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넷째 주 남도여행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 버나드 쇼처럼 후회하기 전에 가을 여행을 떠날 때다. 이번 주가 지나면 가을 분위기 한 번 못 내고 월동 준비를 해야 한다. 온갖 이유로 아직 가을 여행을 떠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짧고 굵게 늦가을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만추 여행지를 골라봤다.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즌을 강타하는 족집게 과외 선생님처럼 늦가을에 놓칠 수 없는 명소만 콕콕 집어서 일타 여행을 떠나보자.
첫 번째 만추 여행지는 여수시 소라면에 있는 <가사리 생태공원>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이후 호젓한 가을 풍경을 찾는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가사리 생태공원>은 바닷길이 마을 안쪽까지 깊숙하게 들어와 자리 잡은 갯벌이다. 순천만 갯벌처럼 크고 넓지는 않지만 은빛으로 물든 멋진 갈대숲부터 갯벌과 습지까지 모든 것을 구경할 수 있는 갯벌생태공원이다.
갈대숲 안쪽까지 둘러볼 수 있도록 나무 데크 탐방로가 갯벌 위에 설치돼 있는데 유모차가 다닐 정도로 넓고 평탄하다. 아직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어서 여유롭게 시간을 갖고 둘러볼 수 있는데 은빛 갈대숲 사이로 겨울나기를 위해 찾아 온 청둥오리와 새하얀 고니까지 만날 수 있다.
<가사리 생태공원>에서 길 하나를 마주하고 ‘여수 YMCA 생태교육관’이 있다. 이곳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갈대숲길과 제방 길을 달려보는 것도 특별한 가을 여행이 될 것이다.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에 가면 김영랑 시인의 생가가 있다. 봄이면 앞마당을 가득 메운 모란이 제철이고 가을이면 샛노란 은행나무가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는 곳이다. 김영랑 시인은 관동대지진으로 일본 유학 도중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인이 글을 쓰며 보냈던 사랑채 앞마당에는 그의 시처럼 아름다운 은행나무가 있다. 백 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켜 온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초가집 이엉을 얹은 사랑채와 어울려 멋진 가을 풍경을 선사한다.
김영랑 시인의 생가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몇 차례 집주인이 바뀌면서 원래 모습이 많이 바뀌었지만 강진군이 매입해 관리한 이후부터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집터 곳곳에 시인의 시비가 마련돼 있는데 사랑채 은행나무 앞에는 김영랑 시인이 쓴 수필 <은행나무>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샛노란 은행잎들을 바라봤을 시인의 마음이 이랬을까.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늦가을의 정취에 흠뻑 취해볼 수 있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곡성은 철마다 멋진 자연의 작품이 펼쳐진 곳이다. 가을 단풍길이 유명한 곡성에서 가장 화려한 단풍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압록유원지에서 죽곡카누클럽까지 이어진 강변 도로다. 붉디붉은 단풍을 벗 삼아 신나게 달리다 보면 죽곡카누클럽에 도착하는데 1~2인용 카누를 이용해 단풍 세일링을 즐길 수 있다. 카누에 몸을 실었다면 강변 단풍 길을 따라 압록유원지까지 노를 저어보자. 강변길을 달리는 드라이브 여행과는 또 다른 운치가 있다.
수영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카누와 카약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카누 시승 전에 간단한 노 젓기 방법을 배우는데 전진과 후진, 그리고 강변에 부딪혔을 때 빠져나오는 방법만 익히면 누구나 카누 운전이 가능하다. 죽곡카누클럽이 있는 강변 숲속은 캠핑 장소로 사랑받고 있는데 가을밤 강변에서 즐기는 캠핑의 낭만은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