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Miyake 미야케 준 [Stolen From Strangers]
음악을 향유하다 보면 하나의 좋은 감정이 다른 장르까지 확장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딸은 요즘 실리카겔에 빠져 있는데, 보컬 김한주가 Radiohead 라디오헤드를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에 책장에 꽂혀 있는 [In Rainbows] 앨범을 만지작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때론 이런 확장이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는데, 예술이 주는 최고의 긍정적인 효과일 것이다. 전혀 낯설게 느껴졌던 영역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생소한 경험 같은 것 말이다. Jun Miyake 미야케 준의 앨범을 얘기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기억은 그렇게 내 안에서 만들어졌던 콜라보레이션이다.
Jun Miyake의 2007년 본 작이 주는 첫인상은 강렬했다. 전형적이지 않은 악기가 스텝을 밟으며 리듬을 치고 나서는데, 마치 앞으로 이어질 향연이 끝이 없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꽤 세련되다. 그럼에도 장르랄 것은 단연코 어디에도 속할 데가 없다. 일렉트로닉, 재즈, 보사노바, 소프트 팝, 월드 뮤직 등 어디에 걸쳐 놓아도 될 것이다. 하나로 결정되지 않고 해석의 여지가 있는 음악인 것이다. 여러 가지를 연상시키고,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어렵다는 느낌은 없다. 오히려 여러 보컬들의 피처링으로 듣기 자체는 포근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잔잔한 수면 밑을 내려다볼 때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섬세함과 작은 소리들의 조화를 함께 지켜볼 수 있다. 그 자신이 여러 악기를 다루고, 프로듀서, 엔지니어까지 전 영역을 통제할 수 있다 보니 음악의 아이디어가 넘쳐날 것이다. 그의 메인 장기인 프루겔 혼이나 트럼펫뿐만 아니라, 피아노, 샘플링, 퍼커션, 현악기와의 연결을 통해 만들어 내는 풍경은 그의 음악을 다채롭게 하는 일등 공신이다. 흐르는 음악에 맞춰 앨범 속지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영화, 광고, 댄스, 연극 등 다방면의 무대에 쓰였다는 것을 알았다. 일면 수긍이 간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면서도 장면을 그려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음악은 많은 감독들에게 차용되었겠다 싶다. 비슷한 의미에서 Rene Aubry 르네 오브리를 좋아하는 이라면 그의 작품들이 더 즐겁게 다가올 것 같다.
본 앨범의 여러 곡이 독일의 무용가 Pina Bausch 피나 바우쉬를 기리는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Pina 피나>에 삽입되었던 것을 확인하고는, 결국 영화까지 접하며 느낌을 확장해 나갔던 일이 있다. 나로서는 당시 시너지가 엄청나서 시야가 한 계단 올라선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간 현대 무용을 한 번도 제대로 관람한 적이 없었다. 연극이나 몇 편 향유한 정도랄까. 아마 많이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피나>는 무용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접해 보기에 꽤 좋았다. 비록 영화라 할지라도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현대 무용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낯설거나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게 잘 편집된 화면, 변화하는 몸짓, 다양한 주제, 오브제와의 조화, 색채와 구도가 함께 했기에 초심자에게는 이만한 경험이 없었다.
영화는 한 시간 사십여분 동안 끊이지 않게 음악이 흘러나온다. 더블앨범을 흡족하게 들었다는 느낌이 올 정도이다. 그 바탕 위에 무용가 피나가 만들었던 그 간의 작품들이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서른여덟 명의 무용수들에 의해 표현된다. 그녀 자신은 사랑, 고통, 아름다움, 슬픔, 외로움 등 인간을 향한 영원한 감정을 춤의 테마로 다루어 왔다고 한다. 때문에 장면과 춤사위는 끊임없이 주제에 따라 변화한다. 우리는 인간의 신체가 사물과 어우러질 때 제3의 감흥을 끌어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모래, 튀는 물, 진흙, 검은 방, 경적이 울리는 거리, 바람 부는 황야, 공공 버스 등 스크린 속의 풍경은 이를 충실히 반영한다. 그 속에서 마지막 페이드 아웃이 될 때까지 고개를 까딱이며, 인간의 신체가 빚어내는 언어에 황홀해 할 수 있었던 것은 행복한 경험이었다. 무용이라는 이질적인 언어를 이렇게 재미있게 접하게 된 일이라니.... 그리고 그 속에서 이들의 몸짓을 끌어내었던 Jun과 여타 음악들까지.
이후 현실로 돌아와 미야케 준의 음악을 다시 들었을 때의 그 독특함. 안 들렸던 소리가 더 들리고, 음악 너머를 상상하려고 하는 자신이 느껴졌다. 리듬을 통해 동작을 형상화해 보려고 하고, 브라스에 색채를 대입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전형적인 확장의 경험이다. 무용과 콜라보레이션된 그의 다른 앨범을 찾아보게 된 것은 이후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금번에 글을 쓰며 앨범들과 더불어 영화도 다시 한번 보았는데 역시 행복했고 끊임없는 즐거운 웃음으로 가득했다. 영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표현하는 'Seasons March dance'로 처음과 마지막을 수미쌍관 맺음 한다. 머금은 색채를 한껏 즐긴 연후 그의 앨범을 틀어 놓자니 또 다른 소리가 들린다.
작은 손짓 하나가 큰 이야기를 전하고, 조그마한 소리 하나가 뇌를 스치니 긍정적인 환희로 돌아올 뿐이다.
Jun Miyake [Stolen From Strangers] 2007년 <Alviverde>
https://youtu.be/tKW63uFpyvM?si=jZFaFrpqhn03h2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