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4월 16일, 첫 농사짓기, 정말 힘들다.
앞마당에 흙을 한 트럭 부어서 밭을 만들었다.
작은 텃밭보다는 큰 30평이다.
막막한 밭농사에 첫 걸음을 내디디었다.
2022년 9월, 건축업자에게 마당을 사용하여 건축하도록 허락해 준 대가로 트럭 한 대 분의 흙을 가져왔다. 밭농사를 할 심산이었다. 지난해 내내 '농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밭이 무엇을 어떻게 심으며, 밭을 어떻게 만드는지' 고민을 계속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유튜브를 찾아보지만, 막상 밭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지식도 쌓이지 않았다. 너무 일찍 작물을 심으면 안 되고, 4월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희미하게 기억한다.
망설이지 말고, 우선 저질러 보자. 농사짓는 이웃을 보니까 우선 퇴비를 주네. 나도 퇴비를 구해서 줘보자. 시작이 반이다. 그 이후는 길이 보일 거야.
2023년 봄이 되었다. 마음이 급했다. 30평 정도 펼쳐놓은 흙만 바라보았다. 이웃에서는 벌써 퇴비를 주고 밭을 갈아엎는 작업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다고 바쁜 이웃에게 '어떻게 밭을 만드느냐?' '트랙터로 밭 좀 갈아달라'고 부탁하기가 힘들었다. '언제 트랙터로 밭 좀 갈아주세요.' 말은 꺼내놓았지만, 기다랄 수가 없어서, 동네에 잘 아는 인자한 어른에게 퇴비 6포대를 얻어서 일단 밭에 뿌렸다.
퇴비는 동네사람들이 쌓아두고 뿌리는 '논두렁밭두렁'이라는 시커먼 퇴비였다. 6포를 뿌리니 밭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농사짓는 지인에게 물어서 농협에 가서 퇴비 겸 종합비료를 한 포대 샀다. 그것은 1포로 30평에서 50평을 뿌리면 충분하다고 되어 있다. 확신은 없었지만, 첫 농사이니 그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1포로 밭 전체를 골고루 뿌렸다. 마을 사람들이 뿌리는 검은 퇴비로 했다면 12포대는 들어갔을 것을 1포대로 대체할 수 있었다. 내심 마을 사람들이 하는 방법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일단 간단하게 경험해 보는 게 우선이었다.
흙은 부드러웠다. 삽으로 일일히 흙을 뒤짚으니 쓰지 않던 근육이 반란을 일으킨다.
일주일간 절절맸다. 몸살을 달래려고 저녁마다 뜨거운 탕에 들어가 몸을 달래주었다.
물끄러미 밭을 바라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전에는 퇴비가 없는 맨 흙을 바라보았다면, 이번에는 퇴비를 뿌려놓은 흙을 바라본다. 어떻게 밭을 갈지? 트랙터로 밭을 갈아달라면, 크지도 않은 밭에 트랙터를 운운한다고 농사꾼이 웃을 일이다. 선배님 부부에게 식사대접을 했는데, 그 선배님이 '밭을 갈아볼까? 밥값은 해야지.'라고 하며 삽과 쇠스랑과 밭고무래를 사용하여 밭을 일구었다.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막판에 가서는 삽을 흙에 꽂고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땅따먹기' 놀이하듯이, 밭을 경운하기 시작했다. 고되고 힘든 작업이었다. 몸살이 났다. 타이레놀을 먹고 싶었지만, 약을 먹으면 아내가 걱정할까 봐 일주일을 꾹 참았다.
흙을 갈아엎은 다음의 작업은 이랑을 만드는 일이다. 이랑은 두둑과 고랑을 합친 말이다. 두둑은 높은 봉우리이고, 고랑은 물이 빠지는 낮은 곳이며 사람이 드나드는 길이다. 이랑을 만들어서 검은 비닐을 씌우면 보온도 되고, 무엇보다 잡초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비닐을 두둑에 씌우는 작업을 '멀칭(mulching, 피복, 껍데기를 씌운다)'이라고 한다. 하루에 한 고랑을 멀칭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첫째 날 한 고랑, 다음 날 두 고랑, 이렇게 내 형편대로 했다.
이랑은 총 12개인데, 멀칭을 한 이랑은 4개다. 사실 이랑을 4개 만들어 놓고는 너무 심하게 몸살이 나서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작은 텃밭을 가꾸면 충분하다는 말이 맞다. 자칫, 욕심내다가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장인 어르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 토요일 점심에 오셔서 식사를 하고, 밭을 고르고 이랑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내 힘으로 불가항력일 때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다. 평생 부지런하게 살아오시고, 가족에게 음식을 늘 공급하시는 장인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둘이 함께 일하니 힘든 줄 몰랐다. 행복했다. 뿌린 6종의 씨앗: 감자, 옥수수, 시금치, 쑥갓, 대파, 들깨.
종묘란, 씨앗을 발아한 새싹을 말한다. 종묘는 5월은 돼서 심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한다. 적어도 우리나라 북쪽인 파주에서는 그렇다. 씨앗을 뿌려서 심는다고 다 나는 것은 아니다. 씨앗을 뿌리고 비닐을 덮어 보온을 해야 발아가 잘 된다고 한다.
어제 토요일(23년 4월 15일), 장인어른은 밭을 고른 후에 깻잎을 먹을 수 있는 들깨, 찰옥수수를 씨앗으로 심었다. 집에서 썩어가는 감자가 싹이 나서 싹이 난 단면을 잘라서 멀칭을 한 두둑에 한 줄 심었다. 들깨 2 이랑, 감자 1이랑, 찰옥수수는 밭의 가장자리에 심었다.
오늘(4월 16일) 대파, 쑥갓, 시금치를 씨앗으로 뿌렸다. 발아가 잘 되도록 흰 비닐을 덮어주었다. 벽돌로 덮어둔 비닐이 날아가지 않도록 올려두었다.
밭농사하는 바람이 있다면, 찾아오는 사람에게 채소를 제공하고, 심고 심는 작물을 심고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여기에 무엇을 심을까? 지인에게 주말농장으로 분배할까? 지인을 불러서 심고 싶은 것을 심고 삽결살도 구워 먹어야겠다.
처음으로 밭농사를 지어보는데 실제로 해보면서 조금씩 배워간다. 정말 힘들다. 농사짓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농사를 지으니 자연의 순리에 민감하게 된다. 추상적인 사유에 머물러 있는 내가 구체적으로 삶을 사는 것 같다. 농사를 지으니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농산물이란 생명을 접한다는 설레임이 있다.
밭농사를 시작할 즈음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설파한 장자크 루소를 공부하였다. 다음에는 장자크 루소에 대하여 생각한 바를 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