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그 날만 오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사라졌다, 내 기억과 함께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아버지의 안경테는 나를 가만히 주시하고 한 걸음에 달려온다. "우리 정이 학교 갔다오나, 잘 갔다 왔나" 그리고 "밥은 먹었나, 오는데 힘들었제" 다른 부모들처럼 학교에서 뭐 배웠노! 이렇게 물어보지 않았다. 공부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고 그 생각은 아버지와 어머니 같았다. 공부에 관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은 크게 나지 않는다.
지금도 그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늘 반갑고 살갑게 맞아 주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엄마가 말했다."당분간 아버지는 못 볼거야, 멀리 있는 절에 공부를 하러 가셨다. 언제 올지는 몰라 그래도 오실거야." 지금도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을 할 수 없다. 내 기억은 멈춰 버렸다. 더 어린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도 끊어진 필름을 이어 붙여서 생각을 끌어 온다.
그런데 그 기억만 없다.
상담 장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나의 내담자도 마찬가지다. 다른 기억은 다 나는데 그 기억만 안 난단다. 드라마 대사 마냥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그래서 생각하지 말자."
기억의 뇌 과학/인간은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가/ 리사 제노바
출판사 MD의 한 마디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다. 기억하는 방식이 삶이고, 기억은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한편 인류는 알츠하이머라는 망각하는 병과 사투하고 있기도 하다.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 들려주는 불완전하고도 경이로운 인간 기억의 비밀
첫 번째 키스는 기억하면서 왜 열 번째 키스는 기억하지 못할까?
긍정적인 생각 행복한 순간은 계속 간지하고 싶다. 그 기억으로 삼풍 백화점이 사고 속에서 살아난 사람의 증언도 있었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너무나 힘든 사건을 기억한다는 자체가 지옥이다. 그 이후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우리에게로 돌아오셨다. 난 지금도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안 할지도 모른다. 그날은 오지 말아야했다.
- 한 동안 집 비운 엄마 따라 빨간 딱지도 함께 왔네.
어린마음에도 엄마는 참 잘 생겼다. 그렇지만 철이 없어서 하며, 엄마를 보는 중, 늘 중얼거렸다.
환경은 인간마저도 바꾸어버린다. 아버지가 보이지 않은 그 날이후로 엄마는강철의 여성이 되었다. 우리 삼남매만 집에 두고 작은 가게 하나 얻어 자고 먹으며 악착 같이 벌어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키겠다며 집을 비웠다. 주변에 계시는 외 할머니에게 삼남매를 부탁하셨다.
가끔 나를 불러 반찬이며 옷 가지를 가지고 가라고 연락을 주셨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도 없는 집은 쓸쓸하기만 한데 엄마라도 한번씩 오면 좋겠는데 . . . .오빠들은 엄마 고생하는 모습 보기 싫다며 안 간다 하고 막내인 난 엄마 보고 싶어 한 걸음에 달녀간다.
정말 늦은 밤 기별없이 엄마가 조용히 집에 오셨다. 너무 반갑고 기쁜 나머지 잠까지 설쳐가며 엄마와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누며 엄마 옆에서 잠까지 잤다. 이른 아침 엄마가 만들어준 아침밥까지 먹고 학교에 가며 "엄마 학교 갔다 와도 엄마 집에 있을거야?" 조용히 웃기만 하셨다.
엄마는 집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엄마 따라 빨간 딱지도 함께 왔다. 난 나중에 알게 되었다. 엄마가 집에 오면 우리집의 세간들이며 우리집이 사라진다는 것을 그 당시는 몰랐다.
쉬는 시간 교실 문이 드르르 열리며 행정실 직원이 내 이름을 부른다. 빨리 담임교사에게 가란다. 담임은 침울한 표정으로 "해정아 방금 할머니가 교무실로 전화가 왔다.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얼른 책가방 챙겨서 집에 가고 무슨 일 있으면 학교에 연락해라." "무슨 일이지, 어제 밤 엄마와 함께 잔 기억 밖에 없는데 무슨 일이지" 아무 기억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막 달렸다. 평소 걸음보다 더 빨리 달려도 걸음은 제 자리다.
집에 도착했다. 그 당시 우리집은 그 동네에서 2~3번째로 큰집을 지니고 살았다. 그런데 처음보는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빨간딱지를 붙여서 집안에는 들어갈 수 없단다. 원칙은 그대로 세간살이 하나 챙기지 못하고 나가야 한단다. 그래도 우리가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라 안에 들어가서 다른 건 손대지 말고 공부 할 책들을 챙기고 밥 먹을 가제 도구를 대충 챙겨서 나오라고 한다. 엄마는 없었다. 엄마는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감정이란 사치로 여겼다. 그 때 알았다. 너무 슬프면 눈물도 안 난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렸다. "역시 부자집 세간 도구는 많기도 하네, 한 명 두 명 챙겨가기 바빴다. 하늘에서는 애굿은 비 마저 추적 추적 내렸다. 그 순간에도 난 공부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책을 가장 많이 챙겨 왔다고 엄마가 말했다. 난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여자로서 엄마는 참 예쁘지만 그 날이후로 엄마는 더 전사가 되었다. 엄마는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창고에 대충 짐 챙겨 두고 허름한 여관 찾아 비 맞은 교복 갈아 입으려고 하니 교복 단추 떨어진 것 조차 몰랐다. 너무 슬프면 감각도 기억도 내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날은 온다. 그날에 대한 기억은 또 잊어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하며 오늘도 조용히 살아내고 있다. 늘 감사를하며, 그 날도 이겨냈다.
*집행관(집달리, 집달관) : 강제집행을 함에 있어서 채무자의 재산에 필요 이상의 손해를 발생하지 않도록 할 주의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