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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Mar 10. 2024

행복한 무도회의 시간으로 돌아가다

Caretaker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

어릴 적에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명제를 끊임없이 극복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다가오는 미래에 나는 사회의 어느 틈바구니에 끼여 있을지, 무엇으로 일용할 양식을 장만할지, 사랑이란 게 올까, 내게 꿈이란 게 있기나 한 건지... 그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많은 불안감을 안고, 또 끊임없이 싸워나가며 살았다.

이제 나이가 들었을 때, 다가올 미래에 대해 동일하게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별로 고민이나 불안감이 없다. 앞이 안 보이는 것도, 예측할 수 없는 흐릿함은 매한가지인데 말이다. 일면 신기하지만 사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명쾌하게 끝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서서히 늙어가며 죽을 것이다.’

왠지 서글픈 문장 같은 이것이 나는 너무도 맘에 든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란 것을 정확히 인지하게 되니 그럼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로 집중을 하게 된다. 불안감이나 혼란은 자취를 감추고 내 안은 가벼운 흥분만 남아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분을 즐길 수 있는 내가 너무 좋다.

이런 생각이 전환되는 기점은 오십이 좋은 것 같다. 사십 대까지도 경주마처럼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시야를 가리고 있는 것을 떼어 내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조금 욕심을 부려 팔십까지 산다고 셈을 해 볼까? 남아 있는 시간은 30여 년이네.

이제 끝을 알고 있는 나는 재미있게 시간을 쓰다가 잘 죽을 것이다.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단지 기분 좋게 직시할 것이다. 그런 마음을 담아,



여기 공식 음원으로 올라와 있는 음악이 하나 있다.

음악 시간은 6시간30분31초. 스테이지가 총 6장으로 나뉘어 있다. 현재 시점의 조회수가 3천3백9십만 회이다. 영국 일렉트로닉 아티스트 James Leyland Kirby 제임스 레이랜드 커비가 The Caretaker 케어테이커란 이름의 프로젝트로 기획하여 준비한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The Caretaker라는 이름으로 미술 작가들이 기획전을 준비할 때처럼 본인이 집중하는 하나의 테마를 프로젝트로 잡아 몇 작품을 내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본 작을 2016년부터 19년까지 연작 형태로 선 보이게 된다.

그 테마는 Dementia 치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얘기를 빌려오자면 음악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리고 치매란 주제가 많은 이들에게 강한 감정을 동반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최대한의 존중을 담아 (Maximum respect) 다루어야 했다고 전한다. 여러 사전 조사와 전문가의 의견 청취를 통해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음은 예상할 만하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알츠하이머 병이 진행됨에 따라 변화되는 내면의 풍경을 음악으로 형상화하는 데 집중했다. 즉, 증상의 가장 초기 단계에서 시작하여 두 번째, 세 번째를 거치며 점점 기억을 잃게 되는 과정과 그 내면의 풍경들을 제목과 각 스테이지에 남겨 둔 설명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처음 스테이지 1은 초기 단계로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음악들이 샘플링으로 표현되어 있다. 저작권이 이미 만료가 된 1900년대 초기의 연회장 음악들을 가져와 의도적인 잡음과 색깔을 바래게 하여 화자가 자꾸만 자신의 벨 에포크 시절을 떠올리며 과거로 시선을 돌리는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스테이지 2는 이 음악들에다가 1단계보다는 좀 더 많은 노이즈와 가끔 허물어지는 기억들을 삽입시켜 스테이지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3단계에서는 명백하게 기억의 단절이 존재하고, 이를 화자가 직접적으로 느끼며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1, 2 스테이지에서 나왔던 음악들이 훨씬 더 흐름을 잃게 됨은 물론이다. 스테이지 3부터 촉발된 불안한 기운은 4, 5, 6을 지나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지게 되고 종국에 가서는 동굴 속에 있는 것 같은 공허한 울림만으로 남아있는 시간들이 채워지게 된다.


