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을 맞다 단맛이 오른 이 계절의 맛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고 처음으로 썼던 글의 주제가 배추였다. 늘 김장철에 김치를 담그거나 쌈으로 싸 먹던 알배기배추의 매력을 새로이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사계절이 한 바퀴를 돌았고, 다시 한번 배추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열흘 정도 이르게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차가운 바람 덕분에 단맛이 제대로 오른 배추의 맛은 아삭아삭한 식감과 함께 겨울이 왔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배추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보자면 김장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엄마가 김치를 담그고 있으면 짭조름하게 절여진 배추속대를 뜯어먹기도 하고, 한 포기 정도 빼두었다가 삼겹살을 누린내 없이 삶아 낸 보쌈과 김치 속을 함께 싸 먹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 아빠 옆에서 한 두 모금 홀짝홀짝 뺏어 먹으려 노력했던 막걸리의 맛도 함께 떠오르고 말이다. 맛이 제대로 오른 배추를 보고 있자니 유독 손맛이 좋던 엄마의 밥상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알배기배추와 배추가 다른 품종인 줄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김치를 담그는 배추의 겉잎을 뜯어내고 속 부분만 유통하는 것이 알배기배추다. 보통 배추라고 하면 속이 꽉 찬 노란 부분이 달달하고 고소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겉잎을 떼어 낸 알배기배추는 훨씬 더 맛있는 요리로 재탄생한다.
| 알배기배추가 더욱 고소해지는 맛 배추전
어릴 때부터 항상 먹어오던 배추전이었기 때문에 누구나 다 먹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요리를 공부하고 다른 지역에서 생활을 하면서 보니 배추전은 경상도에서 먹는 향토음식이었다. 배추 한 장을 통째로 즐길 수 있는 배추전은 알배기배추를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엄마는 배추전을 부칠 때 꼭 배추를 절여서 부쳐주셨다. 절이지 않은 배추로 만든 배추전은 줄기 부분이 뻣뻣해서 모양을 잡기도 힘들고, 수분이 많이 나오면서 배추전의 모양이 흐트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의 방법대로 소금에 살짝 절인 후 전을 부치면 소금의 짠맛 때문에 배추 본연의 단맛도 더욱 강하게 느껴지고 그렇게 전을 부쳐내면 고소한 맛도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배추는 굵은소금을 뿌려 살짝 적인 후 물에 헹궈서 짠기를 뺐다. 부침가루에 송송 썬 쪽파와 달걀을 넣고 국간장을 살짝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절인 배추에 마른 가루를 묻힌 후, 반죽을 입혀 노릇노릇하게 지져내면 배추전이 완성된다. 배추의 단맛에 송송 썬 쪽파를 더해 비주얼도 예쁘고, 고소한 맛이 더해져 겨울의 맛이 한 입 가득 스며든다. 여기에 단맛 없이 깔끔한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면 겨울의 밥상이 더 맛있어진다.
| 배추를 통째로 먹을 수 있는 별미 배추찜
한 때 많은 스타 셰프들이 매스컴을 가득 채우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이연복 셰프님이 소개해주신 이 배추찜 레시피는 매년 겨울이 올 때마다 배추를 더욱 맛있게 즐기기 위해서 만들어 먹는 메뉴다. 아주 간단하지만 배추의 달달한 맛에 새콤달콤한 소스가 더해져서 와인이나 사케와 함께 곁들이기도 좋고, 알록달록한 비주얼 덕분에 손님 초대 요리로도 손색없는 메뉴이다.
알배기배추는 반으로 잘라 흐르는 물에 구석구석 씻어낸 후, 찜기에 쪄냈다. 김이 오른 찜기에 배추를 넣고 4~5분 정도 찐다. 겨울의 맛을 제대로 머금은 배추는 찌는 과정을 통해서 적당한 아삭함과 적당한 부드러운 식감으로 변하며, 단맛과 감칠맛이 제대로 느껴진다. 다른 양념을 하지 않고 찌기만 했는데도 채소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순간이다.
알록달록 파프리카와 양파를 비슷한 크기로 다졌다. 여기에 진간장, 식초, 맛술, 설탕, 굴소스, 소금, 물을 넣어 만든 양념장을 따끈하게 쪄 낸 알배기배추 위에 얹어 완성했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노란 알배기배추 위에 얹어져 인증샷을 남기기에도 좋고, 달달한 배추의 맛과 새콤달콤한 소스가 어우러져 식사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입맛을 살려 주기에 안성맞춤이다.
시끌벅적 신나는 김장철에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추운 겨울날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