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르 Ohr Jun 29. 2024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인간이 인식의 주체이다

칸트(1724-1804)


2년 6개월 공백 끝에 장자크 루소를 정리하고 칸트를 시작합니다. 루소는 스위스 제네바 사람으로 일찍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불행하게 자라다가 프랑스에서 주변인으로 살면서, 인간의 문명과 사치와 사유재산제에 대한 폐해를 비판하며 인간이 완전했다고 보는 자연상태를 주장했습니다. 루소가 주변인의 관점에서 당시 사회를 바라보고,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퇴보시켰다'는 주장은 매우 놀라웠습니다.


"내용없는 개념는 공허하고, 개념없는 내용은 맹목적이다"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한 칸트의 사상. 내용=직관, 경험, 개념=사고, 이성을 말한다. 


이제 칸트(1724-1804)를 만나보려고 합니다. 칸트는 데이비드 흄을 읽고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고 고백합니다. 인식론적으로 인간의 이성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인정한 것이죠. <순수이성 비판>은 인식론에 대하여 흄으로부터 도전을 받고서 이성이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구분하여 쓴 글이죠. 칸트는 데카르트(대륙)의 합리론과 데이비드 흄(영국)의 경험론을 종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유명한 말, "내용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는 말은 이처럼, 경험과 이성의 필요성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이성의 역할을 절대시하는 합리론에 대하여는 이성의 역할의 한계를 말하고, 경험의 역할을 절대시하여 이성을 무시하는 경험론에 대하여는 이성의 필요성을 말해줍니다. 그렇게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했다는 거죠.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오늘 다룰 칸트 사상의 주제 한 가지는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입니다. 칸트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데카르트, 헤겔과 더불어 서양철학사의 5대 천황으로 손꼽힙니다. 그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켰다는 말만 봐도 철학사에서 그의 영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칸트는 '대상(object)'란 용어 대신에 '사물(thing, Ding an sich)'란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합니다. 대상은 우리가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 즉 감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현상을 말합니다. 사물, 또는 사물 자체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실재, 우리의 인식 구조가 변형시키지 않은 순수한 실재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대상을 볼 때, 사람이 보는 것과 개나 개미가 보는 사과가 동일한 이미지일까요? 아닙니다. 다릅니다. 즉, 사과라는 사물 자체는 알 수가 없고, 인식하는 주체(사람, 개, 개미)마다 다른 현상으로 본다는 것이죠. 여기서 이전의 인식론과는 다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난 겁니다.


모사설과 구성설

모사설(Copy theory, Representational theory)이란 칸트 이전의 객관주의로 대상을 더 중요시하며, 대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사물을 인식하는 인간을 수동적으로 봅니다.


구성설(Constructive theory)는 대상보다는 인간의 인식능력을 더 중요시합니다. 사물 자체는 알 수 없고, 인간이 대상을 구성하는 능동적인 주체라는 칸트의 새로운 주장입니다.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 아니며, 주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사물을 본다는 주장입니다. 마치 밀가루 반죽이 있는데 붕어빵 기계에 들어가면 밀가루가 붕어빵 모양으로 찍혀서 나오듯, 사물 자체(밀가루 반죽)은 알 수 없고,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의 오성과 이성의 작용이라는 '인식 과정'을 통해서 나온 붕어빵(표상, 현상)을 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칸트 이전에는 대상에 대하여 우리는 사진 찍는 기능을 할 뿐인데, 칸트는 우리의 인식 과정이 대상을 '만들어낸다, 구성한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이는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칸트 사상의 의의

1.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의 전환

2. 데카르트의 합리론과 데이비드 흄의 경험론을 종합하기

: 합리론의 이성과 경험론의 경험의 역할과 그 한계를 정리함.

3. 인식보다 인식 '과정'에 주목하면서 모사설이 아닌 구성설을 주장하다. 



오성과 이성을 구분하는 기준, 경험


철학을 구분하면서 혼동하는 것이 오성과 이성의 용어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경험의 유무임을 밝히면 칸트 철학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오성(Understanding)과 이성(Reason)을 구분하는 기준은 경험인데, 경험과 연관되는 것이 오성이고, 경험과 무관한 것이 이성입니다. 지성(Intellect)는 오성을 가리킵니다. 정리하면, 지성, 오성, 이성이 있는데, 지성은 오성과 같은 의미이며 경험과 관련이 있지만, 이성은 경험과 무관하게 추론하고 종합하는 기능을 하는 역할을 합니다.



오성은 감각으로 경험한 것을 분석하고, 이성은 종합하고 판단합니다.


오성(지성)은 감각 경험을 통해 얻은 자료를 개념으로 조직하고 분류하는 능력입니다. 칸트는 오성이 감각적 자료를 12개의 범주에 따라 분석하고 종합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범주들은 양, 질, 관계, 양태의 네 가지 주요 그룹으로 나뉩니다. 


이성은 경험을 넘어서서 사고하고, 종합하며,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이는 경험적 자료를 넘어선 추상적인 개념과 원리들을 탐구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성은 주로 형이상학적 질문과 관련이 있으며, 궁극적인 원리나 목적을 추구합니다.


지성=오성


초월론적 존재론, 인간의 위치에 대하여


칸트 이전에 인간은 자연의 일부에 속했습니다. 하지만 칸트의 사상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에 속하면서도 자연을 초월하는 존재입니다. 즉 신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상을 구성하는 인식 능력을 가진 주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순수이성으로는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성은 수학과 기하학과 물리학의 학문적인 기초를 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 세계, 신 자체에 대하여 아는 데는 이성은 한계가 있음을 <순수이성 비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순수이성(Pure Reason)이란? 

"인간은 세상에 대한 감각 경험에 어떤 형식을 이성을 통해 부여하고 다시 그 이성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칸트의 인식론을 장밋빛 안경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1. 인식의 필터 : 칸트에 따르면, 우리의 인식은 장밋빛 안경을 쓴 것과 같습니다. 즉,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 체계에 의해 색칠되고 변형된 형태로 보게 됩니다. 이 안경은 인간의 마음이나 인식의 틀을 상징합니다.

2. 주관적 경험 :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에 의해 구성되며, 이는 우리가 모든 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경험하게 만듭니다. 시간, 공간, 인과관계 등은 우리의 마음이 세상을 구조화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우리의 인식 틀에 의해 형성됩니다.

3. 현상과 물자체 : 칸트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물자체'(noumenon)와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phenomenon)을 구분했습니다. 우리의 인식은 오직 현상을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할 수 있으며, 물자체는 우리 인식의 틀을 넘어 존재하는 것입니다.

4. 인식의 한계: 칸트는 우리가 물자체를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식 틀을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 틀은 본질적으로 제한적입니다. 이는 우리가 절대적인 진리를 알 수 없고, 오직 우리 인식의 틀 안에서만 진리를 추구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비유는 칸트의 인식론적 입장을 명확히 하며, 인간 인식의 한계를 이해하고 우리의 경험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깨닫게 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