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발제. 12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_ 글:이호백 /그림:이억배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조로움 때문이다.
그 단조로워 보이는 겉 겹을 벗겨 속을 들여다보면 휘황찬란한 작가의 상상력과 만나게 되는데,
거기에 나만의 정서를 곁들이면,
찌릿한 아드레날린을 느낌과 동시에
한숨의 평온을 찾을 수 있다.
많은 시간을 공들이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완벽한 휴식이다.
특히나 따뜻한 가족애(愛)에 관한 소재는 늘 옳다.
그런 면에서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은 완벽한 정서적 휴식을 선사한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수평아리는 동네에서 제일 힘센 수탉으로 성장하면서 일생에서의 전성시대를 만끽한다.
하지만 힘의 순환법칙에 따라 제일 힘이 센 수탉의 타이틀을 내려놓게 되자, 동네에서 제일 술을 잘 마시는 수탉으로 진로 변경하며 과거의 위상을 술주정으로 채운다.
더 세월이 흐른 후에는 그마저도 힘에 부치게 되어 갱년기의 시련을 겪으며 상실감에 빠지는데, 그러다 평생을 함께해 온 암탉의 지혜로 세상에서 제일 화목한 수탉 가족으로서의 자긍심을 되찾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나의 아버지, 시아버지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세상에서 제일 듬직한 장남이었던 아버지,
세상에서 제일 똑똑했던 시아버지.
그런 위-대한 수탉들이 과거의 명예로운 타이틀을 뒤로하고 인생 제2막으로 접어들었다.
한 수탉은 본인이 모은 재산, 유유히 모두 탕진해 버리려는 듯 국가 경제 순환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고,
한 수탉은 세상의 맛있는 소주와 안주는 다 맛보고야 말겠다는 집념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 수탉들의 요상한 고집에 가려진 그들의 삶에 대한 상실감을 흐릿하게나마 알 것 같다.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유복하게 장성한 자식들과 손자녀들이 이 이야기처럼 풍성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이러한 자손의 번성이 자신들의 유일한 뒷배가 되고 있을 것이다.
만약, 두 수탉들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분명, 지금의 자신들 또한 주인공보다 뒤처지지 않음에 매우 의기양양해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은 사실 그림으로 더 유명하다.
한 장의 그림에서 부드러움과 단단한 느낌을 동시에 담는다는 것은 언뜻 상치되는 듯하다. 하지만 간혹 어떤 그림에서는 이 두 감흥이 교묘하게 하나로 엮어지는데,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의 그림이 그중 하나이다. -이하생략- <류재수 그림책작가>
그림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잘 모를 말이긴 하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은 훗날 소중한 우리 전통문화 서적으로서의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그 첫 번째 이유에는 색상에 있다.
전통 오방색을 주로 쓴 화려함과 단아함의 공존은 분명 우리만의 것이다.
두 번째는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고증하고 있다.
이미 거의 사라져 버리다 싶이한
마을 탁배기 술판 한마당,
대가족의 환갑잔치,
등의 시끌벅적함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이가 아니라면,
그것의 ‘신명남’이 얼마만큼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세 번째는 닭들의 표현력에 있다.
한 마리 한 마리 저마다의 눈과 표정을 살펴보면,
굳이 활자를 읽지 않더라도 그들의 상황과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마치 자동 음성 지원이 되는 것 마냥 섬세하고 구체적인 감정표현들이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은 근래의 그림책에서는 쉽사리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인생의 잔잔하고도 깊이 있는 이야기에, 우리의 색채와 감정표현이 더해져
짧은 이 이야기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채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