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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ru Apr 27. 2024

[거지소녀]

#책 발제 3.

거지소녀 _앨리스 먼로 作

         

중학교에 다니던 언제쯤이었을까. 꿈속에서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곤히 잠자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고, 새벽녘 푸르스름한 별빛이 스며드는 텅 빈 거실을 가만히 둘러보다 지금의 내가 영혼의 나임을 인지하며 그렇게 가만히, 아무런 심적 동요도 없이 그냥 그대로 바라보다 잠에서 깨었다.


[장엄한 매질], [특권], [자몽반 개], [야생백조]에서 로즈의 시선이 그와 같았다.

로즈는 감정의 개입 없이 마치 사건진술서를 진술하는듯한 침착함으로 소설 속 인물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 거리감 있는 서술방식에 작품들이 더욱더 사실적이고 냉소적이고 잔인하고 폭력적이게 다가왔다. 책 뒷 표지에 쓰인 “삶을 직시하는 초연한 시선”이라는 문구. 인정한다. 다만 삶을 직시하며 초연한 시선으로 쓰인 글이 나에겐 참으로 매섭게 다가왔다. 그 초연함이 소설 속 인물에 대한 무자비함으로 매정함으로 다가와 읽는 내내 애정결핍인 어린아이처럼 작가의 애정을 기다리게 해서 정서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한편으로, ‘장엄한 매질’이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바탕인 것에 추측해 보면, 작가의 혹독한 과거의 상처와 고통에 객관적인 3자의 시각을 가지는 것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었던 것 같아 애틋하다. 과거의 고통을 담담하게 표현하게 될 때, 비로소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알기에 그렇다.

그러한 작가에 대한 안쓰러움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는 동안 느꼈던 나의 정서적인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겹겹의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의 기억은 으레 흐려진다. 수 만 개의 흐려진 기억 중 단 한 줄의 씨실을 끄집어내어 어제의 경험처럼 생생한 현실로 드러내어준 작품이 [장엄한 매질]이었다. 내가 십 대에 로즈와 같은 장엄한 매질을 당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 엄마가 친엄마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결론지으면 맘이 편하다.) 그때의 나는 특히 가족이 하찮게 여겨졌다. “하찮게”라는 표현이 매우 정확하다. 아버지의 남아선호적 언행에 나는 무대응로 응했고, 번번이 짜증 섞인 소음을 내뱉는 엄마에게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대응했다. 세상은 나와 완전히 단절된 또 하나의 홀로그램처럼 느껴졌고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는 존재로써의 나는 허공에서 그저 엄한 지우개똥만 생산하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그 시절 내가 느낀 그 단절된 감정의 흐름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작품 [특권]은 우중충하다. 중세 유럽의 질척한 검은색 진흙 바닥처럼 불쾌하고 더러웠다. 마치 잔인한 사고 현장을 차마 마주 보지 못하고 신음하며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고통이다. 철저히 책임을 외면하는 담임선생도 쓰레기, 약자인 프래니에게 폭력과 성폭행을 반복하며 죄의식 없는 이들도 쓰레기, 일말의 공동체적 의식에서 벗어나 자신은 중립인 양 무덤덤히 상황을 표현하는 로즈도 쓰레기. 한여름 푹 썩은 음식물 쓰레기통에 갇힌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한 작품이었다.

  

[자몽반 개]에서는 로즈의 인격과 성향을 표현하는 완벽한 문장을 찾았다.

p.81 로즈는 자신이 우월한 역할, 관찰자의 역할을 하지 않는 이야기는 결코 플로에게 하지 않았다. 곤경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작품[거지소녀] 이후부터는 로즈의 성인 이후의 연애사에 대한 이야기로 어어진다.

   패트릭 블랙치퍼드는 로즈를 사랑했다.”

[거지소녀] 서두의 첫 문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면, 패트릭 블랙치퍼드는 로즈와의 육체적인 욕망 해소 행위 그 자체를 사랑했고, 자신이 만든(혹은 원하는) 관념 속의 로즈와 결혼을 원했다. 패트릭은 로즈를 사랑했으나 로즈를 사랑한 건 아니다. 로즈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내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의미를 패트릭은 끝까지 사랑이라 믿었고 로즈가 배신하기 직전까지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던 불쌍한 인물이었다. 교활한 로즈만이 시작부터 패트릭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 아님을 알았음에도 처음부터 패트릭에게 확실한 배신을 하기까지 위악을 떨었다. 나쁜 X.       


p146. 로즈는 그 그림을 보았다(그림_거지소녀) 도서관에 있는 미술서적을 찾아본 것이다. 그녀는 유순하고 육감적인 거지 소녀와 그 소녀의 수줍은 흰 발을 자세히 보았다. 소녀의 소심한 굴복, 그 무력함과 황송함.    패트릭은 로즈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걸까? 그녀가 그게 될 수도 있을까? 그녀에게는 그런 왕이 필요할 것이다.

    

패트릭과 로즈는 자신들이 그림 속의 거지소녀와 왕이라도 되고 싶은 것처럼, 상대방과 스스로에게 억지스러운 관념의 틀을 만들어 결혼을 했다가, 세월의 익숙함에 각자의 본질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는 때에 견디지 못하고 비로소 이혼한다.     


로즈의 일생은 누군가에게 휘둘림 당하며 그것들을 마치 자신의 위대한 선택인 듯 착각 속에 빠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네버엔딩급으로 반복되는 그녀의 불륜 연애사가 지긋지긋하면서도 불완전하고 어리숙한 로즈의 캐릭터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수없이 고통스러웠고, 당황했고, 답답했고, 짜증스러워도 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야 로즈에게 지독한 애정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교활하고 자기 방어적인 생각과 언행, 모든 부족함과, 어리석음과, 사랑스러움이 누구나의 삶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것들과 교차되는 지점들이 수없이 많았던 까닭일 것이다. 완전한 별개의 인물임에도 로즈의 삶을 통해서 내 자아의 성장 과정을 통찰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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