우리 삶의 주요 과제는 단순하네.  스스로 통제 할 수 있는 선택과 통제 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 둘을 분리하는 것이야.  인생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들은 외부 요인에서 찾을 수 없네.  오로지 통제하고 변화 시킬 수 있는 나 자신의 선택 안에서 찾을 수 있다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2,5, 4-5


참 그창하다.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쏟으면서 정작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에는 시간을 할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나 쉬운 것과 어려운 것 앞에서도 우선순위를 정하며 멈춘다.


초등학교시절 친구 한명이 화장실 앞에서 쓰러졌다. 그 아이의 입에서 허연 거품 같은 침이 입안에 고이며 몸을 버둥거리며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 주변에 있었던 아이들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가만히 얼음이 되어 지켜 보기만 했으나 난 그냥 있으면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마음으로 그 아이 옆에 앉아서 그 아이가 다시 움직일 때까지 그 아이 곁을 지켰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는 모두 어렸고 그런 광경을 본 것은 그 아이가 처음이었다. 그 아이는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지랄병(뇌전증)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는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여러번 그런 행동을 보였다.  그런 행동을 목격 할 때마다 난 그 아이 옆에 가만히 있어 준 기억이 있다. 


- 선생님이 발견한 내 안의 블루스-저 가시나들 바보 

나를 부를때 인정머리라고는 '쯔쯔' 라며 혀를 차는 엄마는 말하였다. 그래 난 원래 인정이 없어 내 살기도 힘든데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그 흔한 1년 개근상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초등학교6년을 졸업했다. 학교 안간 날도 손가락으로 셀수 없을 정도이다. 운동장에서 모이는 날은 빈혈로 여러번 쓰러지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주번과 함께 교실을 지키기도 했다.


나에게 이런 날이 왔다. 중학교 졸업하는 날 난 우리학교 대표로 봉사상을 받았다. 난 지금까지도 내가 찾아다니면서 남을 돕거나 할 만큼 체력이 강한 편은 아니다. 


졸업식에서 학교 대표로 봉사상을 받은 계기는 동네에 지능이 낮은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 살고 있다는 이유라면 이유라고 말을 하고 싶다. 그 당시 그 아이는 우리집 부근에 살고 있었고 그 아이는 길에 서 만나면 나에게 웃으며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내 앞에 내 길을 막고 서기도 했다. 그 당시 내 미래를 알 수 없었다. 내가 이 친구와 함께 중학교3학년 시절을 함께 다닐 것이라 사실을 나도 영숙이도 몰랐다. 그 학교 입학을 하기 전까지는 정말 몰랐다. 그리고 그 당시 중학교 여학생은 성격상으로 생리적으로도 예민하고 공부를 잘 해야 원하는 고등학교 입학의 기회가 주어지는 연합고사 시험을 쳐야했다.  자기 공부하기에도 바빠 누구를 돕는다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그날이 온다-봉사상을 받을 절호의 기회

그런데 나에게 그날이 왔다.


청천날벼락이다. 우리 담임이 교무실로 나를 불러 "해정아 너 학교 오는 길에 영숙(가명)이 데리고 오고 집에 가는 길에 영숙이 데리고 가.  집에 가면서 데리고 가라. 친구를 위해서 해라" 나도 모르게 "예스맨의 대답.


네"가 시작되었다. 말로 3년이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사춘기시절의 여자아이가 발달장애 친구를 데리고 다녔다. 그 아이와의 3년 추억도 만만하지는 않았고 어떤 날은 둘이서 우는 날도 많았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티비 매스컴에도 소개 되었다. 이렇게 높은 학교가 있다 없다. 출연한 패널들은 이런 학교가 없을 것이다. 어린 중학교 여학생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아니다. 난 이 학교를 나 혼자도 다니기에 벅찬데 장애를 가진 친구와 함께 다녔다. 


학교 가는 통학버스는 콩나물시루로 조금도 움직일 수 조차 없다. 버스를 타기 전 얌전하게 입은 세라교복의 단추는 열려있거나 옷은 뜯어지고, 주름치마는 한바퀴 돌아 있고, 머리카락은 벌집쑤셔 놓았 미친아이 같고, 이름표며 넥타이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 지옥 버스를 타고 매일 학교를 다녔다. 


영숙이는 해도 너무 했다. 영숙이는 버스 탈때와 식사시간은 가장 재빠르다. 그 비좁은 버스 안에 영숙이는 가방을 깔고 앉아 "해정아 니도 가방깔고 앉아라 그라믄 아무도 우리 주의에 못 온다." 난 쪽팔린다. 더 크게 부른다. "해정아 머 하노 빨리 옆에 온나." 좁은 버스 안의 언니, 오빠 동급생들은 우리를 쳐다본다. 그리고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는다. 쑤근 거리기 시작한다. 저 가시나들 바보다.


난 영숙이 덕분에 바보 같은 가시나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 버스안은 그 당시 명문 중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이 함께 탔었다. 

난 그렇게 쪽 팔려 가면서 영숙이와 동고동락을 했고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을 했다.  밉든 곱든 그 아이 덕분에 난 학교 대표로 봉사상까지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내 안에 그런 책임감이 있었다니 감사할 일이다.  그 아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아이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는 갈 수가 없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갈 수 있는 학교는 근처에는 없었다. 영숙이의 집도 이사를 했다.  

난 그 아이 덕분에 지금까지 상담사로 마을공동체 대표로 진정성을 담아  그냥 잘 살고 있다. 

중학교 담임은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그 친구를 나에게 맡겼을까?  영숙아 지금 살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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