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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ru May 31. 2024

6학년의 꿈 #2

#인간발제 5. _물항아리를 채우는 일.

애들의 잠재력은 무한해서
부모가 웬만큼 노력해도 죽지 않아요
큰일 안 생겨요.
부모가 뭘 잘못해서  아이가 잘못될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반대로 부모가 엄청 노력을 해도 아이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확률도 낮습니다.

<조선미 선생의 말>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니잖아요.  또 다른 인격체가 맞잖아요.
부모가 삼각형을 기대해요.
그런데 자식은 동그라미가 될래 그런단 말이죠.
그러면 부모는요,
삼각형을 강요하지 말고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동그라미가 될 수 있게 뒤에서 굴려주기만 하면 된다고요.

<손웅정의 말>



나의 욕심으로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  가끔씩 들여다보며 곱씹는 말들이다.


큰 딸아이가 이번에는 "글 쓰는 사람"이 꿈이라고 한다.


"그럼 배우는?"

".... 그것도 있고...  왜? 안돼?"

"아니. 돼~ 해봐!!"


학교 공지에 뜬 '00 도서관 어린이 작가 대회' 알림을 확인하고는 신청해 달라고 한다.


" 근데 엄마, 대회에 나가자마자  일등 하고, 막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면 어떻게?? 곤란한데... 어떡하지???"

"..............."

"근데 승은아,  너 원고지 쓰는 법 알아??"

"............... 아마도.....?? 학교에서 배웠던 듯.  괜찮아~  나 알아!!  "


제시해 준 글제 중에 하나를 골라 200자 원고지 10매 이내. 2시간 동안 작성해서 제출하는 것이 대회의 규정이었다.


넌, 참 맑구나. 좋겠다.


대회 당일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해당 도서관으로 갔다.

아이는 한껏 신이 나있다.

버스 전용 와이파이가 잡히는 것도 , 시내 창 밖 구경하는 것도, 벨을 누르는 것도 마냥 설레고 신나는 일인 듯하다.

그중에 최고는 이 시간 엄마를 독착지 하고 있다는 만족감일 것이다. 

뾰족뾰족 고슴도치 가시가 이렇듯 보드라우니 알겠다.


도서관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단정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잘 배어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구내식당이 있었다.


대학졸업쯤 친구들이 공무원시험 준비하느라 동네 구립 도서관에서 두문불출한 적이 있었다. 그녀들이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었던 큰 힘은 다름 아닌 구내식당 이모표 라면이었다.

친구들의 성화에 나도  몇 번 갔었었다.

이곳도 예전의 그곳처럼 지하식당 특유의 습습한 냄새와 계산 서툰 이모님의 유쾌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이었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돈까스와 오징어덮밥이  무려 5500원!!!이라는 메뉴표를 보고 흥분하며 인스타용 사진과 동영상을 끊임없이 찍어댄다.

나도 지금은 공무원이 된 한 명과 생선가게 주인인 한 명 또 임영웅 광팬이 된 한 명에게 이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식사와 후식까지 야무지게 해치우고는 접수부스로 가는데, 참가 인원이 대단하다.

이제야 대회가 실감 나는 아이가 자기 이름에 사인을 하며 속삭인다.

"아.........    괜히 했나?.......... 쓰읍... 쯧.."

"대충 후다닥 하고 나와. 가는 길에 수제 디저트가게 가자. 오다가 봐 뒀어."

"응. 근데 엄마, 꼭 두 시간 다 채워야 되나? 난 한 30분이면 거뜬할 거 같은데~??"


무식함에서만 나올 수 있는 허세다.


"한 시간 반 뒤에는 나와도 된데. 다른 사람 방해 안 되게 조용히 나와~"


.


.

아이는 두 시간을 꽉 채우고 마지막 무리와 함께 나왔다.

자기가 엄청난 이야기를 쓰고 나왔다며 주저리주저리 이야기 한다.

"어때? 나 쫌 쩔지??? 근데 주인공 이름이 잘 안 떠올라서 엄마랑 외삼촌 이름 했어 괜찮지?"

"응. 괜찮아. 이제  단거 먹으러 가자."




아이에게 오늘은 어떤 날로 기억될까?

우리 집 다둥이 중  큰아이는 특히나 늘 사랑이 모자라다고 투정 부린다.

엄마인 나에게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물항아리 같아서 사실 마음이 쓰일 때가 많은 아이다.

오늘 나는 물 한 바가지를 물 항아리에 또 부었다.


채우고 채워 언젠간 흘러넘치면 그것이 내리사랑이 될 수 도 인류애적 사랑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우리 아이처럼 채우는 족족 흡수해서 자신만의 에너지로 발산하는 이도 있다.

열정이 많은 우리 딸, 

세상만사 오지랖쟁이인 내 딸,

그 호기심을,

가볍디 가벼운 그 엉덩이를

엄마가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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