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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ru Apr 29. 2024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외.

#책 발제 4. 나태주 작품 중.


그래도

나는 네가 웃을 때가 좋다
나는 네가 말을 할 때가 좋다
나는 네가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좋다
뾰로통한 네 얼굴, 무덤덤한 표정
때로는 매정한 말씨
그래도 좋다


7년 전 열심히 필사한 시이다.

한 손엔 16개월 딸아이가, 등에는 갓 2개월 된 아들이 업혀있던 때였다.

타국에서 친인척 한 명 없이 오롯이 남편과 외롭게 전전긍긍하던 때,  

그래도 최고의 육아달인이  되리라 미친 듯이 아이들에게 열과 성을 다하던 때,

나란 존재는 무의미 한 채, 연년생 두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만 독차지하고 있을 때,

이 한 편의 시로 한없이 무너지곤 했다.

무너지는 그 시간조차 어리석은 시간이라 자책하던 그때였다.


지금의 나에게 이 시는 추억이 되었다.

그때의 절실한 위안은 아니지만 또 다른 감성으로 용기로 나에게 기억될 것이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
너도 그렇다


그의 시는 명료하다.

그래서 투명하다.

여느 시처럼 두 번, 세 번 고민하지 않아도

척!.. 하니, 퉁!.. 하며

가슴속 울림으로 메아리친다.





행복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설거지를 하다 문득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낀다. 콸콸 시원한 물줄기, 유난히 맑은

달그락 거림, 등 뒤로 아수라장이 된 세 아이의 재잘거림...

그의 깨우침이 나에게도 왔다.





강물과 나는

맑은 날 강가에 나아가 바가지로 강물에 비친 하늘 한 자락을 떠 올렸다
물고기 몇 마리 흰구름 한 송이 새소리도 몇 움큼 건져 올렸다
한참 동안 그것들을 가지고 돌아오다가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믿음이 서지 않았다
이것들을 기르다가 공연스레 죽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걸음을 돌려 다시 나는 강가로 나아가 그것들을 강물에 풀어 넣었다
물고기와 흰구름과 새소리 모두 강물에게 돌려주었다
그날부터 강물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물고기와 흰구름과 새소리하고도 친구가 되었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시를 품고 살아간다.

그런 마음을 알아보고 이렇듯 정갈하니 잘

끄집어내어 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시를 읽다 문득 남편에게 카톡으로 고백을 하고 말았다.   뜬금없지만 세상 진심이었다.

당신은 내가 평생 꿈꿔왔던 이상형이었노라고.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 이상형과 결혼한 아주 운 좋은 여인이란 걸.


오늘  마음속 버려졌던 보석 하나를 주웠다.





8살 난 딸아이가 나태주 님의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빌려가더니 조금 뒤 자기 종합장에

끄적인다.

뭐 하냐 물었더니 “그냥…” 이란다.

이 글귀들을 마음에 담고 싶었나 보구나 되물으니 씨-익 끄덕이고는 다시 삐뚤빼뚤 적어 내려간다.

이렇게 '그냥' 읽으면 그만인 것 을,

'그냥'  마음에 담으면 그게 전부인 것 을,

 학창 시절 우리는 무엇을 배웠던 걸까?

김춘수 님의 “꽃”에다 형형색으로 무슨 난도질을 그리 해댔던 걸까?

불혹에 접어든 지금에서야 시를 시답게 담을 수 있음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





2020.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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