스테이지 1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A1 - It's just a burning memory 그저 불타는 기억일 뿐

A2 - We don't have many days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아

A3 - Late afternoon drifting 늦은 오후의 표류

A4 - Childishly fresh eyes 유치하게 상큼한 눈빛

A5 - Slightly bewildered 살짝 당황하게 되고

A6 - Things that are beautiful and transient 아름답고 일시적인 것들

B1 - All that follows is true 다가오는 것은 진실이다

B2 - An autumnal equinox 추분

B3 - Quiet internal rebellions 조용한 내부의 반란

B4 - The loves of my entire life 내 평생의 사랑

B5 - Into each others eyes 서로의 눈빛에

B6 - My heart will stop in joy 나의 심장은 기쁨으로 멈추리


제목이 처음 치매를 겪는 화자의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The lovers of my entire life란 제목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과거로 찾아가는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연인의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이라니 말이다. 이런 시 적인 제목들은 스테이지 4 정도까지 진전하게 되면 딱딱한 의학용어로 바뀌게 되어 기억의 상실 과정도 깊이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G1 - Advanced plaque entanglements 진전된 플라그 얽힘

H1 - Advanced plaque entanglements 진전된 플라그 얽힘

I1 - Synapse retrogenesis 시냅스 재형성

J1 - Sudden time regression into isolation 고립 속으로 갑작스런 퇴행


음악 시간이 긴 것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재미를 준 것일까? 틱톡에서 퍼져 나간 '한 자리에서 전곡 감상하기 챌린지' 가 촉발한 어마무시한 조회수를 보면 헛웃음이 나기도 하다. 그래도 작가는 이렇게라도 사람들이 치매라는 것에 대해 한 번씩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면 이는 긍정할 만한 현상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런 음악은 사실 어려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명백한 표제음악에다가 설명서에 정확하게 음악이 표현하려고 하는 바를 고지해 놓았기 때문이다. 청자들은 그 처방이 의도한 바를 읽고 그에 맞게 상상해 보면 될 것이다. 그냥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상황을 유추해 보면 되는 것이다. 나무위키에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 프로젝트에 대해 스테이지 별 작가의 설명서와 곡 제목까지 번역으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동어반복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본 음악을 들어보시라는 의도로 여기에 글을 썼을 리는 없다. 그리고 단순히 틱톡의 이상한 흥미 거리로 작성하지도 않았다. 단지 개인적으로는 여섯 번 정도 음미해 보았다. 글을 쓰는 시간이나 도서관에 앉아 다른 것을 하면서 말이다. 중간중간 제목을 트래킹 하여 의도한 상황을 유추하기도 했다. 전자음악에 관심이 있는 부분이 많이 이끌었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나로서는 또 다른 마음도 존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첫째는 앞으로 내가 치매라는 낯섦을 겪지 않고 살 수 있단 장담을 할 수 없기 때문이며, 둘째는 같은 시선을 부모님에게 투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나이가 들어가는 분들과 젊은 이들이 본 음악을 받아들이는 큰 차이점이 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감상평을 남기자면 개인적으로는 호감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음악을 담담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치매라는 단어가 흔히 가지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치매의 과정에 마냥 혼란이나 슬픔을 넣지도, 상실만을 넣지도 않았다. 단지 그 변해가는 형태를 직시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었다고 생각했고, 나는 이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아마 어떤 담담함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본 프로젝트의 홈페이지에도 작가는 아래의 말을 인용해 놓았으니 그의 의도도 아마 내가 생각하는 바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The advantage of a bad memory is that one enjoys several times the same good things for the first time.”  “나쁜 기억력의 장점은 처음의 좋았던 일을 여러 번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최근에 스프링버드 작가님의 글이 너무 좋아 천천히 탐독하고 있는 중이다. 작가님의 매거진 [그림책 매혹]을 우선 읽어나가고 있는데, 그림책 소개 중 과거로 걸어가는 시간을 나누던 차에 치매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그리고 작가님께서 겪고 계시는 경험을 담담한 마음으로 적어 내려가고 있어 적이 놀라기도 했다. 난 아직까지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는 분을 만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울림과 깨달음이 있었고, 언젠가 이 음악을 소개하면서 꼭 소개하고 싶은 글이 되었다.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듯 권해 본다. https://brunch.co.kr/@mypoplar/7


6시간 음악 중 한 꼭지를 소개하며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스테이지 3의 짧은 1분여의 곡으로 도서관에서 무심히 음악을 흘리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 이제 정말 상태가 많이 달라졌구나 라는 깨달음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같은 기억이 반복되다가도 갑작스레 암전처럼 끊어지는 시간의 편린들. 허공으로 빠져드는 멍함. 거부할 수 없이 마주하는 얽힘.


그 마주함을 기점으로 나는 직시의 시간들로 점점 빠져들어 갔다.



The Caretaker –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 Stage 3

01시간31분38초 구간 – E3 – Hidden sea buried deep 깊이 묻힌 숨겨진 바다

https://youtu.be/wJWksPWDKOc?si=CguHfaRXeKrGnQ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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