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효 작가 Oct 26. 2023

하늘 아래 첫 꽃밭, 지리산 노고단

8월 둘째 주 남도여행 

8월 중순은 매미들의 전성시대다. 매미가 떼 지어 울기 시작했다는 것은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땀 깨나 흘렸던 삼복더위가 가고 매미 울음소리까지 들리니 아직 여름휴가를 가지 못한 이들의 마음이 급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이맘때면 아침·저녁으로 바람까지 선선해져서 바닷가나 계곡을 찾기에는 늦었지만, 그렇다고 여름 더위가 모두 물러난 것은 아니니 여행지 고르기가 쉽지 않다. 여름과 가을 사이, 느지막한 여름휴가를 즐겨야 한다면 지리산 노고단으로 떠나보자. 


한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은 봉우리마다 특별한 개성을 뽐내는데 노고단의 8월은 꽃밭으로 유명하다. 지리산 하늘정원으로 불리는 노고단은 우리나라 토종 야생화가 모두 피는 곳으로 여름 끝자락인 8월이면 봉우리 주변이 온통 야생화 천지다. 지리산의 기온은 보통 산 아래 땅과 비교해서 7~10도 정도 낮은데, 8월 중순 기온이 20도 안팎으로 유지되면서 야생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화사한 원추리를 시작으로 온갖 야생화가 피고 지는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신기방기하고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꽃동산을 만든다. 


노고단의 대표적인 야생화는 원추리다. 화사한 원추리 군락지를 포함해 둥근이질풀, 기린초, 노루오줌, 범꼬리, 술패랭이 등 사진으로만 보던 야생화들이 노고단 산길을 아름다운 꽃길로 꾸며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고단 야생화를 몇 가지 소개한다면 산골짜기 물가나 습지에서 무리 지어 자라는 ‘물봉선화’는 봉선화과의 한해살이풀로 자줏빛 꽃을 피우고 강아지풀을 닮은 자줏빛 ‘산오이풀’은 이파리를 따서 손으로 문지르면 오이 향이 난다. 노고단 정상 부근에 군락을 이룬 ‘산오이풀’은 평지에서 사는 오이풀과 달리 가을 들판의 벼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특징이다. 꽃봉오리가 망울망울 모여 부케처럼 풍성한 모양을 뽐내는 ‘꿩의비름’은 예부터 이질이나 배탈이 났을 때 약용으로 먹던 약용 야생화로 분홍빛 꽃이 수줍음 많은 새색시 같다. 옛날 사람들이 산길을 걸을 때 짚신에 자꾸 붙어서 이름 지어진 ‘짚신나물꽃’은 노란빛이 화사하고, 나물로만 알고 있는 ‘쑥부쟁이’와 ‘미역취’는 국화와 비슷한 모양의 꽃을 피운다. 노고단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산책 길 풀숲에는 ‘투구꽃’이 피어난다. ‘투구꽃’의 보랏빛이 짙어질 때쯤 주변 철쭉나무 이파리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해서 가을을 알리는 야생화이기도 하다. 



노고단에 피는 야생화들은 사진으로 봤을 때 ‘어 이렇게 예쁜 꽃들이 있었어’ 라고 할 정도로 곱지만 실제로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일 정도로 작고 아담한 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고단 산행은 천천히 가는 것이 중요하다. 숲길과 풀숲 사이에 피어난 야생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나. 요즘 꽃 사진을 찍으면 이름을 알려주는 모바일 앱 서비스가 있다. 길가에 핀 고운 야생화의 이름도 찾아보고 찬찬히 산책하듯이 구경하면 즐거움도 배가 된다. 


지리산 봉우리 중에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 노고단이다. 그만큼 가는 길이 어렵지 않다. 성삼재주차장에서 출발하는 노고단 코스는 가장 완만한 길인 동시에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라서 사시사철 많은 이들이 오르는 길이다. 총 4.7km 코스로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 쉼터까지는 자동차가 다녀도 될 만큼 넓은 길이고, 노고단 쉼터에서 정상까지 길은 나무 데크로 만든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서 산행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노고단 정상까지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 KBS 남도캠핑원정대 '별똥별' 촬영 현장 - 노고단 정상 돌탑 > 


지금이야 누구나 노고단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사실 이곳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자연 훼손이 심각했던 노고단 복원 작업을 위해 10여 년 동안 사람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이다. 1967년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노고단은 지리산에서 자연 훼손이 가장 심각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다른 코스에 비해 등산로가 완만한 데다 식물자원이 풍부했던 탓이다. 성삼재 관광도로가 개통하면서 탐방객이 급증하고 무분별한 벌목으로 노고단은 벌거숭이처럼 급속하게 황폐해졌다. 결국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자연을 복원하는 자연휴식년제를 적용하면서 지금의 노고단을 되찾을 수 있었다. 



현재 노고단 탐방은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서 탐방예약제로 운영된다. 여름 성수기(7/18~8/9)와 가을 성수기(10/17~11/8)에는 30분 간격으로 70명까지 입장을 제한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다. 입장 시간은 아주 엄격하게 지켜지는데 1분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다음 입장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이 가능하며 해설사와 동행하는 탐방도 가능하다. 지정된 탐방로가 아니라면 자연보호를 위해 발걸음을 삼가는 것이 좋다. 




작가의 이전글 태고의 신비가 살아 숨 쉬는 곳, 무안 갯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