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대기 끝의 불안장애 심리치료
고민을 많이 했다. 이런 글들을 누군가 본다면 내가 정말 상처 많은 사람이며 불쌍하다고 생각할까봐. 다른 사람 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정말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이 맞다고 받아들여야 할 거 같아서 그게 두려웠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 글을 쓰게 하는 동기부여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었다, 20대 초반까지는.
남들은 꼭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넌 진짜 너네 가족이랑 다른 거 같아".
온갖 발버둥과 노력으로 가족과는 다른 사람이 됐다는 것에 안도하고 기뻐하며, 그런 지옥 같은 집에서 잘 견뎌 이렇게 자라준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었다. 그러나 학대라고 깨닫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렇게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매일 매일 구석에서 우는 내 자신은 눈물 닦아 내며 잘 버텨내자고 위로하기 급급했으니까. 하루하루 살아나기 급급했으니까. 20대가 되어서 해외로 나오게 되면서 지옥 같은 집을 나오며 가족들과 거리가 멀어지면서 생긴 마음의 여유 속에서 모든 것들이 학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갖 도구로 매를 맞았다. 목검, 드럼 스틱, 큰 자, 파리채, 작은 자... 온갖 막대기로. 다리에는 피멍이 든 채로 학교에 나간 적도 있다. 제일 흔하게 맞은 게 종아리, 뺨도 맞고, 욕설은 늘 듣고. 방에 들어와 있으면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내 욕 뿐이었다. 미친년, 도라이년, 저년, 이년... 밥 먹을 자격도 없다며 밥도 주지 않았다. 욕을 먹는 이유도, 매를 맞는 이유도 별거 없었다. 공부하다가 핸드폰을 해서 들킨 게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학교 끝나고 집에 오지 않고 피시방을 갔다거나.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괜찮아…." 라고 다독이며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니 집이 미친 거라고, 억울해서 내가 어떻게 죽냐며 살아남자고 늘 다짐하는 날들이 나의 매일 이였다.
핸드폰을 압수당한 후 친구에게 핸드폰을 빌려왔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못 하며 지옥에서 버텨내는 건 불가능이었다. 그래서 빌려왔다. 결국 어머니와 오빠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그 핸드폰을 쓰다가 발각되었다. 오빠는 화가 나서 나를 발로 찼고, 난 저 복도 끝까지 날아갔었다. 모든 학원생이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 무섭고, 수치스러웠다. 한 학원생이 몇 년 후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줬다. 내가 너무 불쌍하고 우리 집이 너무 심하게 엄격한 거 같았다고. 자기는 그런 집에서 못산다고 그랬었다. 내 친구들이 나에게 해주는 말이랑 친구가 아닌 사람이 해주는 말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똑같을까. 제 3자 눈에는 내가 보는 것이 보였다. 남들은 알고 우리 가족들은 모른다. 가족들은 늘 내가 맞을 짓을 했다, 미움받을 짓을 했다. 모든 게 내 탓이었으니까. 이런 지옥에서 나의 유일한 위로는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이 아닌 사람들, 그리고 심리학이었다.
심리학 논문들을 검색해가며 우리 가족이 왜 이렇게 된 건지, 다들 상처투성이라 그렇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들이 내가 잘못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모두의 상처가 연결되고 연결돼서 일어나는 악순환이라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난 전문가가 아니라 해결능력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 상황을 잘 이해하게 되는 것 만으로 나에겐 큰 위로였다.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줄 힘을 실어줬으니까.
심리치료 첫날, 계기는 작년 6월에 생긴 불안장애 증세들.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답답하고, 잠도 잘 못 자고... 원인은 전에 받은 수술 때문이었는데, 10년, 20년이 흘러서 부작용이 생기시는 분들을 보며 처음 시간이 흘러도 언제든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니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내 인생 첫 불안장애가 시작되었었다. 결국 한국에 가서 재수술을 받고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녔다. 이곳 영국은 바로 의사나 치료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상담을 받기 위해 거의 반년 이상을 기다렸다. 2021년 7월에 신청하고 2022년 1월 말이 되어서야 내 차례가 왔다.
첫날은 나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보다는 지금의 내 상태가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시려고 했던 거 같은데, 내가 그냥 대부분의 과거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첫날부터 거리낌 없이 다 이야기하는 나를 보고 엄청 놀라셨었다. "오늘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는데 이렇게 다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내 의지가 그만큼 강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치료에서 궁극적으로 내가 바라는 목표가 무엇인지 물어보셨었다. 난 자존감 극복과 나를 다시 사랑하는 게 제일 큰 목표라고 답했다. 이 낮아진 자존감으로 외국 생활을 하는 데 굉장히 걸림돌이 되었다. 영어를 하는 게 싫어졌고, 현지인들을 마주하는 게 두려워졌다. 인종차별을 여러 번 겪고 나니, 이 사람이 나에게 잘 대해줘도 겉으로만 잘 대해주는 척만 같았고, 속으로 다 나를 싫어하겠지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내 자존감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의문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보인 건 과거에 가족들과 있던 많은 사건들이었다. 내 현재의 문제들, '왜 지금 나는 이럴까', '왜 전에는 내가 노력하면 나 자신의 많은 것들을 바꿔 나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되지 않을까', 고민에 잠기면 결국 늘 끝은 과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무기력해져서 갔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껴 이렇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늘 학생 때부터 심리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금전적으로 여유가 되지 않아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심리치료를 GP를 통해서 받으면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자존감이 낮으니 전에 자존감이 높았을 때의 나와 비교하게 되고, 지금 나 자신이 꼴 보기가 싫어지고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다. 전에 난 이러지 않았는데 지금의 난 왜 이래? 하며 자신을 미워하게 되었다. 난 과거의 나처럼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나의 목표인 거 같다.
숙제로는 Problem Diary 작성을 하라고 내주셨다. Worry Diary, 불안장애일 때 적는 걱정일지에 대해 이미 스스로 알고 있었고, 치료받지 못하는 동안 걱정일지를 스스로 적으며 주변에 피드백을 받곤 했었다. 내가 전문적인 치료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는 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했다. 혼자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런 거 밖에 없었다.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